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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young Mar 29. 2019

여전히 성장 중...

Ivory(자두꽃)

올해로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친 지 어언 10여 년이 흘렀다. 대학생 때 IMF를 겪고 엄청난 취업난과 경제위기로 안 해본 아르바이트가 없이 이것저것 해보다가 정착을 하게 된 직업이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것이었다. 처음엔 가벼운 알바 정도로 시작한 것이 점점 재미가 있어졌으며 나름 보람도 느끼게 되면서 아예 전문 학원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그러면서 정말 많은 제자들이 생겨났고 이제는 같이 늙어가는 처지가 되어버렸다. 심지어 나보다 먼저 결혼하여 아이 아빠가 된 제자도 있으니 참 세월이 유수와 같다는 말이 실감 나는 요즘이다.

곧 2019년의 4월이 다가올 것이고 대한민국의 학생들에게는 그 찬란한 봄은 다가올 중간고사로 인해 봄을 만끽할 틈도 없이 시험 준비로 분주해질 것이며 나 또한 그들과 함께 달려갈 준비를 해야만 한다. 매년 봄 온갖 꽃들이 만발할 때 내가 학생들에게 늘 듣는 이야기는 우리는 언제 제대로 꽃구경을 할 수 있냐는 푸념들이다. 그런 이야기들을 들을 때 난 그저 "대학 가서 맘껏 보자꾸나"라는 말로 위로 아닌 위로를 하지만 한 편으로는 그들에게 '지금 당장 우리 꽃구경 갈까?'라고 말하며 그들과 함께 일탈을 꿈꿔보고 싶기도 하다.

지금을 살고 있는 우리네 청소년들은 나의 청소년 시절과는 사뭇 다르다. 나의 중고등 시절은 참 어리고 철이 없었는데 요즘 아이들은 차마 아이들이라고 말하기가 미안할 정도로  나보다 훨씬 어른스러울 때가 많다. 그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내가 배울 때가 더 많으며 어느 누구보다도 통할 때가 더 많다는 것을 정말 많이 느낀다. 그러다 보니 요즘 아이들은 내가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 일도 다반사다. 그러다 보니 그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들도 정말 많다. 그리고 그 이야기 중 하나를 해보려고 한다.

매년 봄 벚꽃이 만발하여 이곳저곳에서 벚꽃축제들이 열리고 벚꽃엔딩이 끊임없이 흘러나올 때 나와 우리 아이들은 열심히 공부를 한다. 꽃구경이라고는 그저 왔다 갔다 하는 길에 보이는 길가의 꽃들이 전부일 때가 대부분이다. 시험기간이다 보니 아이들은 들뜨는 봄의 그 기운을 그저 마음속으로 억누른 채 간신히 버티고 지낸다. 그런 그들에게 내가 늘 하는 이야기가 있다.

"올해 봄은 우리 인생에서 다시는 오지 않아. 지금의 벚꽃은 내년의 벚꽃이랑 달라. 너희가 지내고 있는 이 봄은 절대 다른 봄이랑 같지 않을 거야. 그러니까 눈에 담아둬. 마음에 꼭 기억해놔. 지금 보는 꽃, 하늘 그리고 나무들을 잊지 마...." 

나의 대학교 2학년 시절, 그 해 대학생활이 어땠었는지에 대한 기억이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나라는 경제위기상황이었고 어느 누구에게나 너무 힘든 시절이었다. 그래서 나의 하루하루도 학교 끝나면 바로 아르바이트를 가고 그리고 새벽이 되어서야 집에 들어 간신히 잠이 들고 다음날이 되면 제대로 잠에서 깨어나지도 못한 채 학교를 가고 이러한 일상의 반복이었다. 그때 나는 충주에서 청주로 비둘기호(그 당시 가장 저렴한 교통수단이었습니다. 더 이상 이 기차는 운행되지 않지만 대학 때 비둘기호 기차는 금요일이면 같은 고향 친구들을 모두 만날 수 있는 추억의 열차였습니다.)  기차를 타고 통학을 하였으며 알바를 여러 개 하면서 학비와 생활비를 벌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시절이었다.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도 모른 채 그저 아무 생각 없이 하루하루 버티는 것이 목표였던 그런 날들이었다.

