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라라랜드(LALA LAND)’명대사 다시 읽기- 사랑 편
장르: 뮤지컬, 로맨스, 드라마
감독: 데이미언 셔젤
개봉: 2016년 12월 7일
때로는 넘어져도 일어나면 그만이야.
아침은 다시 오니까. 태양은 다시 뜨니까.
자동차 경적이 울려대는 꽉 막힌 고속도로 위. 모두 차에서 내려 춤을 춘다.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면 되는 청춘에 대하여 노래한다. 오래된 클래식 카를 모는 세바스찬은, 대본연습에 골몰하느라 차를 출발하지 못한 미아와 고속도로 위에서 서로 손가락 욕을 나누며 처음 만난다. 미아는 카페에서 일하며 오디션 준비를 하는 고된 배우 지망생이며, 세바스찬 또한 재즈를 사랑하지만 고정된 일거리가 없는 피아노 연주자이다. ‘라라랜드’는 로스앤젤레스의 별명이자 ‘현실과 동떨어진 상태’를 의미하곤 하는데, 결국 이 영화는 꿈을 꾸는 사람들을 위한 곳, 낭만적이고 비현실적인 LA에서 흔들리는 청춘들이 만나고 사랑하고 이별하는 이야기이다.
“낭만적이란 말을 왜 나쁜 말처럼 써?”“미납 청구서는 낭만적이지 않아.”
세바스찬의 누나는 그가 재즈나 쫓으며 인생을 진지하게 살지 않는다고 생각해, 미납 청구서는 낭만적이지 않다고 일갈한다. 나도 ‘낭만적’이라는 말이 더 이상 사랑스럽게만 들리지는 않는 나이가 되었다. 생각해보면 젊을 때는 인생에 좀 위기가 찾아와도 나는 다 극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세바스찬처럼 ‘불사조처럼 다시 날 거야’라고 믿었던 것 같다. 하지만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집을 사고, 매달 생활비를 계산하며, 인생은 꿈이 아니라 돈이 완성시킨다는 걸 부인할 수 없게 됐다. 그렇다. 나는 변했다. 국문과를 입학할 때부터 취업보다는 낭만을 쫓는 자객이었던 나는 이제, 영화과를 가고 싶다는 둘째에게 밥 벌어먹고 살기는 어려울 수 있다고 겁부터 주는 어른이 됐다.
하지만 영화 속 세바스찬과 미아는 여전히 가슴 속에 꿈이 가득한 청춘들이었다. 서로 재수 없어하면서도 몇 번의 우연한 만남 끝에 그들은 사랑에 빠졌다. 원래 젊음의 스파크가 튈 때는 그 열기에 서로 튕기기도 하는 법이다. 함께 하는 이 멋진 밤만 아깝다고, 서로 매력적이지 않다고 투덜거리면서도, 그리피스 파크에서 달빛 아래 둘이 춤을 추는 장면을 보며, 나는 “마음에 없는 소리 하네.”가 절로 입 밖으로 터져 나왔다. 내 20대의 튕기기 권법들이 떠올랐다. 인생이 흔들릴수록 더 좋은, 마치 놀이기구를 타는 듯 하던 날들이 말이다. 그러다 얼마 전 만났던 대학교 동기들이 떠올랐다.
여름의 뒷심이 한창이던 8월이었다. 입학 30주년이라고 대학 동기들이 모였다. 나는 그 자리에 가지 못했고, 서울에 사는 동기들 4명이 을지로 근처의 와인바에서 따로 만났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30년이면 무엇이 변하는지 아는가? 일단 몸무게 앞자리가 변한다. 그리고 미혼에서 기혼으로, 혹은 다시 미혼으로 돌아오기도 한다. 얌전하고 수줍음 많던 성격들은 모두 걸걸한 아줌마, 아저씨가 되었다. 목소리 데시벨이 높아진 것은 물론이다.
우리가 대학 시절 모두 친했던 편은 아니었다. 속이야기를 나눌 정도는 아니었다는 뜻이다. 그런데 30년이 지난 우리 앞에 어두컴컴한 바의 조명과 술이 있으니, 모두가 솔직해졌다. 대학 다닐 당시의 속이야기를 너나할 것 없이 털어놓기 시작했다.
