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사람들
볶은 고사리를 식힌다고 식탁 위에 두었다. 그리고는 뒤돌아서 바쁘게 저녁 준비를 하던 어느 날이었다. 한참 요리를 하다 다시 뒤돌았더니 고사리 그릇이 싹 다 비어있었다. 아이를 봤더니 입과 손에 기름이 번들번들했다. 무안한지 깔깔깔 웃고 있었다. 15년 전쯤일까. 오늘따라 문득 그날이 떠올랐다. 식탁 위로 쏙 올라오던 작은 손. 고사리를 통으로 집어먹던 그 손이 기억나 내 입가에 미소가 스몄다. 큰 딸은 어릴 때부터 아토피와 계란 알레르기가 심해 먹을 수 있는 게 많지 않았다. 그래서 자연식을 많이 먹여서일까. 어릴 때부터 고사리를 그렇게 좋아했다.
“미안하다. 예전엔 엄마가 요리 참 많이 했는데, 그치?”
딸과 그 날을 얘기하다보니 요즘은 예전만큼 요리를 많이 해주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건강이 좋지 못해 부엌에 오래 서있지 못해서다.
“엄마가 어릴 때 잡채랑 고사리볶음을 참 맛있게 해줘서 난 그 맛을 잊을 수가 없어. 진짜 잘 먹었어. 괜찮아, 더 안 먹어도.”
아이는 성인이 되도록 음식 맛들을 즐겁게 기억하고 있었다. 고맙게도 말이다.
그래서 좀 덜 미안해하기로 했다.
추억은 그런 것이다. 시간이 지나고 더 이상 곁에 없어도 기억하는 것. 지금은 존재하지 않으나 현재를 살 힘을 주는 것. 어떤 기억은 떠올리기조차 괴롭다. 그런 걸 억지로 지울 순 없다. 하지만 그 위로 차곡차곡 좋은 추억들을 쌓으면 훨씬 나아진다. 더러운 자갈이 가득한 물 컵에서 흙을 꺼내지 않고 깨끗하게 만드는 방법은 쉴 새 없이 깨끗한 물을 졸졸 흘려 넣는 것이다. 결국 더러움은 컵에서 넘쳐흘러 깨끗한 자갈만 남게 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가끔 어떤 이유들로 내 마음이 지옥일 때가 있다. 그럴 때 나는 좋았던 날들을 떠올린다. 지금의 나를 있게 만들어준 과거의 아름다운 순간들로 내 마음의 흙을 씻어낸다. 그래서 나는 지난 해 5월부터 스무 가지의 사라지고 있는 것들을 기억 속에서 퍼 올렸다. 내 곁에서 오래오래 있을 줄 알았는데 사라진 것들이나, 혹은 시대적 소명을 다 하고 종적을 감춘 것들, 자주 내 기억 속에 찾아오는 그리운 얼굴들과, 나의 안과 밖을 키워낸 소중한 장소들에 이르기까지, 나는 꽤 오랫동안 내 낡은 시간첩 속을 헤집고 다녀야 했다.
그리고 발견한 사실이 있다. 그것들은 그냥 사라진 게 아니었다. 내 기억 속에 또 다른 모양의 흔적으로 새겨져 있었다. 시장에서 배운 낯선 사람을 대하는 태도는 내 몸에 익어 있었다. 삐삐의 흑역사 때문이라도 통화를 할 때는 좀 더 말을 조심한다. 치카코를 잃고 난 후 더 이상 소중한 사람을 잃고 싶지 않아 서툴지만 인간관계에서 내가 조금 더 노력을 한다. 문방구가 있는 상가에 가면 반가워서 괜히 지우개 하나라도 사가려 한다. 나는 분명 그 추억의 흔적들로 인해 많이 변해 있었다. 그렇게 사라지는 것들은 분명 흔적을 남겼다. 그냥 사라지는 법이 없었다.
또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댓글을 다는 사람들을 보고 깨달았다. 사람들은 옛날을 그리워한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간은 모든 면에서 더 발전된 시대임에도 옛날 구닥다리 같은 것들을 도리어 더 그리워하고 있다. 나도 마찬가지다. 그리워하지 않으면 이런 글들을 썼을 리가 없다.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 한밤중에 식구들 몰래 친구와 통화를 해 본 적 있는가. 집 전화기에 손을 딱 대고 있다가, 정확히 벽시계가 약속시간 정시를 가리키는 순간, 전화벨이 “띠리~”소리 내는 찰나, “ㄸ”에 달칵 수화기를 들어야 했다.