아마도 그날 밤은 막 여름이 시작될 무렵이었던 것 같다. 새벽 2시까지 알바를 하고 거의 좀비 상태로 집에 오자마자 곯아떨어졌던 어느 날 밤. 화장실이 너무 가고 싶 눈도 뜨지 못한 채 마당에 있는 화장실에 가서 볼일을 보고 나왔을 때였다. 아마 새벽 4시쯤이었던 같다. 갑자기 내 얼굴로 무언가가 내려앉았다. 떠지지 않는 눈을 간신히 뜨고 앞을 보았을 때 비가 내리고 있었다. 차가운 비가 아닌 자두 꽃비가 내리고 있었다....

우리 집에는 나이가 많은 나무 세 그루가 있었다. 마당 중앙에 터줏대감인 감나무가 있었으며 뒤뜰에 자두나무 두 그루가 우리 집을 품어주고 있었다. 나는 자두나무가 너무 좋다. 새콤달콤한 자두도 너무 맛있지만 소박하면서도 기품이 있는 자두꽃이 너무 아름다웠다. 사과꽃과 아주 유사하지만 사과꽃보다는 조금 색깔이 더 진하고 꽃잎이 조금 더 두툼한 것이 자두꽃이다. 자두나무는 보통의 과실나무들처럼 꽃이 먼저 피고 그 꽃이 다 떨어지면 잎이 나고 그리고 열매가 맺힌다. 고로 자두꽃이 피면 한창 봄인 것이고 꽃이 떨어지면 그때부터가 여름의 시작인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날 밤, 여름의 시작을 알리는 자두 꽃비가 내리고 있었다. 까만 밤하늘에 하얀 자두 꽃비가 펑펑 내리던 그 광경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나는 잠이 확 깨면서 그 까만 하늘을 마냥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그만 마당 계단에 앉아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엄마 아빠가 깨실까 봐 소리 죽여 울었다.

'나는 왜 우리 집에 자두꽃이 피는 것조차 몰랐을까... 꽃이 피고 벌써 이렇게 흐드러지게 꽃비를 뿌리고 있는데 나는 왜 그렇게 좋아하던 자두나무 한 번 올려다보지 않았을까... 나의 스물한 살의 봄은 왜 기억에 없을까...'

그날 밤 나는 울면서 기억해 내려고 애를 썼다. 그 해 봄 길가의 벚꽃은 언제 핀 건지 개나리꽃은 어땠었는지 백합은 언제 져버린 건지...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았고 하늘을 올려다본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마당 계단에서 그렇게 한참을 울어버렸다...

나의 학생들에게 나는 늘 얘기한다. 하루에 한 번은 꼭 하늘을 올려다보라고, 학교 그리고 집에서 자라는 나무와 꽃들을 눈에 담으라고... 공부하느라 바쁘더라도, 하루하루 살아가기 버겁더라도 틈틈이 우리의 오늘을 기억하라고... 나의 스물한 살의 봄처럼 기억 속에서 사라지지 않게 모든 우리의 날들을 마음속에 간직하자고...

그 시절 그렇게나 힘들었던 나의 대학생 시절이 원망스럽거나 후회스럽지는 않다.  시절도 나 자체이며 그것 또한 나의 인생의 한 과정이고 간이역이었음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그 해 자두나무에 가득 피어있는 자두꽃을 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때 한 번만이라도 하늘을 올려다보았더라면.. 하루하루 살기 너무 힘들더라도 나에게 봄이있었음을 알았더라면.. 그래서 지금 나는 매일 하늘을, 나무를,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의 얼굴들을 올려다본다. 2019년의 오늘은 지금뿐이니까..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소중한 나의 인생이니까 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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