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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young Jun 27. 2021

바람 부는 집

딸이 대신 쓰는 엄마의 일기

이야기 둘

집 밖을 거의 나가지 않는다. 평생을 전업주부로 살았기에 바깥세상에 많이 서툴기도 할 뿐만 아니라 지독한 길치이기도 해서 자녀들도 신신당부를 한다. 절대 밖을 나가지 말 것을 말이다. 식구들의 영향인지 몰라도 함께 살고 있는 반려견들 또한 내가 대문 밖으로 발을 내놓는 순간 바짓가랑이를 물고는 한사코 집안으로 끌어당긴다. 무심코 밖을 나가기라도 하면 온 동네가 떠나가라 짖어대는 반려견들로 인해서 맘 편히 나가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반드시 우리 강아지들에게 보고를 하고 나가야 한다.

"엄마가 요 앞에 잠깐 나갔다 오는 거야. 금방 올 테니까 동네 시끄럽게 짖지 말고 기다리고 있어. 민원 들어오겠어. 이놈들아."


쌀쌀했던 날씨가 한풀 꺾이고 따뜻한 해가 반짝 비치는 어느 날 오후였다. 날이 너무 좋아 집안에만 있기에 아쉬워 잠깐이라도 바깥공기를 마셔보자 하고, 역시나 강아지들에게 신신당부를 하고는 대문을 열고 오랜만에 밖을 나가 보았다. 이리저리 살살 걸음을 옮기며 집 밖을 산책하는데 우리 집 아래쪽 언덕 계단 쪽에서 무슨 소리가 나고 있었다. 

'누가 있나?' 

몇 번 오다가다 본 적이 있었던 익숙한 얼굴이었다. 내 막내 딸내미 나이쯤 되었을까? 막내딸은 아직 결혼도 안한채 여전히 들러붙어 있는데 저 앞 빌라에 살고 있는 저 여자분은 애가 벌써 둘이었다. 어린아이 둘이 오고 가며 마주칠 때면 인사도 예쁘게 하고 우리 집 강아지들이 궁금하다며 담벼락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기도 했던 그 아이들의 엄마였다. 반가운 마음에 인사를 하려는 찰나, 계단에 쪼그리고 있던 그 여자분이 알 수 없는 이야기를 중얼거리고 있었다. 누군가와 얘기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땅바닥을 바라보며 얘기를 하고 있었다. 

한참을 바라보다 뒤에서 조용히 말을 걸었다.

"거기 뭐가 있어요?"

"개미들이 말을 해서요. 요즘 먹을 게 없다네요. 옮길 건 없어도 부지런히 움직여야 한데요."

'이게 무슨 소리인가? 개미랑 얘기를 한다고?'

"얘들이 시끄러워서 어디 집에서 쉴 수가 었어야지."

"개미 소리가 들려? 대단하네."

때마침 우리 집 강아지들이 짖어대는 소리가 났고 그 여자가 뒤를 돌아보며 내게 말을 했다.

"개들이 얼른 집에 오시래요. 걱정되나 봐요."


그날 저녁, 일을 마치고 집에 들어온 딸에게 낮에 있었던 일을 누가 들을까 소곤거리며 전해 주었다. 잠자코 듣고만 있던 딸이 툭하고 던지는 말은 "그 여자 머리에 꽃 달고 있어?"였다.

하루 종일 머릿속에 남아있던 생각이었다. '정신을 놔버린 건가? 아직 젊은데 어쩌면 좋을까?'

그 뒤 이어지는 딸에 말이 더 가관이었다. 

"인생 편하겠네. 다 잊어버리고 살면 좋지. 뭐 좋은 세상이라고, 혹시, 머리에 꽃 달고 다니면 예쁘다고 칭찬이나 해줘, 엄마."

동네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얘기로는 이 동네로 떠밀리듯이 이사 왔다고 했다. 남편에 관한 이야기는 여느 드라마나 영화에서처럼 조강지처와 자식들 버리고 떠난 그저 그런 뻔한 이야기들이 태반이었다. 그래도 아이들을 잘 키우고 씩씩하게 살고 있으니 내심 다행이지 않나 싶었는데, 나도 여자이니 그 마음 오죽하겠냐만은 정말 조만간 꽃을 꽂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내 마음마저 무겁게 만들었다. 

또 어찌 보면 딸내미의 대수롭지 않은 반응처럼 인생의 한 순간일지도 모르겠다. 힘겨운 세상살이, 내가 책임져야 하는 생명들, 나를 지치게 하는 사람들, 다 잊어버리고 무시해버리고 싶은 그런 순간들 말이다. 아무 생각 없이 그저 단순하게 꽃은 예쁘니까 내 머리에 꽂아 놓고 동물들도 사람에게 무언가 얘기를 할 터이니 그 말에 귀 기울여주며 모든 짐을 던져버리는 순간, 그런 순간이었으면 좋겠다. 앞집 여자에게도 그리고 나에게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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