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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미의 colorful life Nov 30. 2021

조두팔님, 택배 도착했습니다

험상궂은 가명을 쓰는 이유에 대하여

가명 추천받습니다 : 서덕출, 조두팔


여자 친구들과 테이블에 둘러앉아 가명 추천 브레인스토밍을 시작한다. 여성들은 때론 택배를 받을 때 가명을 쓴다. 위 이름을 가진 분들께는 괜히 죄송하지만 누가 봐도 여자 이름이 아니고 나이가 많은 아저씨 이름처럼 보인다면 좋다. 탁음이 많이 들어가면 더 좋다. 집 앞에 놓여 있는 택배 송장의 이름이 누가 봐도 여자 이름이라 이 집에 여자 혼자 사는 것을 들킨다면 안전에 위험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위협한 자는 없으나 뉴스만 봐도 세상이 참 험하다.



모르는 사람이 주먹으로 문을 두드린다


저녁 9시경, 퇴근을 하고 집에 돌아와 꺄무륵 잠이 들었다. 한참 자고 있는데 누군가 벨을 수차례 울린다. 누구지. 이 시간에 집에 올 사람이 없다. 벨소리가 사뭇 낯설다. 가슴이 두근두근 불안하게 뛴다. 인터폰의 카메라로 누군지 살핀다. 검은 패딩을 입고 있는 낯선 자. 누군지는 잘 모르겠다. 성별을 모를 키가 크지 않고 야윈 이다. 벌렁되는 가슴을 앉고 소리가 새어 나올 새라 가만히 있었다.


몇 분이 흘렀다. 이제는 손잡이를 거칠게 돌리고 문을 주먹으로 친다. 누구길래 이리 거친가. 현관에 가서 걸괴가 잘 걸려있는지 확인하고 덜덜 떨면서 안방으로 향한다. 혹시나 싶어 안방의 문도 잠근다. 우리 집에 무기가 될 만한 것이 있었던가. 식칼이라도 꺼내야 하나.


이럴 땐 우리나라에서 총기 소지가 안되는지 안타깝다. 미국에서는 낯선 이의 침입에 대비해 승인을 받은 총을 내 집에서는 쓸 수 있기도 하지 않은가. 이럴 때는 혼자의 삶못내 불안하다.



같이 소리를 질러줄 동거인이 있다면


함께 쌍칼을 들고 싸워주지는 않더라도 인터폰에 대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줄 동거인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또는 뉘신지 묻는 내 뒤에 가만히라도 서있는 동거인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래. 우리나라에는 경찰이 있다. 112로 전화를 한다. 아서 새된 목소리로 어설픈 문장을 내뱉는다.


"별 거 아닐 수 도 있는데 무서워서요."


문장이 꽤 허술하다.


"무서워서요??"


장난전화인 줄 알았는지 경찰관의 반응이 꽤 건조하다. 자초지종을 이야기했더니 집을 방문한다고 한다. 안방 문을 부여잡고 경찰을 기다린다. 그 사이 이름 모를 이는 주먹으로 문을 또 두드린다. 금방 온다던 경찰은 왜 이리 오래 걸릴까. 이 자는 남의 문 앞에서 왜 이러는가.


'띵동'


침착한 벨소리. 아마도 경찰일 것이다. 쫄아서 어깨가 잔뜩 올라갔다. 인터폰으로 경찰임을 확인하고 문을 연다. 경찰관 두 분이다. 숨소리가 거치시다. 엘리베이터가 고장 나서 몇십층을 걸어오셨단다. 고맙기도 미안하기도 하다. 아파트를 둘러봤는데 특별한 것은 없으니 무슨 일 혹시 있으면 다시 연락 달라 신다.


어쩌면 엘리베이터가 고장 나서 층을 잘못 찾아 자기 집인 줄 착각한 취객일 수도 있겠다. 호수가 집 앞에 버젓이 적혀있는데 그런 실수를 하려면 취객이어야 한다. 맨 정신으로는 그렇게 여러 번 실수할 수가 없다.


그럼에도 놀란 가슴은 쉽사리 진정되지 않는다. 다음 날에는 CCTV 녹화 중 스티커를 구해서 문 앞에 붙여본다. 이 스티커가 나를 구할 수 있을까?


CCTV 스티커, 현관의 남자 구두, 험상궂은 가명의 뒤에 숨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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