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oyoung Mar 22. 2019

여전히 성장 중...

Red? (나의 첫사랑은 도대체 언제란 말인가?)

봄이로소이다....

아직 쌀쌀한 바람이 불고 사람들은 여전히 옷깃을 여미고 다니지만 그 차가운 바람 속에서도 봄의 향기는 어김없이 우리를 찾아왔다. 곧 개나리를 시작으로 온갖 봄꽃들이 만발하는 사랑의 계절이 시작될 것이다. 라디오에서는 벚꽃엔딩이 끊임없이 흘러나올 것이고 겨울 동안 잘 보이지 않던 예쁜 연인들이 스멀스멀 사방을 점령하게 될 것이다.

이제는 손을 꼭 잡고 다니는 연인들을 바라보며 '나도 저럴 때가 있었나?' 하고 기억조차 가물가물한 나이가 되었지만(있었다고 강력히 믿고 싶다.) 나도 여자이기에 매년 봄이 되어 사랑의 향기가 몽글몽글 피어오르면 마음 한편이 간질간질해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그리하여 이제 나의 있기나 있었나 싶은 첫사랑을 살짝쿵 꺼내보고자 한다.

첫사랑에 대한 기억을 떠올려 보고자 나의 몇 안 되는 님들을 생각하다 보니 불현듯 드는 의구심이 하나 있다. 과연 우리네 첫사랑은 정확하게 어느 것을 지칭해야 하는 걸까? 내 인생 처음으로 누군가를 좋아한 것이 첫사랑인가? 아니면 사랑이란 의미를 어느 정도 깨닫게 되어서야 첫사랑 일까?(아직도 정확히는 모르겠다. 그 오묘한 의미를..) 그렇다면 짝사랑은 첫사랑이라 할 수 없는 것인가?

내 인생의 다사다난했던 여러 일들 대부분은 모두 처음이 명확한데 비해 사랑이란 감정은 도대체 어디가 처음인지를 명확하게 말할 수가 없다. 먹을 만큼 먹은 나이 속에서도 사랑이란 감정은 처음과 끝이 애매모호한, 여전히 가장 구분 짓기 어려운 내가 제일 못하는 일이지 싶다.(체질이 아닙니다. 하하...).

 에이, 잘 모르겠다. 그냥 나의 가장 이른 기억으로 거슬러 올라가 볼 수밖에...

누군가를 좋아했던 첫 기억은 초등학교 1학년 때이다. 중학교와 고등학교는 다 여학교를 다녔기에 정말 공부만 했다.(진짜예요. 그럴 수밖에 없었어요. 슬프다.)

내가 초등학교 1학년 시절, 처음으로 사귀게 된 단짝 친구 세 명이 있었다. 나와 내 짝꿍(남자아이), 우리 앞에 앉아 있었던 여자아이와 그 짝꿍(역시 남자아이) 이렇게 우리 넷은 늘 함께 어울리며 우리의 첫 학창 시절을 알차게 보내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내 앞자리의 그 남자아이를 좋아했었다. 하얀 얼굴에 나이에 맞지 않는 과묵함과 친절함을 가진 그 아이를 거의 1년 내내 좋아했었다. 너무 어렸기에 남자아이를 좋아한다는 게 쑥스럽기도 하고 어색하기도 해서 표현은 잘하지 못했지만 그 어린 나이에 대학까지 꼭 같이 가야지 하는 그런 마음으로 늘 그 아이 주변을 맴돌며 학교생활을 했었다. 그 아이 때문에 학교에 가는 것이 즐거웠고 그 아이가 손을 잡아주면 나도 모르게 몸을 배배 꼬며 꽈배기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1학년이 거의 끝나가는 무렵 그 아이와 나를 멀어지게 하는 사건이 발생해 버렸다.

1학년을 마무리짓는 기말고사를 보던 날이었다. 국어 문제로 이상한 문제가 하나 출제되었다.(순진한 나에겐 너무 큰 충격이라 아직까지 문제도 정확하게 기억한다.) 시험 문제가 보기 중 꽃밭에서 볼 수 있는 동물을 고르라는 것이었다. 보기에는 악어, 코끼리, 강아지, 나비 이렇게 네 가지가 있었고 그 문제를 본 우리 넷은 강아지와 나비 중 무엇을 답으로 해야 할지를 같이 고민하고 있었다. 오랜 고민 끝에 그러면 안되지만 선생님 몰래 합의하에 모두들 강아지를 답으로 고르게 되었다.( 근데, 강아지도 꽃밭에서 뛰어놀지 않나? 그때도 분명 개떡 같은 문제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듯이 답은 나비였다.

그 당시에는 보통 담임선생님들이 교실에서 시험지 채점을 하시는 분들이 많았었다. 그리고 우리 담임 선생님께서도 교실에서 시험지를 채점하시다가 갑자기 그 남자아이를 앞으로 부르시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왜 답을 강아지로 했냐며 이것만 맞으면 올백이라며 그 자리에서 답을 고치라고 시키시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아이는 바로 답을 고치고는 올백이라는 점수를 받게 되었다.(나도 그때 그 문제만 맞았다면 올백이었을걸? 음.... 아닌가? 헤헤.. 요건 기억이 안 나네.) 그런 어이없는 행동을 하시는 선생님도 너무 화가 났지만 우리가 같이 상의하여 답을 결정해놓고 혼자서만 답을 고쳐서 올백을 맞은 그 아이를 우리 셋은 너무 용서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나의 첫사랑은 그렇게 강아지와 나비로 인하여 끝나버렸다.

그때는 참 슬펐었는데, 그리고 처음으로 사랑의 실연을 겪었는데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비실비실 웃음이 나오는 건 어쩔 수가 없다. 그 어리던 나에게 그 사건은 엄청난 충격이었고 믿었던 선생님에 대한 배신감이었으며 좋아하던 친구에 대한 서운함이었는데 지금은 그저 피식 한 번 웃고 넘어가는 귀여운 첫사랑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첫사랑이 다 그렇지 뭐!)

우리에게 첫사랑이 특별한 것은 그것이 사랑이었음을 알았다 하여서도 아니고 가슴 미어지게 슬픈 경험이 여서도 아니며 그것이 행복한 결말로 이어져서도 아니다. 그냥 우리에게 처음이니까... 나의 마음을 설레게 하고 간질간질하게 한 것도 처음이요 얼굴 붉어지게 했던 것도 처음인, 우리의 마음속에 누군가를 처음으로 담아본 바로 그런 첫 경험이었으므로 특별한 것이 아닐까? 그깟 나비와 강아지 때문에 상처가 조금 남았더라도 그 아이의 이름조차 이제는 기억이 안 나더라도 그 또한  처음이었기에 나의 아름다운 첫사랑이라 부르고 싶다.


이전 07화 여전히 성장 중...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