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로미의 colorful life Nov 07. 2021

엄마가 된 널 그리워해

비혼과 기혼의 우정에 대해서

나는 아직 정거장에 앉아 있다


김연수의 '청춘의 문장들'에는 이런 글이 있다.

그 집의 식구들은 모두 스물넷에서 서른두 살 사이의 사람들이었다. 인생의 정거장 같은 나이. 늘 누군가를 새로 만나고 또 떠나보내는 데 익숙해져야만 하는 나이. 옛 가족은 떠났으나 새 가족은 이루지 못한 나이. 그 누구와도 가족처럼 지낼 수 있으나 다음날이면 남남처럼 헤어질 수 있는 나이.


스물넷에서 서른두 살은 아니지만 정장에 앉아 오고 가는 인연들을 지켜본다. 나는 남아 있는데 대부분은 목적지를 찾아 떠나갔다.






버진로드는 내 친구의 마지막 뒷모습


30대 중반이 넘어가면서 대부분의 친구들은 결혼을 했다. 아이가 하나 또는 둘이 있고 학부모가 된 친구들도 있다. 20대에 친구들이 결혼을 하게 될 때에는 앞으로도 우리가 지금처럼 지낼 수 있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30대 들어서는 결혼 후에도 우리의 우정이 예전과 같을 것이라고는 기대하지 않는다.


요약하자면 버진로드는 내 친구의 마지막 뒷모습이다. 친구의 결혼식에 가면 예전처럼 축하해줄 수가 없다. 친구는 싱글로서의 삶과 싱글인 나를 뒤에 두고 앞으로 앞으로 걷는다. 남편을 향해 걸어가는 친구의 뒷모습을 눈에 꼭꼭 담는다.






비혼과 기혼인 친구의 우정은 전과 같을 수 없어


결혼을 한 친구는 내가 모르는 세상으로 성큼성큼 걸어간다. 임신, 출산, 육아. 모든 것이 낯설고 어려울 것이다.

결혼한 친구는 내가 모르는 새로운 관계가 많이 생긴다. 시어머니, 시아버지, 시댁식구, 조리원 친구, 우리 아이의 친구의 부모, 동네 친구.

결혼을 한 친구는 점점 바빠진다. 아이의 교육, 가족행사, 동네 맘들과의 모임까지. 우리의 삶은 점점 달라진다.


오랜만에 연락을 해서 만났다. 친구는 아이를 잠시 남편에게 맡겨서 몇 시간겨우 냈다. 시간이 없다고 해서 내가 친구의 동네로 찾아갔다. 함께 싱글일 때와는 달리 둘 사이에는 공통점이 적다.


친구의 시댁과 육아와 결혼 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한참 들었다. 간혹 내 이야기를 했다. 친구에게 때론 비혼인 나의 삶은 가볍고 평온하게 보이나 보다.


"너는 화려한 솔로구나. 혼자 일 때 혼자인 삶을 즐겨. 부럽다야."


솔로는 솔로이겠으나 화려한 솔로라는 통속적인 말로 나의 삶이 대충 얼버무려진다. 혼자 살아내는 삶의 고단함이나 외로움, 내가 나를 먹여 살리는 무게감을 말할 시간 없다. 이야기를 하노라면 배부른 이야기가 된다. 가볍지 않은 인생이 한없이 가벼워진다.







우정이란 사계절 같은 것


대학교 신입일 때 스러져 가는 인간관계에 대해서 상담센터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오래전 일이라 구체적으로 기억은 나지 않으나 상황이 변하면서 멀어지는 관계에 대한 고민이었다. 나의 잘못인 건지 나를 탓하는 나에게 선생님은 말씀하셨다.


관계란 것은 사계절과 같아서 봄여름 가을 겨울처럼 피어올랐다가 진다는 것이다. 어떤 인연은 봄에서 끝나기도 하고 어떤 인연은 가을에서 끝이 난단다. 그리고 인간관계는 그 누구의 일방적인 잘못이 아닌 쌍방의 상호작용이어서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고 결국 그렇게 된 것일 뿐이니 남을 탓할 이유도 나를 탓할 필요도 없다는 것이다.






시절 인연


요즘은 시절 인연이라고 하여 인연이 평생 가는 것이 아니고 시절 시절마다 상황이 허락할 때 시절을 함께하는 인연이 있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그 시절에는 그런 개념이 없었다. 그래서 인간관계에 대한 고민이 있을 때마다 그 선생님의 말씀을 잠언처럼 떠올렸다.


모르는 사람에서 아는 사람, 그리고 친한 사람이 되어 한 시절을 함께 하는 것이 자연스럽듯, 그 관계가 서서히 멀어지는 것 또한 자연스러우며 누구의 잘못도 아닌 그냥 그저 그렇게 된 것이라고.






엄마가 된 너에게 보내는 연가


나는 가끔 너를 생각한다. 우아한 취향, 과감한 패션감각, 담백함 속의 시니컬함. 시니컬함 속의 유머, 빛나는 인사이트, 너의 다정한 부모님, 너의 언니들, 우리가 함께 보낸 시간들, 웃음들, 우리가 함께 간 장소들, 짜증과 말싸움. 우리가 나눈 우리 인생의 등장인물들까지. 그 시간들은 유효하다. 그리고 가끔은 너도 나를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그리고 운이 좋다면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지나 다시 봄이 와서 널 볼 날도 있겠지.

 







매거진의 이전글 아직도 경차를 타는 이유 3가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