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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일 Nov 17. 2019

얼어 죽을 수도 있는 건가

프랑스

내가 싫어하는 계절은 겨울이다. 비록 전방이 아닌 경기도 권역(의정부, 용인)이었지만, 사회와는 환경이 달라 군 생활 중에도 추위에 떨었던 기억의 파편들이 많다. 경계근무를 서던 무수한 밤이나 혹한기 훈련 같은.  


그런데 이러다 '얼어 죽을 수도 있는 건가' 생각했던 인생에서의 2번의 경험은 군대에서는 아니었다. 모두 유럽에서였는데, 그 첫 번째는 프라하를 떠나 도착한 프랑스 파리에서였다.


서울 지하철보난이도가 한수 위인 파리 지하철에서 환승을 몇 번 한 후 도심에 도착했다. 남부로 가는 고속열차표를 끊고 호스텔을 3박 예약했다. 에펠탑, 루브르 박물관, 노트르담 성당 등 센강 주변의 유명 관광지들을 돌아다니며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사흘이 흐르고 기차를 타러 갔는데.


파업 여파로 연착이 계속되더니 이윽고 운행이 취소됐다! 다른 기차표로 바꿔줬는데 날짜가 다시 사흘 후였다. 어쩔 수 없이 호스텔이 모여있는 곳으로 돌아가 몇 곳을 잡으려 둘러봤는데 방이 없었다. 다음날부터는 그나마 있는데 오늘 밤은 빈 방 있는 곳이 아무 데도 없었다.


다시 기차역으로 돌아갔다. 잠시 앉아있는데 그냥 이곳에서라면 하룻밤 정도는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몇 시간 앉았다가 역 안을 돌아다니다가 반복했는데 새벽 1시? 가 되니 분위기가 이상했다. 안내방송이 반복되고 직원들이 분주히 움직이더니, 문 닫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어쩔 수 없이 나가려는데 근처 벤치에 앉아있던 20대 초반의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얘기를 나눠보니 이유는 다르지만 똑같은 생각(역에서 밤샐 생각)을 하고 있었단 것을 알게 됐다. 녀석의 이름은 Rayan으로 파키스탄에서 온 요리사인데 형이 있는 스페인으로 갈 거라고 했다(아마도..) 같이 역 밖으로 나가서, 문이 닫히고 불이 꺼지는 역을 바라봤다. 조금 시간이 지나자 주변의 인적도 뚝 떨어졌다. 고작 10월 말인데 새벽이 되니 급격히 추워졌다. 스페인으로 가기 전에 잠시 들른다는 생각으로 왔기에 겉옷은 얇은 후드 하나가 고작이었다. 졸려서 잠시 눈을 감았다 떴는데, 당연히 잠시 지났을 뿐이었다. 추워서 잠이 들 수 없었고, 이러다 얼어 죽을 수도 있겠단 생각이 문득 들어 같이 공중전화부스로 들어갔다. 눈을 떴다 감았다를 반복하다 보니 Rayan은 어느새 나를 끌어안고 있었다. 남자를 그렇게 끌어안고 있는 게 딱히 좋은 기분은 아니지만, 그렇게 서로의 체온으로 추위가 미약하게나마(아주 조금) 견딜 만 해졌다.


날이 밝자 우린 초췌한 모습으로 작별인사를 나눴다. 나중에 연락하자며 이메일을 주고받았지만, 어디 있는 지도 알 수 없다. 다음날 예약해둔 숙소에 짐을 두고 한 호화로운 쇼핑몰에 들어갔는데, 지난밤이 떠올라 실소가 지어졌다.


미뤄진 날짜에 TGV를 타고 남쪽으로 향했다. 중간에 Bayonne이란 작은 마을에 정차했는데 카페테리아에 앉아 맥주를 시켜 마셨다. 마치 전화부스에서 쪼그려 앉아 밤을 새 본 적이 없는 사람처럼 맥주의 맛을 음미했다. 기차를 다시 타는 시간까지 마을을 둘러봤는데 시간이 충분할 정도로 아담한 곳이었다. 마음이 평화로워지는 곳이어서 신혼여행으로 와도 괜찮겠단 생각이 들었다.  


기차를 다시 타고 조금 지나자 프랑스/스페인 접경지역의 작은 마을인 산티아고 순례길의 출발점, 생장 피에르 포트(셍-쟝-삐에-드-뽀흐, Saint-Jean-Pied-de-Port)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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