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은중과 상연’ 명대사 속 인생이야기ㅡ우정 편
한국. 드라마. 15부작
넷플릭스. 2025. 9.12.
연출: 조영민 극본: 송혜진
너 이거 되게 폭력적인 거야. 아니?
이 드라마는 딱 한 마디로 정리된다. ‘상연은 마지막까지 이기적이었다.’ 10대에 은중과 만나 친구가 되고 우여곡절을 겪으며 절교와 만남을 반복하더니 40대에 다시 은중을 찾아와 자기가 곧 죽는단다. 암으로 한 달 안에 죽으니 스위스로 함께 가서 안락사를 할 자신의 마지막을 지켜달라고 한다. 드라마 1회 만에 다짜고짜 이렇게 밀고 들어오는 주인공이라니. 은중이 상연에게 내뱉은 “너 이거 되게 폭력적인 거야. 아니?”라는 말은 나에게도 마찬가지로 다가왔다. 마치 꿔 준 돈을 받으러 온 사람처럼 당당한 상연. 도대체 이 두 명의 여자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 드라마를 보는 내내 그 궁금증은 뜻밖에도 숨겨두었던 내 청춘의 민낯을 자꾸 건드렸다. 애써 잊으려 묻어두었던 그날들을 퍼 올렸다.
“너 이걸로 맞으면 얼마나 아픈지 알아? 이건 나무보다 더 딱딱하단 말이야.”
은중과 상연의 첫 만남은 199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초등학교 4학년인 은중의 반에 상연이 전학을 왔다. 동네에 새로 지어진 아파트에 이사 온 상연은 부유한 환경에 예쁘고 공부도 잘하는 모범생이었다. 상연은 당연한 듯 바로 반장이 되었고 당시 분위기가 그러했듯 선생님이 준 권력으로 떠드는 아이들의 손바닥을 때렸다. 억울하게 손바닥을 맞은 은중은 상연에게 소심한 복수를 시작하고 둘은 그렇게 앙숙이 됐다.
결국 상연은 은중이 그 일로 마음에 앙금이 남았다는 걸 알았다. 은중의 마음을 풀기위해 상연은 리코더를 주며 자신의 손바닥을 때리라고 한다. 하지만 은중은 “너 이걸로 맞으면 얼마나 아픈지 알아?”라며 때리지 않는다. 그 순간 상연은 깨달았다. ‘아, 이 아이는 내가 이길 수가 없구나.’ 은중은 상대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아는 아이였다.
상연은 그렇게 누구에게나 사랑받는 은중의 성격과 가난하지만 따뜻한 엄마가 있는 환경을 부러워했다. 반면, 은중은 상연의 뛰어난 미모와 성적, 그리고 부유한 환경을 부러워했다. 심지어 상연에게는 멋진 오빠, ‘천상학’이 있었다. 이렇게 은중과 상연은 서로 가질 수 없는 부분을 열망하며 20대, 30대, 40대가 되도록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한다.
나에게도 그런 친구가 있었다. 6학년 때였나. 서울에서 전학을 온 그 아이는 얼굴도 예뻤고, 키도 컸고, 모든 면에서 성숙했다. 그러면서 어딘가 모르게 이기적이어서 당시 어리숙했던 나는 그 아이에게 휘둘렸다고나 할까. 나는 그 아이가 좋으면서도 힘들었다. 하지만 수학여행을 갈 때 바나나를 줄 테니 내 짝꿍 말고 자기 옆 자리에 앉아달라고 했던 걸 보면 애는 애였다. 나는 단호히 거절했다. 바나나보다는 친구간의 의리가 더 중요한 건 아는 나이였다. 한참 연락을 주고받다가 끊어졌다가, 그렇게 은중과 상연처럼 우리도 좋아했고 반목했다. 엄마가 어울리지 말라고 했지만, 나는 그 아이의 연락을 받으면 또 흔들렸다. 그렇게 아줌마가 될 때까지 어울렸지만, 어떤 오해 때문이었는지 그 아이는 어느 날 내게서 떠나갔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그 친구뿐이 아니다. 나의 삶 속에는 수없이 많은 은중과 상연이 존재했다. 나는 어느 순간에는 은중이기도 했고 상연이기도 했다. 나는 결코 은중처럼 곧지만도 않았고, 상연처럼 모든 면에서 뛰어나지도 않았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내가 잊고 있던 나의 과오와, 이유도 모를 상실감을 주고 떠나갔던 친구들의 모습까지 강제로 소환했다. 누구의 잘못이었건 간에 나는 그들이 너무 보고 싶어졌다. 시간은 시시콜콜한 사연 따위는 파묻어버렸다.
