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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은경 Aug 29. 2023

가을맞이 동시 두 편

가을시작_이상교,  아빠 자전거_박덕희


가을 시작

이상교 



세모 얼굴 귀뚜라미는

돌 틈을 비집어 울고

하늘은 바람을 풀어

구름을 쓸기 시작한다. 


물들기 시작한 나뭇잎들은

마침내 어미 나무 발치에

수수럭수수럭

발을 묻을 것이다. 


여름내 오가던 길을 바꾼

달님은

동향인 내 방 창을 기웃대시다

방바닥에 희디흰 발을

내려놓으실 것이다 


자다가 깬 밤,

나는 달님 발등 위에

내 발을 살몃 대 볼 일이다.  


≪찰방찰방 밤을 건너≫ 문학동네  2019     






가을이 이마를 내밀었어요.

나무들은 초록을 지울 것이고

하늘은 더 푸르러지겠지요.

고추는 태양빛에 마르면서 더 매워져 갈 것이고 

풀벌레들은 목청을 높여 짝을 찾을 테고요.

모과도 여름내 모은 노란빛을 수줍게 내놓겠지요.

가을이 오시면

마중을 해야 할 텐데

시인처럼 내려앉은 달빛에 발을 대보면 어떨까요?






아빠 자전거

박덕희  



흰둥이 앞세우고

둑길 걸으면

저 멀리 왕버들 이파리에 묻은

저녁이 푸르스름해져 와요 


차르르르 차르르르 


아빠가 귀뚜라미를 몰고 와요

가만가만 가을을 몰고 와요 


흰둥이가 뛰어가

컹컹 가을을 맞이해요 


귀뚜라미들이

아빠를 무동 태우고

둑길을 달려와요  


《호랑이는 풀을 안 좋아해》 브로콜리숲 2020    






푸르스름한 저녁에

아이는 흰둥이랑 아빠를 마중 나가는군요.

아빠가 몰고 오는 귀뚜라미 소리가 더 커지면

아이는 아빠를 만날 테지요.

아마도 아이는 자전거 뒷자리에 타고

아빠 허리를 꽉 잡았겠지요.

아빠 얼굴은 안 보아도 알 수 있어요

얼굴 가득 미소가 번졌을 거예요.

흰둥이는 왕버들에 묻은 저녁을 털면서 달렸을 테고요.

귀뚜라미 소리는

마당 안까지 따라왔겠지요. 

아이는 아빠랑 흰둥이랑 같이

마당에 가득한 가을 소리를 밤늦도록 들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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