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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young Mar 23. 2019

여전히 성장 중...

Bleu (그 남자 그 여자)

나는 어른이다. 주변 모든 사람들 중 어느 누구도 나를 아직 아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십 대들처럼 아이돌이 좋고 웹툰, 웹소설이 좋으며 방탈출 카페가 재미있지만 그래도 나는 어린아이도 십 대도 될 수는 없다.

아직도 놀이동산이 너무 즐겁고 재미있지만 마음만 십 대인 나는 놀이기구들이 이제 살짝 버겁기는 하다.(그래도 계속 놀러 가긴 할 거다. 토하는 한이 있더라도..) 이렇게 나의 몸은 1도 반박할 수 없는 어른이 되어버렸지만 가끔 마음속으로 어린아이들처럼 유치한 장난질을 해가며 바닥을 뒹굴며 놀아보고 싶은 생각이 들 때가 있음이 조금 슬프게도 또 나를 기쁘게도 한다.

어린 시절, 언니들과 나는 저녁마다 동네 아이들과 만나서 이런저런 놀이를 하고 놀았었다. 저녁을 먹고 나면 약속이나 한거마냥 다들 나와서 숨바꼭질이며 술래잡기며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와 같은 놀이들을 하고 놀았다. 그러다 방학이 되면 그 정도가 더 심해졌으니 거의 하루 종일 밖에서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방학이 되면 늘 우리가 노는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던 여자분과 남자분이 있었다. 우리 바로 옆집에 사시는 분들이었는데 엄마 말로는 대학생들이라고 했다. 남매였던 그 두 분은 항상 우리가 놀고 있을 때 책을 들고 밖에 나와서 우리가 노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우리 옆집은 우리 동네에서 보기 드문 이층 집이었다. 대부분이 기와집이었던 동네에서 커다란 이층 집은 나에게 있어서 동네와 어울리지 않은 외딴 고성처럼 느껴졌었다. 당연히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도 우리랑은 전혀 다른 사람들이겠거니 생각했기에 그렇게 매일같이 우리의 노는 모습을 바라보는 그 두 분이 조금 이상하기도 부담스럽기도 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언니와 오빠가(조금 있다 친해지니 이제 언니 오빠라고 부릅니다.) 우리의 놀이를 지켜볼 때 왜 그것이 부러움과 슬픔의 눈빛으로 느껴졌는지는 아주 나중이 되어서야 알게 되었다. 

우리가 항상 같이 노는 동네 아이들 중 유난히 좋게 말해서 뇌가 아주 맑으신 나쁘게 말하면 살짝 부족하신 분이(오빠가) 계셨다. 내 기억으로는 넷째 언니와 동갑이었던 그 오빠는 가끔 너무나 황당한 일로 우리를 당황스럽게 할 때도 많았고 또 어이없는 일로 우리를 웃게 하는 행동들도 아주 많았다. 답답하지만 결코 미워할 수 없는 그 오빠는 어떤 놀이를 하게 되면 우리 멤버 모두가 한번씩 돌아가며 다 설명을 해주어야 이해를 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일등으로 벌칙을 당하는 불굴의 순수남이었다.

한 번은 우리가 모두 모여서 숨바꼭질을 할 때였다. 내가 술래가 되어서 나무에 얼굴을 묻고 열을 세는 동안 모두들 이곳저곳에 몸을 숨겼고 이윽고 내가 찾을 차례가 되어서 몸을 돌려 찾기 시작하려는 찰나, 정말로 '이게 실화인가?' 싶은 장면을 목격하고 말았다. 우리의 불굴의 순수남께서 숨으신 곳은 바로바로 우리 동네를 올라오는 오르막길(즉, 길 한복판)... 그분께서는 그 오르막길에 납작 엎드려서 얼굴만 가리고 있었던 것이다. 숨바꼭질의 테마가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 일터인데...'    

 '아이, 진짜 저런 븅........'

