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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아빠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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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리글 Oct 16. 2024

큐티클

아빠 야단 좀 쳐 줘

“어머, 아기 손이 어쩜 이리 예뻐?”

큰 딸을 낳고 손을 보니 분명 양수에 퉁퉁 불은 상태일 텐데도 손가락이 가늘고 길쭉한 게 너무 예뻤다. 보는 사람마다 갓 태어난 아기 손 같지 않다고 했다. 얼굴은 인체의 신비를 떠올릴 만큼 남편이랑 똑같이 생겼는데 손은 배구선수를 꿈꿨던 남편 손이 아닌 내 손을 닮았다. 꼭 쥔 손을 살살 펴 보면 주먹 안에 먼지가 한 줄씩 끼어 있곤 했다. 먼지를 털어내고 그 가느다란 손 안으로 내 검지를 살짝 집어넣으면 다시 꼭 쥐어지는 주먹. 그 따뜻한 감촉. 그 손을 친정아빠는 몹시 좋아했다. 내 손을 닮은 그 손은 사실 아빠 손을 닮았다.


내 몸에서 가장 예쁜 곳을 고르라고 하면 망설이지 않고 손이다. 손톱 바디도 긴 편이고 손가락도 길쭉길쭉하다. 손바닥도 많이 두껍지 않고 손가락과 어우러지는 적당한 비율을 가졌다. 물론 애를 둘 낳고 몇 십 킬로 찌고 나니 가뜩이나 큰 손은 두툼해졌고 손가락에 반지를 끼려면 금값이 많이 들어 슬프지만 예전엔 그랬다. 누구나 내 손이 예쁘다고 입을 댔다. 상대적으로 잘나지 못한 얼굴 때문에 더 돋보였을 수도 있다. 누구나 칭찬하려고 들면 예쁜 구석이 하나쯤은 있으니까.


아빠는 내 손에 보험을 들자고 했다. 농담이었지만 그 정도로 내 손을 좋아했다. 손톱이 약간만 길어도 깔끔하게 자르라고 했다. 매니큐어는 생각도 하지 말라며 순수하고 깨끗한 그 손을 잘 간직하라고 틈만 나면 내 손을 보며 흐뭇해했다. 그렇지만 내 손이 늘 어디 내놓기에 깨끗하지는 않았다. 나는 어릴 때부터 초조하거나 스트레스 받으면 손거스러미를 물어뜯는 버릇이 있었다. 그 여파로 손톱 밑은 늘 퉁퉁 부어있거나 피딱지가 앉았고, 항생제를 먹어야 할 정도로 곪기도 했다. 그래도 그게 내 손이려니 하며 살았다. 예쁘고 깨끗해 보이지만 어딘가 모르게 곪아있는 구석. 내 삶은 딱 내 손을 닮았다. 고통을 이겨내는 힘이 약한 나는 내 안을 물어뜯어야 웃을 수 있었다. 마음의 정리가 필요할 때 여지없이 나는 엄지손톱 밑을 물어뜯었다. 아빠는 왜 예쁜 손을 이렇게 험하게 만드냐고 안타까워했다.


이런 손톱을 반기며 살살 케어해주는 곳이 있었으니 바로 네일샵이었다. 나는 애들을 어느 정도 키우고 한 십년 전부터 네일샵을 다니기 시작했다. 부모님이 지방에 살고 나는 서울에 사니까 아빠 몰래 손톱에 색을 발라도 내려갈 때만 지우면 되는 거였다.

“고객님, 이렇게 예쁜 손을 어쩌자고! 손톱 이렇게 뜯으시면 안 돼요. 제가 이번에 잘 정리해 드릴 테니 다음에 오실 때는 뜯지 말고 오셔야 해요. 아셨죠?”

나는 매번 부끄러운 듯 끄덕였다. 그녀는 능숙하게 오일을 발라 푸셔로 큐티클을 밀어냈다. 가뜩이나 붉은 속살을 내민 내 생살이 다치지 않게 살살 밀어내고 니퍼로 잘라냈다. 깨끗하게 정리된 거스러미, 그래서 사라져버린 큐티클 위로 반들반들 발린 색이 신기했다. 그녀는 내가 손톱을 너무 짧게 깎은 탓에 손톱 끝부분이 살을 파고들어 손가락 양쪽 말단이 부풀어 올라 네모난 모양이 되었다며 손톱도 짧게 자르지 말라고 친절히 알려주었다. 손톱이 자기 역할을 못 하면 손가락 살이 그 보호 역할을 하기 위해 부풀어 오르는 것이라 했다.


큐티클이라는 말을 그 때 처음 알았다. 큐티클은 손톱과 손가락 사이의 연결 부분을 말하는데 내가 쥐어뜯거나 입으로 뜯어내는 손톱 주변의 거스러미를 포함한다. 투명하고 각질처럼 하얗게 보이는데 네일케어 과정에서는 이 큐티클을 다 잘라내야 깔끔하게 색을 얹을 수 있는 손이 된다. 내 지저분한 큐티클을 말끔히 정리하고 난 후의 네일샵 직원들의 표정은 때를 미는 사람들이 피부를 벌겋게 밀어내고 난 후의 후련함처럼 보였다.


