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oyoung Mar 20. 2019

여전히 성장 중...

Blue-green (소낙비)

어른이 되어서야 비로소 깨닫는 것들이 있다. 어린 시절엔 눈에 보이지도 느껴지지도 않던 것들이 어른이 되어서야 '혹, 그랬었던 건가?'하고 뒤늦게 와 닿는 것들 말이다. 마치 커피의 쓰지만 알싸한 그 느낌처럼...

초등학교 6학년 여름방학 때였다. 엄마께서 갑자기 나만 데리고 일주일간 휴가 아닌 휴가를 갔던 적이 있었다.

정확한 위치가 기억은 안 나지만 충주지역 안에 탄동이라는 숲 속 작은 동네가 있었다. (현재 이 곳은 아예 동네 자체가 사라져 버렸다. 이제는 나의 기억 속에만 남아있는 그런 곳이 되어버렸다.) 그곳을 나와 엄마 그리고 친척 이모님과 그분의 손자 이렇게 넷이서 들어가게 된 것이다. 

탄동이라는 동네는 지금도 아주 작은 하나까지도 생생히 기억이 난다. 우선 그곳에 도착하기 위해서는 하루에 오전 오후 두 번만 오고 가는 버스를 시간 맞춰 타야 한다. 그리고 산 밑 어느 작은 버스정류장에서 내린 후 산을 타고 오르다가 폐교된 초등학교를 만나게 되면 그곳이 그 동네의 시작이다. 그곳에서 다시 조금 산 안쪽으로 걸어가면 너무나 예쁜 시골 동네가 나온다. 내가 그곳에 갔을 때도 이미 그 동네는 거의 모든 집이 이사를 나가고 단 10집만이 남아있었다. 그리고 바로 그 중 한 집이 엄마와 이모님의 먼 친척댁이라고 했다.

여름이라서 그랬겠지만 그곳은 온통 청록색이었다. 내가 머무른 친척집은 디귿자 형태였는데 가운데 일렬로 방들이 있고 그 앞은 퇴청 마루로 이어져 있었으며 양 옆에 부엌과 창고가 있는 전형적인 한국의 가옥형태를 띠고 있었다. 내가 인상적이었던 것은 마당 안에 외양간이 있어서 황소와 같이 생활을 하고 있었고 벌통들도 여러 개가 있어서 하루 종일 집안 곳곳으로 벌들이 날아다니고 있었다는 거였다. 더 흥미로운 것은 그 외양간은 잠가놓지도 않아서 황소가 가끔 동네 마실을 나가고 때 되면 자기가 알아서 들어오더라는 것이다.

해가 일찍 뜨고 일찍 지는 동네였던 그곳에서 내가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아침에 눈을 뜨고 방문을 열었을 때 눈 앞으로 보이던 너무나 푸르른 산의 전경이었다. 숲 속에 자리 잡은 동네이다 보니 온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어느 곳으로 눈을 돌리던지 보이는 것이라고는 산이 전부이지만 그때 내가 아침에 보았던 그 산의 아름다움은 지금도 생생히 기억 속에 있다. (그림으로  그리라고 해도 그릴 수 있지만 전 그림에는 소질이 1도 없습니다.) 온통 푸르른 숲 속에 자리 잡은 빨간 고추밭과 청록색의 수박밭 그 뒤로 병풍처럼 펼쳐져있는 푸른 산은 어떤 그림 속의 풍경보다도 감탄을 자아내는 모습이었다.