어려운 가정형편에 등록금을 벌기 위해 알바하느라 청춘을 즐기지 못한 이도 있었고, 같은 이유로 성적에 비해 낮은 대학을 와야 했던 이도 있었다. 연애 한 번 하지 못하고 결혼을 해 후회하는 이도 있었고, 그렇게 결혼을 하고 나서야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뒤늦게 알게 된 이도 있었다. 공통적으로 후회하는 건, 모두 ‘현실에 쫓겨 이렇게 살지 말걸’이었다. 피토하듯 열변을 토하는 녀석들이었다. ‘연애를 더 해야 했다.’ ‘이 몸 아껴서 뭐한다고 그랬을까.’, 되돌아갈 수 있다면 더 많이 놀고, 더 많이 공부하고, 더 많이 부딪치고 싶다는 게 결론이었다. 분명 우리는 흔들렸고, 많은 걸 경험했음에도, 그래도 아쉬웠다.
전통만 고집하면서 어떻게 혁명가가 돼?넌 과거에 집착하지만 재즈는 미래에 있어.
세바스찬과 미아의 사랑에 위기가 찾아왔다. 미아는 세바스찬이 미래에 하게 될 재즈클럽 이름을 미리, “셉스(SEB’S)라고 지어놓기도 할 정도로 그와 재즈를 사랑했지만, 세바스찬은 현실적인 제안을 받고 고민을 한다. 과거 함께 연주했던 밴드의 일원이 다가와, 좀 다른 음악이지만 함께 연주하며 방송에도 나오고 투어도 하는 게 어떻겠냐고 묻는다. 재즈는 과거에 있는 게 아니라며 말이다. 세바스찬은 미아와 함께 하는 미래를 꿈꾸지만 아직은 내세울 게 없는 자신의 형편이 마음에 걸려 승낙을 한다. 미아는 1인극을 연습하며 꿈을 향해 노력하는데, 세바스찬은 그마저 보러 오기도 힘들게 바빠진다. 드디어 둘간에 갈등이 생긴다. 싸우느라 미처 보지 못해 새카맣게 타 버린 빵 같은 둘의 관계. 그들은 점점 다른 곳을 향해 달려간다. 오래된 꿈을 쫓는다는 건 과거를 쫓는 걸까, 미래를 쫓는 걸까. 그들에게 정답이 있을까.
‘시티 오브 스타즈(City of Stars)’
별들의 도시여, 넌 나만을 위해 반짝이는가?
별들의 도시여, 눈에 안 보이는 게 너무 많구나...(중략)
별들의 도시여, 사람들이 원하는 건 오직 하나
술집에서도 북적이는 식당에서도
그건 사랑. 우리가 찾는 건 누군가의 사랑이 전부지.
설렘, 시선, 손길, 댄스, 온 하늘을 밝혀주는 눈동자 속의 빛
온 세상을 휘청이게 할 다정한 목소리
곁에 있어줄 테니 마음 놓으란 말
난 상관 안 해. 내가 어디로 가고 있든 이 미칠 듯한 느낌만 있으면 돼.
쿵쾅거리는 심장 난 이 느낌이 머물러 주기 바라.
세바스찬의 피아노 연주에 맞춰 행복한 둘이 함께 하던 노래의 한 구절이다. 별들의 도시에서 빛나고 싶은 청춘들의 노래가 마음을 울렸다. 사랑만 있어도 된다는데. 나는 그들이 많이 흔들려도 결국은 너무 상처받지 않고 그들의 꿈을 이루길 진심으로 바랐다. 흔들리는 건 청춘의 특권이니, 부디 포기하지는 말기를, 그리고 그들의 사랑도 함께 같은 방향을 바라보길 소망했다. 하지만 이별은 청춘의 부작용 같은 거라서 피하기도 어렵지만, 그들이 끝까지 사랑한다고 해피엔딩은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이별을 안 겪어본 사람이 있을까. 이별은 아픈 만큼 사람을 숙성시킨다. 그렇게 시간 속에서 익고 반죽된 결과물이 지금의 우리 모습이다.
하겠다는 의지만 갖고 이룰 수 없는
헛꿈 꾸는 그런 사람들 있잖아.
나도 그 중 하난가 봐.
함께 영화를 보며 꿈을 꾸던 리알토 극장이 폐업했다. 둘은 이제 서로 다른 곳을 향한다. 미아는 1인극에서 극장대관료도 못 낼 정도로 망신만 당하고 좌절하고 고향으로 내려간다. 그러나 캐스팅 디렉터의 전화를 받은 세바스찬은 다시 미아를 찾아와 오디션장으로 데려간다. 미아는 오디션을 볼 때마다 좌절했다. 툭하면 누가 중간에 불쑥 들어오고, 자기는 우는데 앞에선 웃고, 수없이 무시당했다. 실력도 재능도 없는 것 같다는 미아. 하지만 그녀의 꿈을 그 누구보다 잘 아는 세바스찬은 그녀를 끝까지 오디션장에 데려간다.