내 손톱은 케어하고 색을 바를수록 예뻐졌지만 지울 때마다 종잇장처럼 얇아지고 있었다. 더 이상 거스러미를 물어뜯진 않았지만 큐티클을 정리하다보면 내 생살도 같이 뜯겨나가 빨갛게 피를 보이기도 했다. 가끔은 생각했다. 이걸 꼭 다 정리해야 하나? 어느 날 문득 찾아보니 큐티클은 내 손톱의 성장에도 관여하고 이물질이 들어올 수 없게 보호하는 역할도 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러나 네일샵에서 큐티클은 깔끔한 칼라도포를 위해서는 잘라내야 하는 각질에 불과했다. 나는 매번 큐티클을 끝까지 정리하지 말아달라고 어물쩍 흘리듯 부탁해보았다가, “안 아프게 잘 해 드릴게요.”하는 미소에 그만 입을 닫아야 했다.


친정을 갈 때면 급히 가서 네일 제거를 했다. 그러면 내 손톱은 자동으로 큐티클까지 깨끗한 손이 되어 아빠를 만났다. 아빠는 검사하듯 내 손을 보고 어쩜 이렇게 손이 깨끗하냐고 좋아했다. 손톱 밑도 예쁘다고 좋아했다. 아빠를 속이는 죄책감보다는 기쁘게 해드리니까 괜찮다는 변명이 앞섰다. 그래서 아빠는 내 손톱에 뭐가 발린 걸 본 적이 없다.


아빠가 뇌졸중과 코로나로 몇 번의 위기를 넘기고 나이가 들면서 이젠 내 손톱에 투명한 영양제정도는 발라도 분간하지 못하는 세월이 되었다. ‘이젠 가끔 연한 색은 발라도 모르려나?’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아빠가 얼마나 예민한 사람인데, 내 눈썹길이나 바지기장, 립스틱 색깔까지 잔소리하는 사람인데 아빠를 어찌 속일까 싶어 나는 꼭 네일을 지우고 내려갔다.


그러던 어느 날 아빠가 떠났다. 아빠는 코로나로 입원한지 5일 만에 떠났고, 내게 네일 지울 시간을 주지 않았다. 그 사이에 나는 아빠를 만나러 두 번이나 급히 내려갔고 임종을 맞았다. 나는 내려가기 전에 네일샵을 가지 않았다. 나는 눈을 뜨지 못하고 사경을 헤매고 있는 아빠의 손을 만졌다. 나와 꼭 닮은 손. 하늘색이 발린 내 손톱을 아빠는 볼래야 볼 수가 없었다. 아빠는 감은 눈을 뜨지 않았다.


“아빠, 일어나서 나 좀 야단쳐 줘.”

나는 아빠 귀에 대고 말했다. 한 쪽 귀가 청력을 완전히 잃었기에 나는 반대쪽으로 돌아가 내 목소리가 들리기를 간절히 기도하며 큰 소리로 말했다.

“아빠, 나 지금 손톱에 매니큐어 발랐다니깐! 아빠가 제일 싫어하는 거!”

나중에는 아빠 눈꺼풀을 잡고 들어 올리며 손을 들이밀었다. 그래도 아빠의 눈동자는 길을 잃은 채였다. 그래서 결국 나는 야단맞을 기회조차 갖지 못하고 아빠를 보냈다.


나는 장례식 내내 절을 하며,

- 아빠 미안해. 미안해.

말을 삼켰다. 또 절을 하고,

- 아빠가 제일 싫어하는 손톱 발랐으니까 일어나서 나 좀 야단쳐 주면 안 될까?

아빠가 인상 쓰면 얼마나 무서운지 아는데, 아빠의 영정사진은 날 보며 웃고 있었다. 내 하늘색 손톱에 화가 나지 않는 걸까. 몇 번을 생각해도 실감이 나지 않았다.


선산에 올라가서 아빠를 묻을 때도 하늘색 손톱으로 흙을 두드렸다.

-아빠 억울하면 일어나.

아빠가 약 올라서 벌떡 일어났으면 좋겠는데, 내 손톱은 맑은 하늘과 참 잘 어울리기만 했다.


서울로 올라온 뒤 나는 네일을 지우러 갔다. 제거할 때를 넘겨서 큐티클이 많이 자란 상태였다. 하늘색은 이미 새로 올라오는 손톱에 밀려 올라가 붙을 곳을 잃고 허공에 뜬 상태였다. 다시 큐티클이 제거되고 아빠가 좋아하는 내 맨 손톱이 모습을 드러냈다. 내 손톱은 많이 상해있었다. 잠시 망설였다. 이제 색을 바르지 말까? 아니면 바를까? 기다리는 그녀를 앞에 두고 나는 빨리 결정해야 했다.


“발라주세요, 그나마 살색과 비슷한 색으로요.”

내 맨 마음을 드러내고 싶지 않았다. 그날 네일샵에서 나는 아빠의 죽음을 입 밖에 내지 않았다. 평소와 똑같이 웃고 네일케어를 받았다. 앞으로도 나는 손거스러미를 물어뜯지 않을 것이며, 깨끗하게 정리된 큐티클과 깔끔하게 발라진 네일을 유지하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손톱을 보면서 매번 아빠 생각을 하기로 했다. 그러면 언젠가 다시 아빠를 만날 때 “이놈!”하며 아빠가 웃으며 내 손등을 찰싹 한 대 때릴 것 같다. 그래야 만나지. 핑계가 좋다. 마음이 가벼워졌다. 내 손은 아빠 손을 꼭 닮았다. 다음 생에서도 이 손으로 태어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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