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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참미 May 20. 2024

난간의 경계에서 1



언젠가 ‘영화나 음악, 공연이나 책을 읽는 것은 자신의 세계에 난간을 만드는 일’이라는 글을 본 적이 있다. 나를 구성하는 것에는 사유하고 경험한 것들이 포함된다는 말이자 언제든 원하기만 한다면 좋은 것들로 나를 바꿀 수 있다는. 위로 같기도, 응원 같기도 한 문장을 나는 오래 기억하려 애썼다.


타고난 성정이나 기질이 개인의 고유함을 구성한다는 걸 부인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나는 바꿀 수 없는 무언가에 마음을 쏟기보다는, 보고 듣는 것으로 더 나은 나를 만들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둔 표현에 더 마음이 기우는 사람이다.


자신이 만든 난간 바깥으로 건너가 다른 이들의 세계에 발을 딛기도 하고, 때론 나의 세계로 누군가를 초대하며 만드는 고유함의 형체. 연약한 취향의 모든 면면을 사랑하긴 어려울 수 있으나 이런 과정을 거쳐 남겨둔 것이 '나'라고 생각하면 어쩐지 마음이 간다. 그것들에는 어딘가 모를 아름다움과 애처로운 구석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게  만들어진 현재의 내가 매번 마음에 드는 건 아니다. 30대가 훌쩍 지난 지금도 타인의 아름다운 취향을 볼 때면 내가 가진 평범한 안목에 작아지곤 한다. 그럴 필요까지 없다는 걸 알지만 특별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는 생각은 쉽게 떨쳐지지 않는다. 반대로 좋아하는 것을 소개하고 그것이 받아들여질 때면 안도감이라 해야 할까. 내게 영향을 준 음악이나 영화를 좋아해 주는 타인을 만날 때면, 자기 확신 없이 틔운 싹 아래에 조그만 뿌리가 생겨나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타인의 인정이란 쉽게  나라는 사람을 사랑하게 해주는 간편한 방법이 되기도 하니까.


엄마는 내가 말을 하기 시작할 무렵부터 양육하는 일이 두 배는 어려워졌다고 했다. 원피스나 치마가 아닌 형형색색의 쫄 바지를 요일마다 바꿔가면서 입겠다고 떼를 쓰거나 <달려라 하니>에 나오는 하니 신발(컨버스 화)만 신겠다고 고집을 부리곤 통에 등원 시간이 몹시 피곤했다고. 그렇게 취향과 아집의 경계에서 나만의 세계를 만들어 가던 어느 날. 내가 새로운 세상에 발을 딛게 된 건 휴대용 음악재생 기기가 대중화되면서부터다.


초등학교 고학년에 접어들자 친구들은 하나둘씩 휴대용 카세트테이프플레이어인 ‘마이마이’를 가지고 다니기 시작했다. HOT나 신화, SES 같은 1세대 아이돌의 등장과 함께 그들의 음반을 테이프로 구매해 듣는 친구들도 있었고, 서태지나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발라드 가수의 앨범을 가지고 오는 친구들도 있었다. 음악적 취향은 물론이고 ‘마이마이’라는 기계에도 저마다의 개성이 드러났다. 기능을 중점적으로 생각해 라디오가 되는 것을 최고로 치는 이가 있는가 하면, 심미적인 부분을 고려해 디자인이 심플한 것을 선호하는 친구들이 있었다.


하지만 이 모든 취향의 바탕엔 경제적 여유가 함의되어 있었다. 결국 선택이란 건 결정을 할 수 있는 자유가 있어야 했고 그 자유는 대체로 돈이 있어야 가능했기 때문이다. 당시 좋아하는 아이돌이 있던 어린 나는 그들의 음악을 몹시도 사랑했다. 하지만 사랑하는 마음만으로는 얻을 수 있는 것은 거의 없었다. 사랑에도 돈이, 욕심이, 나아감이 필요하다는 걸 나는 그때 배웠다.


바라는 것이 있어도 요구해 본 적이 없던 내 마음에 새로운 경계가 생긴 것도 이 무렵이었다. 초등학교 6학년. 처음으로 갖고 싶은 게 생겼다. 그건 바로  마이마이. 손바닥 만하게 작은 기계로 내가 좋아하는 god의 노래를 듣는 상상. 처음엔 마이마이로 음악을 듣는 내 모습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얼마간 행복해질 수 있었다. 하지만  상상은 형체를 갖추고 구체화될수록 실제로 그것을 갖고 싶다는 마음 또한 커져만 갔다.


