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세기 프랑스인들은 체코지역의 집시들을 보헤미안이라고 불렀는데 19세기 후반에 이르러 사회의 관습에 구애받지 않는 방랑자, 자유분방한 생활을 하는 예술가 ·문학가 ·배우 ·지식인들을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고 한다.
1918년 1차 대전 종전 후 독립한 체코슬로바키아 공화국은 1990년 체코슬로바키아 연방 공화국으로 국호를 변경한 이후 92년에 슬로바키아가 독립주권을 선언하며 이듬해 해체되었다.
아담한 비엔나 공항의 출국장을 나와 두리번댔다. 이내 중년의 동양인이 다가왔는데, 화상면접을 통해 만났던 물류회사의 대표였다. 그의 폭스바겐 세단을 타고 슬로바키아의 소도시인 갈란타(Galanta)로 향했다. 인구가 만 오천 명 정도에 불과한 작은 도시지만, 삼성의 LCD 공장이 위치해 있었다. 한 시간 남짓 유럽의 고속도로를 달려 한 주택에 도착했다. 사무실에 들르기 전 밥이나 먹자며 들어간 곳은 영락없는 현지 주택의 모습이었는데 들어가 보니 한국식당이었다. 슬로바키아에서 지내는 동안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방문했던 그곳 음식은 외국에서 흔히 맛볼 수 있는 '한식이 맞긴 한데...'란 뒤끝을 남기는 맛이었다.
사무실에 들러 현지 직원들과 인사를 나눴다. 여성 1명, 남성 3명으로 모두 20대 중반의 나이였는데 대표의 말에 따르면 슬로바키아인 치고는 영어가 훌륭한 편에 속한다고 했다.
오늘은 짐을 풀고 쉬라는 대표와 함께 속소로 이동했다. 외관은 구 소련을 연상케 하는 허름한 아파트였는데, 어른 2명이 겨우 올라설 법한 구형 엘리베이터의 경우 형무소를 연상케 하는 문을 직접 여닫게 되어있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내가 살 집은 1층이었다. 현관문을 열고 안에 들어서자 체르노빌을 연상케 한 아파트 외벽을 봤을 땐 상상할 수 없었던, 깔끔하게 리모델링된 모던한 아파트가 나왔다. 슬로바키아 정부에서 외부 리모델링은 심하게 제한하고 있는데 반해 내부는 그렇지 않다고 했다. 그래서 서유럽이나 북미 중산층 주택과 비교했을 때도 내부시설의 질은 그렇게 떨어지지 않았다. 뒤쪽 테라스에선 깔끔하게 정돈된 아파트의 잔디밭이 보였는데, 맥주를 마시다가 담배가 피고 싶으면 캔을 들고나가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