나도 자존감이 낮다. 그건 어릴 때부터 고질병이었다. 자신감 많아 보이고 목소리도 크지만, 사실 자신 있는 게 별로 없다. 세상에는 나보다 예쁘고 잘난 사람이 너무 많았다. 아무리 나 자신을 공작새처럼 부풀려 보아도 결국은 듬성듬성 빠진 초라한 깃털만 내 눈에 들어왔다. 실제로 중년은 탈모가 대세 아닌가. 그런데 그 와인바에서 만났던 동기 중 한 녀석은 달랐다. 학교 다닐 때 분명 우리 동기들 중 가장 수줍음이 많았던 애였는데, 일찍 결혼하며 몰랐던 세상을 이제 다시 배우며 인생을 즐기고 있었다. 아이들은 어떻게 키워야 한다든지, 돈은 어떻게 벌어야 한다는 등의 현실적인 조건은 중요치 않아 보였다. 애 셋을 혼자 키우며 쏟아지는 비바람을 온 몸으로 막아내다 보니 씩씩해진 걸까. 자신이 원하는 삶을 도리어 명확히 아는 것 같았다. 어쩌면 꿈은 꾸는 사람의 것이고, 자존감은 부딪치며 커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오디션 (Audition)
꿈꾸는 사람들을 위하여,
비록 바보 같은 그들이지만
아파하는 가슴들을 위하여, 망가진 삶들을 위하여
조금은 미쳐도 좋아. 지금까지 없던 색깔들을 보려면.
그게 우릴 어디로 이끌진 아무도 몰라.
그래서 우리 같은 사람이 필요한 거야.
그러니 모두 불러요. 반항아와 이단자, 화가와 시인과 광대들.
꿈꾸는 바보들을 위하여,
비록 미치광이 같은 그들이지만.
부서지는 가슴들을 위하여, 망가진 삶들을 위하여.
오디션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해달라고 하자 미아가 부르는 노래 오디션(Audition)이다. 그녀가 눈물을 글썽이며 토해내는, 꿈꾸는 바보들을 위한 노래는, 내 마음 깊은 곳에 숨겨둔 어딘가를 건드렸나보다.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나왔다. 나는 왜 꿈을 그만 꾸게 된 걸까. 내가 사는 현실은 왜 이리 삭막해진 걸까. 누구 못지않게 미치광이였는데. 늙어가는 몸뚱이 어딘가에 아직 그 꿈이 숨겨져 있는 걸까. 다시 돌아갈 순 없어도 버리지는 않았나보다. 버릴 수는 없었나보다. 내가 졸업앨범에 곱게 적었던, ‘소설가’, 세 글자가 다시 번져 나왔다.
그냥 흘러가는 대로 가 보자.
세바스찬은 오디션에 합격하면 파리로 가게 될 미아의 인생을 진심으로 응원한다. ‘그냥 흘러가는 대로’ 그들의 인생을 열심히 살아보자고 한다. 하지만 언제나 사랑할거라는 그들의 말은 결국 지켜지지 못했다. 5년 후, 유명한 배우가 된 미아는 세바스찬이 아닌 다른 남자의 아내가 되어 있었고, 예쁜 아기도 낳았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과 우연히 들른 재즈클럽 이름이 ‘셉스(SEB’S)'였고, 무대에서 세바스찬을 발견한다. 그가 연주하는 피아노 선율에 그들은 시간을 되돌려 행복한 삶을 이루는 상상을 하지만, 현실은 서로 돌아서며 미소만 띄울 뿐이다.
인생은 우리의 속마음도 모르고 무심히 흘러간다. 그들이 결혼을 했더라도 행복했을지는 알 수 없다. 내 철없던 시절의 사랑도, 꿈도 다 이루어지지 않고 흘러갔다. 그렇다면 꿈꾸는 이가 바보일까, 꿈꾸지 않는 이가 바보일까. 사실 꿈대로 다 이루고 사는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그렇기에 청춘은 더욱 꿈을 꾸어야 한다. 그래서 많이 아프고, 많이 흔들릴수록, 후회가 없을 테니. 혹은 영화 속 그들처럼 흔들린 만큼 각자의 꿈을 이루는 결말도 있을 수 있으니까. 사랑도 그러하다.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도 각자의 인생에서 지울 수 없는 존재로 남았다면, 한 페이지를 장식한 것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답지 않을까. 이 가을, 마음껏 사랑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