천상학과 함께 한 10초를
잊지 못한다.
오빠는 셔터 스피드를
125에 맞추라고 했지만
나는 60에 맞췄다.
60분의 1초가 더 기니까.
은중의 첫사랑이자 상연의 오빠, ‘천상학’은 이 드라마에서 모든 비밀과 갈등의 키를 쥐고 있는 인물이다. 공부도 잘 하고 잘생긴 데다 서울대를 합격하고도 행복하지 않았던 그는 사실 사진을 전공하고 싶었다. 그러던 평범한 어느 날, 은중에게 사진 찍는 방법을 가르쳐 주고 사진기를 준 후 돌아올 수 없는 먼 길을 떠나버린다. 마지막인지 꿈에도 몰랐던 사진을 함께 찍은 날, 은중은 셔터스피드를 60에 맞췄다.
"이건 셔터 스피드가 60분의 1초야. 이 안에 60분의 1초가 담겨 있다는 의미야. 그런데 멈춰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60분의 1초만큼 움직이고 있어. 이렇게 사진을 찍는다는 건 시간을 채집하는 거야.
아주아주 짧은 순간이지만 그 안에 진짜 진실이 담겨 있어. 근데 사진은 또 거짓이기도 해. 짧은 순간이니까 얼마든지 거짓을 진짜처럼 보이게 할 수 있는 거지."
거짓을 진짜처럼 보이게 할 수 있는 게 사진이고, 반대로 짧은 순간의 진실을 오래오래 담을 수도 있는 게 사진이다. 천상학은 사진을 찍을 때 자신의 어떤 모습을 담고 싶었을까. 거짓? 혹은 진짜? 은중은 아무것도 몰랐지만 본능적으로 좋아하는 사람과 조금이라도 길게 있고 싶었고, 천상학은 가짜인 자신의 모습이라도 좋아해주는 귀여운 소녀와 그 순간을 진짜처럼 남기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오빠가 이 세상에서 사라진 이유를 모른 채, 자기 자신을 원망하며 살아야 했던 상연에게 은중은 어떤 의미였을까. 자신의 유일한 친구였지만 자신은 가질 수 없었던 모든 걸 가졌던 친구. 오빠와 웃음을 나누고, 오빠의 마지막 사진을 함께 찍었던 친구. 그 친구에게 느끼는 감정은 어떤 것이었을까. 심지어 상연의 집안이 망하고 혼자 화장실도 없는 집에서 살 때, 은중은 오빠와 이름이 같은 선배를 만나고, 사람들에게 여전히 사랑받는 모습일 때. 상연은 버티려고 했던 것 같다. 은중에게 상처주지 않으려 노력하는 듯 보였다. 하지만 운명은 가혹하고 삶은 공평하지 않다. 심지어 교활하다. 늘 사람을 시험한다. 상연은 결국 자신을 망가뜨렸다.
너처럼 사랑하지 못해서
너처럼은 할 수가 없어서
아낌없이 줄 줄도, 받을 줄도 몰라서
너를 좋아하는 것도 미워하는 것도
나는 힘이 들었다.
그래서 파괴했다.
너를 파괴하고 싶어서
나를 파괴하고 싶어서
20대를 결국 오해로 물들이고 헤어진 둘은 사회에서 PD로 다시 만나게 된다. 하지만 상연은 또 반복되는 질긴 그들의 인연의 고리를 기어이 끊어내고야 만다. 은중의 시나리오를 훔치며 은중을 완벽히 배신한다. 오빠와 이름이 같으면서 은중의 남자였던 ‘김상학’을 가지지 못할 바에 스스로를 도덕적으로 파괴하는 길을 선택했다. 그리하여 제작자로 대성공을 거두고 난 후, 이제 안락사를 선택한 자신을 용서하고 함께 스위스로 가자고 은중을 찾아온 것이다.
보면서 이해가 가지 않아야 정상인데, 왜 나는 상연에게 또 감정을 이입하고 있는지 답답했다. 소중한 것을 빼앗긴 사람의 분노는 엉뚱한 사람에게로 향하기도 한다는 걸 나는 살면서 많이 겪었다. 아빠가 없는 친구가 있었다. 그는 내가 아빠의 사랑을 많이 받는 딸이라는 이유로 나를 향해 미움의 칼끝을 겨누기도 했다. 또 어떤 날엔, 내가 다른 친구들이랑 노느라 한 친구를 외롭게 만들어서 그 친구의 마음에 나에 대한 증오를 남겨놓기도 했다.