그 순간 바로 뒤쪽에서 박장대소가 터졌다. 바로 늘 조용히 우리를 지켜보던 옆집 언니, 오빠가 땅을 구르며 웃고 있었다. 잠시 후 우리 모두도 다 같이 배를 잡고 웃음을 터트렸다. 그리고 길로 우리는 친해졌다. 그 언니, 오빠 덕분에 우리는 밤에 10시까지 놀 수 있었고(어른이랑 같이 있다고 부모님들이 허락해 주셨다.) 언니, 오빠는 우리가 노는 그 모든 놀이를 우리랑 똑같이 하면서 뒹굴고 함께 놀았다. 나이상으로는 분명 그 두 분은 어른이었지만 우리 모두는 어느 누구도 어려워하지 않았고 똑같이 뛰고 웃으며 매일매일 그렇게 보냈다.

방학 동안 낮에는 그 언니가 우리를 집으로 초대하기도 했는데 처음 들어가 본 옆집은 상상 이상이었다. 큰 방 하나가 책으로 가득 차 있고 본 적도 없는 신기한 물건들 뿐만 아니라 살면서 먹어본 적 없는 열대과일들이 가득가득했었다. 우리는 방학 동안 거의 매일 놀러 가며 책도 보고 신기한 것들도 만져보며 그렇게 친형제처럼 지내고 있었다.

그렇게 방학마다 서울에서 내려와 우리와 놀던 그 언니와 오빠가 대학을 졸업할 무렵 우리 동네를 떠나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그리고 언니와 오빠는 이별 선물로 우리에게 가지고 있던 책을 거의 다 주고 떠났다.

내가 그 언니와 오빠가 떠날 때 울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저 언니 오빠와 숨바꼭질과 술래잡기를 하며 웃었던 기억, 겨울방학이면 비료포대를 깔고 같이 썰매를 타던 기억, 그런 기억들만이 행복하게 남아있을 뿐이다.

그러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 있었다. 우리 옆집에 다른 가족이 이사를 오고 우리가 저녁을 먹으며 떠나간 언니 오빠에 대한 이야기를 하던 중, 엄마께서 놀라운 이야기를 해 주셨다.

동네 아이들에게 너무 인자하셨던 옆집 언니, 오빠의 아버지는 매우 엄격한 분이셨으며 집에서 언니, 오빠에게 TV조차 허락하지 않으셨던 엄한 아버지였다는 것이다. 또한 언니, 오빠의 어머니는 친어머니가 아니신 아버지께서 재혼으로 맞이하신 새어머니라는 것이었다. 물론, 신데렐라의 계모 같은 분은 아니시고 정말로 좋은 분이셨지만 어린 나에겐 그 이야기는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왜 그 언니와 오빠가 늘 조용하고 말 수가 없었는지 그러다가 우리랑 놀 때는 우리보다도(이미 어른인 그들이) 더 유치해지고 더 어려지는지를 이해할 수도 있을 거 같았다. 잃어버렸던 어린 시절이 그리웠던 것이 아닐까? 그 여자 그 남자는....  

나는 어른이다. 그러나 아주 천천히 자라고 싶은 어른이다. 몸은 나이가 먹고 흰머리도 하나씩 생기고 돈고 벌고 세금도 내지만 난 여전히 성장 중이다.(어린아이의 속도로 천천히...)

우리(어린 시절 나의 멤버들)에겐 어린 시절이 있었고 친구들이 있었고 숨바꼭질과 술래잡기가 있었다. 그리고 피터 팬 같은 어른 두 명이 함께 있었다. 우리보다 더 환하게 웃을 줄 알고 우리보다 더 재밌게 뛰어놀던 그런 어른 아이 두 명 말이다. 우리가 함께 뒹굴며 뛰어놀던 그 기억들이 그들의 소중한 어린 시절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남자 여자가 우리를 영원히 잊지 않았으면 정말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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