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두팔님, 택배 도착했습니다
험상궂은 가명을 쓰는 이유에 대하여
가명 추천받습니다 : 서덕출, 조두팔
여자 친구들과 테이블에 둘러앉아 가명 추천 브레인스토밍을 시작한다. 여성들은 때론 택배를 받을 때 가명을 쓴다. 위 이름을 가진 분들께는 괜히 죄송하지만 누가 봐도 여자 이름이 아니고 나이가 많은 아저씨 이름처럼 보인다면 좋다. 탁음이 많이 들어가면 더 좋다. 집 앞에 놓여 있는 택배 송장의 이름이 누가 봐도 여자 이름이라 이 집에 여자 혼자 사는 것을 들킨다면 안전에 위험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위협한 자는 없으나 뉴스만 봐도 세상이 참 험하다.
모르는 사람이 주먹으로 문을 두드린다
저녁 9시경, 퇴근을 하고 집에 돌아와 꺄무륵 잠이 들었다. 한참 자고 있는데 누군가 벨을 수차례 울린다. 누구지. 이 시간에 집에 올 사람이 없다. 벨소리가 사뭇 낯설다. 가슴이 두근두근 불안하게 뛴다. 인터폰의 카메라로 누군지 살핀다. 검은 패딩을 입고 있는 낯선 자. 누군지는 잘 모르겠다. 성별을 모를 키가 크지 않고 야윈 이다. 벌렁되는 가슴을 앉고 소리가 새어 나올 새라 가만히 있었다.
몇 분이 흘렀다. 이제는 손잡이를 거칠게 돌리고 문을 주먹으로 친다. 누구길래 이리 거친가. 현관에 가서 걸괴가 잘 걸려있는지 확인하고 덜덜 떨면서 안방으로 향한다. 혹시나 싶어 안방의 문도 잠근다. 우리 집에 무기가 될 만한 것이 있었던가. 식칼이라도 꺼내야 하나.
이럴 땐 우리나라에서 총기 소지가 안되는지 안타깝다. 미국에서는 낯선 이의 침입에 대비해 승인을 받은 총을 내 집에서는 쓸 수 있기도 하지 않은가. 이럴 때는 혼자의 삶이 못내 불안하다.
같이 소리를 질러줄 동거인이 있다면
함께 쌍칼을 들고 싸워주지는 않더라도 인터폰에 대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줄 동거인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또는 뉘신지 묻는 내 뒤에 가만히라도 서있는 동거인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래. 우리나라에는 경찰이 있다. 112로 전화를 한다. 쫄아서 새된 목소리로 어설픈 문장을 내뱉는다.
"별 거 아닐 수 도 있는데 무서워서요."
문장이 꽤 허술하다.
"무서워서요??"
장난전화인 줄 알았는지 경찰관의 반응이 꽤 건조하다. 자초지종을 이야기했더니 집을 방문한다고 한다. 안방 문을 부여잡고 경찰을 기다린다. 그 사이 이름 모를 이는 주먹으로 문을 또 두드린다. 금방 온다던 경찰은 왜 이리 오래 걸릴까. 이 자는 남의 문 앞에서 왜 이러는가.
'띵동'
침착한 벨소리. 아마도 경찰일 것이다. 쫄아서 어깨가 잔뜩 올라갔다. 인터폰으로 경찰임을 확인하고 문을 연다. 경찰관 두 분이다. 숨소리가 거치시다. 엘리베이터가 고장 나서 몇십층을 걸어오셨단다. 고맙기도 미안하기도 하다. 아파트를 둘러봤는데 특별한 것은 없으니 무슨 일 혹시 있으면 다시 연락 달라 신다.
어쩌면 엘리베이터가 고장 나서 층을 잘못 찾아 자기 집인 줄 착각한 취객일 수도 있겠다. 호수가 집 앞에 버젓이 적혀있는데 그런 실수를 하려면 취객이어야 한다. 맨 정신으로는 그렇게 여러 번 실수할 수가 없다.
그럼에도 놀란 가슴은 쉽사리 진정되지 않는다. 다음 날에는 CCTV 녹화 중 스티커를 구해서 문 앞에 붙여본다. 이 스티커가 나를 구할 수 있을까?
CCTV 스티커, 현관의 남자 구두, 험상궂은 가명의 뒤에 숨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