“(속삭이듯) 여보세요..”
킥킥 웃음이 터져 나왔다. 성공했다는 기쁨에 내 숨소리는 가빠졌다. 덮어쓴 이불을 들썩이며 친구와 한참을 키득거리곤 했다. 가족들이 잠든 시간 친구랑 비밀이야기를 하는 게 뭐 그렇게 신났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불편함을 감수하며 가족들에게 들키지 않고 1시간이라도 통화를 하면 너무 행복했다. 그래봤자 짝사랑 이야기, 오늘 있었던 일, 혹은 내일 떡볶이 먹자는 얘기였을 텐데.
세월이 지나고 스마트폰이 생기고 내 방에 누워서 편하게 오래오래 통화료 걱정 없이 수다를 떨 수 있게 됐지만, 우리는 가끔 아이러니하게도 그 불편했던 아날로그 시절을 그리워한다. 그 때가 좋았지...하면서 말이다. 땀 뻘뻘 흘리며 몰래 전화기 들고 있어야 했던 시간이 뭐 그렇게 좋았을까. 아마도 그 때의 우리는 더 단순했고, 우리가 살던 공간도 더 단순했으며, 지금은 스마트폰의 터치 한 번에 너무 쉽게 순식간에 많은 게 바뀌는 무서운 시대라는 걸 체감해서일지도 모르겠다. 현재도 사실 미래에서 볼 땐 더 좋았던 시간일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한 채, 우리는 끝없이 과거를 그리워한다.
무엇보다 나의 소중한 추억들 속에는 문방구만, 공중전화만, 공중목욕탕만, 고무줄놀이만 있었던 게 아니었다. 그 속에는 나와 함께 그것들을 즐기던 사람들이 있었다. 나는 스무 편의 글을 다 쓰고야 깨달았다. 내가 쓴 이야기 속 사람들이 새겨준 흔적으로 나는 살아갈 힘을 얻었다는 걸. 매번 한 편, 한 편 쓸 때마다 그 사람들이 하나하나 기억났고 너무 보고 싶었다. 오늘 하루, 이 순간을 열심히 살다보면 만날 수 있는 사람은 만나질 것이다. 그렇지만 만날 수 없는 사람은...그리워하다가 나중에 만나겠지. 어차피 이 세상 모든 것들이 사라지다 보면, 나도 사라질 것이니까. 그 때를 위해 오늘 하루도 성실히 살아내야겠다. 그리고 그 때 말해야겠다. 정말 고마웠다고. 덕분에 잘 살았다고.
그동안 <문방구가 사라졌다> 브런치북을 사랑해준 분들께 마음 속 깊이 우러나오는 감사인사를 올립니다. 짧았던 파리 여행기를 제외하면 처음으로 정성들여 가꾸고 완결한 저의 첫 브런치북입니다. 출판사를 통해 종이책이 나와야 보통 책이라 이름 붙이지만, 구독자들과 소통하며 웃고 울던 너무나 소중했던 시간들이어서 제게는 감히 작고 소중한 책이나 다름없네요.
처음 브런치북을 시작할 때, 어제의 상실을 통해 오늘을 성실히 살아야 할 이유를 찾는 의미 있는 여정이 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습니다. 지난 순간을 그리워만 하기엔 어차피 지금 이 순간도 나중에 그리울 어느 날이 되겠더라고요. 그러니 열심히 살아야겠죠. 그걸 깨닫기 위해 지난 시간들을 들춰보았나 봅니다.
비록 건강 때문에 휴재할 때도 많았고, 심지어 한 달에 한 번 쓸 때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슬그머니 돌아올 때면 잊지 않고 반겨주시고 댓글까지 남겨주신 구독자 분들, 정말 감사합니다. 사실 몇 가지 더 쓰고 싶었지만, 내가 쓰고 싶은 것들을 쓰고 난 지금이 홀가분하게 떠나기에 가장 맞는 시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한두 주 정도는 매거진으로 인사드리고, 새로운 브런치북으로 돌아오려 합니다. 할 말이 아주 많은 브런치북입니다. 그래서 끝이 안 날지도 몰라요. 주 전공인 '환자 이야기'라 팔을 걷어붙였는데 잘 써질지 모르겠습니다. 준비 좀 열심히 해서 올게요. 오늘도 사랑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