그 동네 주민분들은 내가 머물렀던 친척 어르신 댁처럼 대부분이 노인분들이셨는데 옆 옆집에 아주 특이하게도 젊은 부부 한 쌍이 세 살 된 남자아이랑 살고 있었다. 어린 내가 보기에도 신기한 일이었지만 또 한편으로는 참 행복해 보이기도 부럽기도 다. 그 아이에게 자연이 집이고 온갖 동물들이 친구이니 무릉도원이 따로 있겠는가? 그곳이 바로 무릉도원이지.. 그곳에 머무르는 동안 난 내 친척동생 그리고 그 아이와 놀아주면서 휴가다운 휴가를 만끽하고 있었다. 또 하나 내가 가장 신기했던 건 그곳에 10일에 한 번씩 과자며 잡다한 용품을 파시는 아저씨가 들어오시는데 온갖 물품을 실은 트럭을 뒤쪽에 연결한 오토바이를 타고 오신다는 것이었다. 그분이 오시면 그 동네의 모든 사람들이 나와서 물건들을 사 가는데 정말 없는 것이 없었다. 움직이는 마트라니.. 정말 60-70년대 모습이 아니던가! (결코 6.25 때가 아닙니다. 90년대이었습니다. 흠.. 이것도 말하면 진짜 6.25 때인 줄 알터인데.. 그래도 살짝쿵 얘기해볼까나? 그곳 화장실은 땅에 구덩이를 파고 판자 두 개 얹어놓은 곳이었습니다. 발 헛디디면 말로만 듣던 dung독 올라서 저 세상을 맛보게 될지도 모릅니다. )

그곳에서의 일주일은 나에게 너무나 행복하고 아름다운 기억이 되었다. 청록색의 산과 나비와 꽃밭 정말 졸졸 소리를 내며 흐르는 개울물, 동네를 제 집인 양 돌아다니는, 사람은 관심 밖인 소들. 이러한 아름다운 풍경을 이제 어디서 볼 수 있겠는가? 그런데 지금 어른이 되어서야 보이는 것이 있다. 그때 왜 엄마는 나만 데리고 그곳을 가셨을까? 언니들은 다 커서 자기들만의 세계를 개척해 나가겠다고 반항 부리던 때이니 그렇다 치고 어린 그 귀하디 귀한 남동생을 두고 왜 나만 데리고 가셨던 걸까?

지금 한창 어른인 나는 가끔 인생을 살다가 벽에 부딪칠 때 너무나 힘들어 나 자신을 놓고 싶을 때 혼자 여행을 간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오로지 산과 바다만 보이는 곳으로 훌쩍 떠났다가 재충전되어 돌아오는 것이다.

우리 엄마도 그때 그런 시기이지 않았을까? 인생을 살다가 너무 힘들고 지쳐서 모든 걸 내려놓고 싶은 그런 순간 말이다. 어린아이들이 눈에 밟혀 그냥 다 내버려두고 떠날 수 없어서 한 명은 데리고 떠났던... (왜 남동생이 아니었을까? 그건 지금도 의문이다.) 어른이 된 지금 혹 그러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그리고 엄마께 여쭤보지는 못한다. 엄마의 아픈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게 아닐까 싶어서. 

탄동이라는 마을에서 떠나던 날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는 낮의 해가 막 산 꼭대기에 걸려 이제 모습을 감추려 하던 그 시간에 도착했다. 그 마을에 도착할 때는 버스가 산 아래 버스정류장에서 우리를 내려주었는데 돌아갈 때는 그 동네 입구까지 버스가 올라다. 친척 어르신과 함께 마을 입구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갑자기 엄청난 굉음이 들려왔다. 마치 댐이 수문을 열어 물이 한꺼번에 쏟아지는 그런 소리가 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소리는 저 높은 산 너머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소나기구름이 높은 산에 걸려 그곳에 비를 쏟아붓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광경도 내 생에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그 비구름은 간신히 산을 넘어 점점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 우리 쪽으로 오고 있었다. (상상해 보십시오. 눈앞으로 비가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는 모습을..) 피할 길도 없이 우리는 쫄딱 비를 맞아야만 했다. 그리고 우리 넷은 흠뻑 비에 젖은 채 집으로 돌아왔다. 버스 안에 승객들이 어찌나 이상한 눈으로 보던지.. 그리고, 도착한 버스정류장에는 아빠와 남동생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잠깐의 소나기처럼, 우리를 흠뻑 젖게 만들어버린 그 아픈 소나기처럼 그 해 여름은 찰나의 순간으로 지나가 버렸다. 너무나 아름다웠던 산 그리고 정겨운 옛 동네와 인심 좋은 사람들, 우리 엄마의 이야기를 아무것도 묻지 않으셨지만 우리가 갈 때 바리바리 이것저것 싸주시던 친척 어르신들. 그 여름방학의 나의 휴가는 그렇게 아쉽게 지나가는 소나기였다. 마지막 날의 그 소낙비처럼 잠깐이었지만 영원히 잊히지 않을 그런 기억으로 말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