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춘분
겨울에 보나 언니와 타로 점을 봤는데 2014년 춘분이 지나면 나에게 남자 친구가 생긴다고 했다. 그동안 봤던 구슬 점, 사주는 한 번도 맞은 적이 없었는데 이번에는 왠지 이 아주머니의 예지력에 믿음이 갔다. 아주머니께서 나에게 복이 들어오려면 내 눈썹 아래와 볼에 있는 점을 빼고 화장할 때 눈썹은 길게 쭉 빼서 그려야 된다고 했다. 그리고 인중에 주름은 깊게 새겨야 한다고 했다. 나는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고 피부과에 당장 예약을 하여 점을 뺏고 외출 시 화장할 때마다 눈썹을 길게 그렸다. 그리고 인중 주름을 깊게 새기기 위해 인중을 모아 투명 테이프로 붙이고 일을 했다. 그랬더니 정말로 마법처럼 나에게 남자 친구가 생긴 것이다. 춘분이 지난 오늘에서야 말이다.
고로 첫 데이트가 되어버린 냉면집, 두 번째 데이트로는 근사하게 하고 싶어 서래마을의 다이닝 레스토랑에 갔다. 그는 또 편안한 운동복 차림으로 나왔다. 그래도 명색에 데이트인데 좀 단정하게 차려입고 나오면 안 되나? 같이 앉아 있는 나 자신이 창피하고 이런 옷차림으로 나온 그가 짜증이 났다. 이해하고 싶어도 이 옷차림에 대한 부분은 꼭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다.
[운동하고 왔어요?]
[아니]
더 짜증 난다. 평소에 이런 차림이라는 것이 나를 더 끓게 했다. 그는 레스토랑 안을 잠깐 살피더니 나에게 묻는다.
[너 여기 여자들하고 왔지?]
[네. 왜요?]
[여자들 오는데 같아.]
나는 사실 이 곳에 언니들, 친구들하고 와 봤던 곳이라 남자 친구가 생기면 꼭 와보고 싶었던 장소였다. 그런데 별로 내켜하지 않는 그를 보면서 그 장소도 내 마음도 다 불편해졌다. 나도 그에 대한 마음이 없었으면 그가 이 곳을 좋아하든 싫어하든 신경 쓸 일이 없을 텐데... 마음이 불편하고 신경 쓰는 것 보니 나 또한 그에게 마음이 있긴 한 모양이다.
그녀가 아이폰 케이블 선을 잃어버렸다고 하여 내 차에 있는 것을 챙겨 출근하는 길이다. 이 케이블을 어떻게 하면 어색하지 않게 줄 수 있을까 여러 가지 상황을 생각해본다. 그녀는 매일 모닝커피를 마신다. 이따 커피를 타러 정수기에 갈 때 전달해주어야겠다. 더러운 책상 위에 가방이 있다. 벌써 출근을 한 모양이다. 자리에 일어나 그녀의 모습이 보이길 기다린다. 아, 벌써 커피를 타 가지고 왔다. 아침에 전달해주는 방법은 실패했다. 점심시간, 식사를 마치고 디자인실 아이들과 자리에 앉아 수다를 떨고 있다. 그냥 아무렇지 않게 들어가 전달해주어야겠다. 뚜벅뚜벅 걸어 들어갔다. 어차피 자주 놀러 가는 디자인실이라 애들은 나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자!]
그녀가 심하게 화들짝 놀란다.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고 금요일 밤에 같이 술을 마셨던 김대리가 나를 째려보며 말한다.
[어? 둘이 뭐야?]
내가 대답했다.
[뭐가?]
[둘이 뭐 있는 거 아니야?]
그러자 그녀가 말한다.
[나 발 만지고 있는데 들어왔어]
감쪽같은 연기였다. 다행히 그녀가 다리를 의자에 올리고 앉아 발뒤꿈치에 붙인 밴드를 떼고 있었다.
그녀가 브런치를 먹으러 서래마을에 가자고 한다. 가본 적도 없고 뭔가 조금 어색한 동네이다. 평소대로 입고 나갔는데 그녀 표정이 심드렁하다. 너무 편안하게 입고 갔는지 '운동하고 왔냐'라고 까지 물었다. 새하얀 인테리어가 여기 앉아 있는 나와는 어울리지 않는 느낌이다. 주변을 둘러보니 여성들만 앉아 있다. 우리 둘만 커플이다.
이 곳은 여자들만 오는 곳 같다고 말하니, 데이트하러 많이들 온다고 한다. 아직까진 조금 어색하다. 매일 사내 녀석들과 막창이며 국밥 먹으러 다녔는데 내가 이런 곳에 오다니... 나도 참 많이 변했다. 물론 좋은 뜻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