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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두열정

순남씨 부엌에서 내가 컸다

어떤 음식을 좋아하냐는 질문에 나는 “손 많이 가는 음식을 좋아한다!”고 말하곤 했다. 잡채, 김밥, 만두. 가끔 만두를 사 먹는 식당이 몇 군데 있다. 나만의 단골식당이다. ① 인사동 경인미술관 입구에 있는 ‘궁’에서는 개성식 만두를 판다. 삶은 만두나 생만두도 포장해 올 수 있다. 한 때는 냉동실에 넣어두고 먹을 만큼 좋아했다. 만두가 크다. ② 부암동 고개를 넘으면 ‘자하손만두’ 집이 있다. 여름에 내 놓는 양배추김치를 이 식당에서 태어나서 처음 먹어 봤었다. 집으로 만두를 가져와 끓여보면 식당에서 먹을 때 보다 훨씬 더 슴슴하다. 여름에는 표고와 오이를 넣은 편수(규아상) 먹는 것이 즐거움이다. ③ 요즘 자주 가는 집은 광화문의 ‘평안도만두집’이다. 만둣국은 기본이고 잔치국수도 내 입맛에 맞다. 매뉴도 몇 가지 안 된다. 두 명은 양이 좀 넘치고 세명이 먹어야 남기지 않고 먹을 수 있는 전골이 좋다. 식당이 자하에 있고 규모는 작지만 깔끔하다.     


이렇게 정해 놓고 먹는 곳 말고도 만두 맛집이라고 하면 굳이 찾아가서 먹어본다. 내가 만두를 좋아하는 것은 당연히 할머니 덕분이다. 만두는 우리 집 겨울 특식이었다. 만두소는 여느 집과 별반 다를 바 없었을 것이다. 쫑쫑 썬 배추김치, 다진 돼지고기 약간, 두부, 숙주, 파 정도 였다. 포슬거리는 만두소를 만들려고 할머니는 탕약을 짤 때 사용하는 나무 막대(약대)로 두부며 김치를 쥐어짜셨다. 그리고 칼국수 만들 때 사용하던 커다란 밀대로 밀가루 반죽을 밀어 만두피를 만드셨다.      


만두피의 동그란 모양은 ‘간스매 통’(통조림용 캔)으로 꾹 눌러 만드셨다. 황도가 담겨있던 통을 버리지 않고 두셨다가 만두피를 만드는데 사용하신 거다. 우리 집에는 커다란 누런 양은 주전자도 있었는데 이 주전자 뚜껑이 만두피 틀로 사용된 적도 있었는데 간스메 통 보다 컸다. 그래서 그런지 할머니는 간스메 통이나 스뎅주발로 만두피를 찍어내셨다.    

 

만두는 나도 만들었다. 한번 만두를 빚기 시작하면 백 개는 만들어야 하니 고양이 손도 빌려야 할 판이었다. 할머니는 방과 부엌을 왕복하시면서 만두를 만들다가 다 만들어진 만두를 쪄 내셨다. 그 만두가 참 맛있었다. 백 개를 만들어도 만두는 금방 동이 났다. 사람 수를 세어서 만드시는 듯 했는데 두 끼 정도면 만두가 없었다. 그래서 더 맛있다고 기억하는지도 모르겠다. 뜨끈한고 짭쪼롬하면서 구수하고 아삭하면서 살짝 매콤하고 부드러운 맛. 입안 한가득 만두다.      


우리집 만두는 둥근 모양이었다. 송편처럼 반달 모양으로 만들고 나면 끝과 끝을 연결해 동그랗게 오므리는 방법으로 만두를 만들었다. 밖에서 파는 만두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먹게 되었는데 잎새 모양으로 동그란 찜기에 나란히 누워있었다. 어떤 만두는 만두피가 얇아서 속이 훤히 보이기도 했다. 한입거리도 안되었다. 서울 어디에 살든 퇴근 후 집으로 가는 길목에는 어김없이 만두집이 꼭 있었다. 저항할 수 없는 허연 수증기 속으로 빨려 들어가 만두를 포장해 왔다. 사각형 스티로폼 용기에 놓여 있는 만두를 집에 와서 먹다보면 허기가 채워지지 않아 뭔가를 더 먹었다. 만두피가 문제인가 만두소가 문제인가.      


혼자는 물론이고 여럿이라도 만두를 만드는 일은 정말 ‘큰 일’이다. 만두소야 어찌 흉내를 낸다고 해도 만두피를 만드는 일이 너무 번거롭지 않은가. 만두소를 아무리 적개 만들어도 딱 열 개만 만들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큰 맘을 먹고 타협을 했다. 냉장고 파먹기 중에 냉동만두피를 발견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냉동만두피를 구입한 까닭은 만두를 만들려고 한 것이 아니라 만두피로 수제비를 만들어 보려고 사 둔 것인데, 까맣게 잊고 있었다. 냉동만두피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도 한달쯤 지나서야 만두를 만들 엄두가 났다.     

 

만두는 먹고 싶은데 파는 만두는 아주 조금이라도 고기가 들어가 있고, 고기가 넣지 않은 비건 만두는 맛이 강하거나 먹고 나면 속이 거북해져서 몇 번 먹다가 그만 두었다. 만두를 먹고 싶다는 욕망이 수제 만두를 만드는 번거로움을 이겼다. 어설픈 만두 한번 만들어 보자.      


재료는 간단했다. 숙주 데쳐서 물기를 짠 후 쫑쫑 썰었다. 만두도 물기를 짰고, 배추김치도 쫑쫑 다져서 물기를 제거했다. 딱 이렇게 두부, 숙주, 김치를 섞어 만두소를 만들었다. 맛은 그저 그랬지만 처음 만들어 본 만두치곤은 먹을 만 했다. 천리길도 한걸음부터다. 다음에는 부추를 넣어볼까 한다. 만두피는 조금 더 큰 사이즈로! 언젠가 만두피도 직접 만들 용기가 생기길!! 자 앞으로 만두 좀 만들어 볼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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