그 때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지나고 보니 내가 아빠를 잃어보고, 외로워져 보니 어렴풋이 알겠다. 내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의 골은 누군가를 향해 두서없이 튀어나왔다. 남편의 무심한 말 한 마디에도 내 분노는 툭 튀어나왔다. 가장 가까운 사람, 나를 알아줘야 할 사람에게 서운함은 배가 되었다. 분명 잘못된 것이다. 하지만 겪어보지 않는 한, 사람은 다른 사람을 완벽히 이해할 수 없다. 그래서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상연의 감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싫어하는 건 생각이 안 나서 좋은 거고.
미워하는 건 생각나서 힘든 거야.
상연은 은중에게 훗날 이야기한다. ‘좋아하기만 했으면 좋았을 텐데 미웠다.’고. 상연의 말도 안 되는 감정은 미움이었다. 결국 계속 생각나는 은중에 대한 감정을 떨쳐버릴 수 없어 먼저 배신하고 떠난 것이다. 얼마나 나쁜 짓인지도 알고, 말도 안 되는 변명이라는 것도 안다. 그래도 나는 그때쯤 이미 상연의 감정에 설득되고 말았다. 욕 한마디 퍼붓고 안아주고 싶을 만큼 그녀의 인생이 가여웠다. 차라리 싫어만 하지...불쌍했다.
내 삶에서도 인간관계는 항상 가장 어려운 화두였다. 나는 친구가 많았지만 또 그로 인한 상처도 많이 받았다. 물론 내가 준 상처도 만만찮았을 것이다. 그래서 지금도 사람들과 가까워지는 건 어렵지 않지만 상처주거나 받지 않도록 거리를 어느 정도 유지하는 편이다. 싫은 것 보다 더 무서운 게 미운 것이다. 내 마음에 미움이 자리 잡지 않도록, 내 자신과 세상과의 거리를 늘 유지하려 노력한다. 물론 여전히 내가 좋아하는 사람에게 그대로 엎어지는 건 고칠 수 없는 고질병이다. 너무 좋아하면 갖고 싶고, 그 선을 넘으면 미워지는 법이니 상대를 좋아하는 내 마음을 다스리는 수밖에.
네가 날 받아주는구나. 끝내, 네가.
“네가 어떤 성공을 거두든
넌 영원히 보잘 것 없는 도둑년이야.
네가 얼마나 빛나는 아이였는지 조금이라도 알면 너...너한테 이런 짓 못해.
누가 널 끝내 받아 주겠니?“
상연이 은중의 시나리오를 훔쳐갔을 때, 새로운 시작을 앞 둔 상연에게 은중은, ‘널 받아주는 사람은 없을 거라’ 냉혹하게 말한다. 상연은 그 저주에 걸려 오랫동안 사랑받고 싶었고 성공하고 싶었지만 결국 병들고 외로운 혼자만 남았다. 그런 모습으로 돌아온 상연을 은중은 이번만은 더 받아주지 않으려 계속 내친다. 하지만 자신의 모든 걸 다 내려놓고, 은중에게 무릎꿇고 사과하며, 그동안 전하지 못했던 마음을 고백하는 상연을, 자꾸만 안겨오는 옛 친구를 은중은 더 이상 밀어내지 못한다. 끝내, 상연을 받아주고 만다.
어떤 사람은 은중을 호구라고 할 수도 있겠다. 그래서 생각해본다. 내가 은중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30년을 반목하고 질투하고, 다시 화해하던 그 지겨운 인연의 끝을 내 손으로 잘라낼 것인가. 과연 상연의 마지막을 함께 하는 스위스행 비행기에 탈 수 있을 것인가.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알았어.
난 함께 갈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나를 좋아하는 사람을 내치지 못한다.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을 버리지 못한다.
미안하다는 말, 그 한 마디로 지난 세월이
지워지지는 않겠지만
나는 함께 할 수 있을 것이다.
죽음 앞에서 이해되지 않는 것이 있을까.
상연은 끝까지 이기적이었다.
그러나 상연이 평생 은중에게 진 마음의 빚은
어찌보면 내 청춘의 맨얼굴이기도 했다.
나도 누군가에게는 끄집어내기 껄끄러운
과거일테다. 퉁치자.
그래서 삶이 골백번 나를 속일지라도
나는 기꺼이 한 번 더 속아주려 한다.
죽음이 무조건 모든 걸 덮어줄 순 없다.
하지만 적어도 용서는 할 수 있다.
잃고 나면 다시는 볼 수 없으니까.
그게 사랑하는 사람들을 떠나보내 본
나의 마음이 주는 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