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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유나 Feb 03. 2024

그분께 공간을 내어드리기

그리스도인은 어려움 속에서도 하느님의 사랑과 의미를 찾으려 노력하는 존재로, 그가 참다운 그리스도인인지는 그가 희망하는 사람인가 아닌가에 따라 달라짐. 우리 모두는 하느님의 모상이지만 각자가 하느님과 닮은 면은 각자 다르기 때문에, 자신의 위치에서 자기의 직무와 역할들을 잘 해내는 것 또한 '기도'임.


내 삶과 마음에 하느님을 담기 위해서 내가 할 수 있을 만큼만 노력하고 나머지 영역은, 마음을 비우고 하느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여유와 그분이 내 삶에서 움직이시길 공간을 드리는 것이 중요함.. 그러면 내 삶이 그분으로 가득 찰 수 있을 것임. 예를 들면, 신부님은 유학 시절 '나에게는 지금 공부가 기도다'라고 책상에 써 붙이셨다고 함. 이게 하느님의 일을 기도로서 내 삶으로 갖고 오는 것.



ㅡ 양경모 대건안드레아 신부님이 건네주신 감사한 말씀을 내가 재구성.







노력으로 내 삶에 하느님을 모셔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하느님이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을 드리는 것이 중요하다는 대건안드레아 신부님의 말씀. 하긴 어제 미사 집전하신 신부님도 그르셨다. 내 하느님께 내 이야기만 줄곧 해대는 기도 말고, 하느님이 하시는 말씀을 듣는 기도가 필요하다고.


마르코 성서모임의 봉사를 준비하면서 본 내용인데, 예수님의 부활 등등에 하느님이 주체가 되어 예수님이 영향을 받는 '신적수동(神的受動)'이라는 것이 있었다. 예수님도 '수동' 적이셨는데 내가 뭐라고. 하느님의 능동을 피조물인 내가 어찌 감히.


피정에서 기도 중 침묵 속에 머물다가 어느 순간 가슴을 때리는 무언가가 들렸을 때, 하느님이 내 마음을 움직이실 때의 그 감동과 감사함은 사실 말로 표현하기 어렵지. 역시 수필 쓸 때나 기타 칠 때나 운동할 때도 힘을 빼는 게 중요하다. 고수는 적재적소에서 힘을 뺄 줄 알더라.. (수필 쓸 때 힘을 잘 빼는 건 아니지만, 논문 쓸 때는 힘을 정말 못 빼겠더라.. ㅠㅠ)







오늘은 몇 번 남지 않은 마르코 성서모임 봉사를 위한 준비를 꽤 오랫동안 했다. '말씀살기' 문제에 답을 적으면서 느낀 것이 같은 성경이라도 내가 그 당시에 필요한 부분들에 따라 다른 내용이 눈에 들어오는 것 같았다. 약 10년 전 내가 모둠원으로 마르코 복음을 읽었을 때는, 불합리한 상황에 불같이 화를 내고 틀린 것은 틀렸다 지적하는 예수님이 참 매력적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느낀 건, 부족한 제자들을 데리고 다니면서 가르치고 돌보고 마지막엔 위대한 임무까지 주시는 예수님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10년 전에는 아마 그저 참기만 하고 부정적인 감정을 억누르며 살았던 나라서 그런 예수님의 모습을 보게 하신 것 같고, 이번에는 내가 나이도 들었고 그때와는 또 다른 위치가 되었으니 제자들을 사랑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이 보이는가 싶었다.








아래 사진은 일본 기숙사에 두었던 일본스타일의 성지가지, 아니 엄밀히 말하면 일본 스타일이라기보다 '도쿄 시모키타자와에 있는 세례자요한 성당' 스타일의 성지가지와, 유학을 떠나기 전 프란치스코 신부님이 일본 잘 다녀오라며 주셨던 십자가이다. 기숙사방 한쪽에 저렇게 두었더랬지. 우리집에 있는 십자가에는 거의 다 저렇게 리본이 붙어있다. 나는 노트북이나 기타 악보를 모아둔 파일 같이, 중요하거나 좋아하는 물건엔 스티커든 뭐든 장식을 하고 싶어 하는 편인데, 예수님은 예쁘고(?) 내가 좋아하고 또 소중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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