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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일 Nov 17. 2019

회사를 그만두다

모르겠고, 일단 체코로 가자

주말에 부다페스트를 다녀왔다는 말을 들은 대표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거기다 한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 만난 다른 한국인과 통화하는 것을 들은 이후로는 노골적으로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그는 나보다 1달쯤 일찍 이곳에 도착한 다른 회사 직원이었는데, 사실 아직 서로에 대해 아는 것도 그리 많지 않은 상태였다. 


단지 난 그의 물음에 내가 다니는 회사의 이름을 말한 적이 있고, 그는 없었는데 내가 되묻지 않았기에 특별하게 생각하지도 않았었다. 대표는 통화내용에 대해 묻더니 이 부분에 분노했고, 스파이를 대하듯 짜증섞인 그의 대응에 나 역시도 기분이 좋지 않았다.      


결국 이 문제들을 계기로 대표와의 관계는 급속도로 안 좋아졌고 2달 만에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다. 돌아가는 항공권이 있지만, 아직 이르다고 생각됐다. 지금이라면 다시 일을 알아보지 않은게 스스로 의아할 정도지만, 잠시 여행을 하다가 돌아가는 쪽으로 결론을 내렸다. 


옵션은 2가지였다. 발칸반도를 위주로 한 동유럽일주와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걷기. 둘 다 한국에서도 한 번쯤 해보고 싶다고 생각한 것들이었고 경비도 타이트하게나마 맞출 수 있을 것 같았다. 고민을 할 수 있는 시간이 그리 길게 주어지진 않았기에 일단 체코로 향했다


그냥 지나치긴 아까워 슬로바키아의 수도인 브라티슬라바에서 세 밤을 잔 후, 프라하에 도착하자마자 싸구려 숙소를 1주일을 잡았다. 극히 단순하게 빗대자면 슬로바키아를 북한, 체코를 남한에 비유할 수 있기에 물가변화가 피부로 느껴졌다. 이때까지 2가지 중 선택을 하지 않았지만, 발칸반도라면 남쪽으로 향해야했고 서유럽으로 가자면 프라하 출발 저가항공이 많아 동선은 후자가 유리했다. 낮에는 프라하의 관광지를 돌아다니다 와이파이가 제공되는 까페에서 시간을 보냈다. 동유럽여행객들에게 프라하는 엄마, 부다페스트는 아빠로 통한다는 말이 있는데 엄마는 내게 큰 감흥을 주지 못했다. 


스페인에 가기로 결정을 했다. 다른 것보다 산티아고순례길 여정에는 알베르게라는 저렴한 순례자숙소가 있어 기간대비 싸게 먹힐 것 같았다. 가능하면 한국으로 돌아가는 날짜를 늦추고 싶었다. 동선을 짜보니 파리까지 저가항공을 타고 이동했다가 TGV로 프랑스남부지역으로 이동하면 그때부터 걷기 시작이었다. 이후 1달 동안은 아까운 교통비로 돈을 날릴 일은 없겠구나. 


취업을 위해 온 거라 정장 여러벌을 포함해 쓸데없는 짐이 많았다. 더군다나 캐리어를 끌고 순례길을 걸을 수는 없어, 짐을 맡겨둘 곳이 필요했다. 귀국은 가까운 비엔나공항에서 하기에 이곳 체코에 그럴 만한 곳을 찾기 시작하다 CouchSurfing이란 곳을 알게됐다. 완전무료 숙박공유! 에어비앤비 이전에 배낭여행자들에게 꽤나 유명했던 곳으로 무상으로 자기 공간 중 일부를 여행객들에게 내주는 형태다. 돈이 오가는 플랫폼이 아니라 웹사이트 도메인도 무려 .org로 끝이났다. 


몇 곳에 연락을 돌려보다 프라하로 유학 온 슬로바키아 대학생 토르마(Torma)와 연락이 되었다. 그는 고향 친구 2명과 함께 프라하 외곽의 아파트를 빌려 지내고 있었는데 나의 부탁을 흔쾌히 허락해줬다. 하룻밤 신세를 지고 캐리어도 1달 정도 맡길 수 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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