마침내 초등학교 6학년 마지막 학기의 어느 날. 나는 엄마가 아닌 아빠에게 마이마이가 갖고 싶다는 말을 어렵게 꺼냈다. 왜 엄마가 아닌 아빠에게 그런 요구를 했던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당시 우리 가족의 경제적 부양을 하던 엄마에게 부담이 될 그 말을 차마 하고 싶지 않았던 마음이었을 수도, 혹은 우리 가족이 비교적 여유롭던 시절에, 음악 시디와 값비싼 오디오를 사 왔던 아빠의 음악적 소양에 기대어 보려는 마음이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저 내가 생각나는 건 오랜 고심 끝에 내가 아빠에게 마이마이를 사고 싶다는 말을 꺼냈다는 것, 그러자 아빠가 조금은 굳은 얼굴이 되었다는 것만 기억날 뿐이다.


내 말을 들은 아빠는 이내 무언가를 결심한 듯한 표정으로 집 근처 홈플러스로 차를 몰았다. 그리고 전자 제품을 파는 곳으로 가 진열되어 있던 카세트 플레이어 중 가장 싼 마이 마이를, 핫 핑크 색 플라스틱 재질의 삼만몇 천 원짜리 마이마이를 사주었다.


그토록 원했던 마이 마이를 손에 얻었건만 문제는 다른 곳에서 발생했다. 학교로 돌아간 나는 선뜻 아빠가 사준 마이마이를 책상 서랍에서 꺼낼 수 없었는데 그저 ‘마이마이’이면 될 줄 알으나 그것을 손에 쥐고 난 후에야 내 것은 조금 다른 카세트 플레이어라는 사실을, 친구들이 가진 마이마이는 모두 알루미늄 재질로 된 것임을 뒤늦게 인지해버렸기 때문이다. 책상 서랍 아래에서 망설이는 내 손을 본 짝꿍은 내게 무엇을 숨기고 있는 것이냐며. 내 책상 서랍 아래로 손을 쑤욱하고 밀어 넣었다.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들어온 손을 미처 막지 못했던 나는 어물쩍거리며 마이마이를 책상서랍 밖으로 꺼냈다. 마이마이 색깔이 원래 이랬나. 숨기고 싶은 것일수록 항상 더 잘 드러나는 건 왜일까. 핫 핑크색 마이마이의 색은 그 순간 유난스럽다 싶게 핑크색이었다. 결핍이 그랬고 더 좋아하는 마음이 그런 것처럼 고상한 구석이라곤 없었다. 쨍하게 짙은 색의 마이마이를 보며 그때의 나는 잠깐 부끄럽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우와, 못 보던 거네. 참미 너 마이마이 샀어?”

옆자리에 앉은 종명은 해사한 얼굴로 물었다.


종명이의 악의 없는 질문에 선뜻 새로 샀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 순수함만 가지고 자신의 상황을 설명하기엔 내 마음은 이미 때가 탔기 때문이다.


“아니, 그냥. 원래 있던 거야.”


마이마이는 있던 것이긴 했다. 물리적으론 어제라는 과거부터 있던 것이었고, 그것이 없을 때조차도 그것을 가진 것처럼 오래 생각하고 원했으니까. 반쯤은 맞고 반쯤은 음흉한 구석이 서린 대답 다음에 돌아오는 종명의 질문은 거짓말을 할 수 없는 종류의 것이었다.


“참미 너는 뭐 들어?”


지금 네가 듣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묻는 질문은 구태어 말로 된 대답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그저 카세트 플레이어를 열어 속에 든 테이프를 보여주면 되었기 때문이다. 사실 그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왜냐하면 내가 가지고 있는 카세트테이프는 god4집 테이프, 오직 하나뿐이었기 때문이다.




“나. god팬이잖아. god팬들은 매일 god음악만 들어야 해.”

그런 당위성 따위가 존재할 리 없었지만 종명이는 중요한 사실을 배웠다는 얼굴을 하고서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왜였을까. 그 순간에 바라본 종명의 무구한 얼굴과 끄덕임을 보고 안심하는 마음이 들었던 건. 순간적으로 느꼈던 나의 수치심은 오직 내 마음 안에서만 떠오르다 사라지는 것으로 만들어주던 그 끄덕임. 긍정의 신호. 그때 내가 느낌 감정은 어쩌면 안도감, 어쩌면 위안이었을지도.



“너도 들어볼래?”


종명의 표정에 용기가 생긴 나는 종명에게 마이마이의 한쪽 이어폰을 건넸다.  종명을 나의 세계로, 조금은 누추하고 보잘것없지만 내가 머물고, 사랑하는 나의 경계로 초대한 것이다.


둥둥 탁. 둥둥두둥둥 탁. god의 4집 앨범에 수록된 노래. ‘길’의 첫 도입부가 시작되자 내 마음도 같이 뛰었다.

테이프가 돌아가는 모습이 다 보이는 투명한 핫핑크색의 플라스틱 마이마이. 테이프가 감아들어가는 모습을 보며 종명과 나는 노래가 끝날 때까지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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