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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전! 비건 동그랑땡

순남씨 부엌에서 내가 컸다

명절의 냄새가 있다. 계란물이 기름에 지져지는 냄새가 바로 명절임을 알리는 냄새다. 우리 집에서는 동태전, 육전, 꼬치전, 동그랑땡을 할 때 계란물을 입혔다. 육전은 얇게 저민 소고기로 만든다. 소량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내 입까지 순서가 오기가 쉽지 않았다. 동태전은 가끔 가시가 걸리곤 했다. 조심이 먹어야 해서 그닥 손이 가지 않았다. 동태전의 가시 트라우마는 수십 년을 가고 있다. 꼬치전도 맛있었다. 단점은 한입에 먹기힘들다는 것이다.      


명절엔 뭐니뭐니 해도 동그랑땡이었다. 많이도 만들었기 때문에 오며가며 집어 먹어도 할머니의 눈타박을 받지 않았다. (조상님들 먼저 드셔야 한다고 하셨다) 무엇보다 동그랑땡 제작과정에 참여할 수 있었기 때문에 바로 익혀낸 동그랑땡을 그 자리에서 맛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모든 전은 만들어서 그 자리에서 먹는 게 최고다.      

우리집 동그랑땡도 여느 집과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정육점에서 갈아 온 다진 돼지고기와 두부가 주재료였다.  잘게 다진 당근, 파 정도가 들어갔다. 할머니가 한껏 치대어 모든 재료가 균일하게 섞인 동그랑땡 반죽을 만드시면 그 다음이 내 차례였다. 마루에 앉아 반죽이 다 소진될 때 까지 동글납작하게 모양을 만드는 작업이 내 담당이었다. 문제는 몇 개를 만드느냐인데 1백 개는 족히 넘었다. 1백 개가 뭐냐 2백 개는 된 듯 싶다. 내가 양팔을 뻗어야 잡을 수 있는 커다란 채반에 한가득 동그랑땡이 쌓이곤 했으니.      


동글납작한 모양이 잡힌 동그랑땡을 부서지지 않도록 계란물에 넣기 까지가 내 담당업무의 마무리였다. 그 다음은 큰 할머니가 맡으셨다. (우리집 명절 전 부침은 큰할머니가 늘 하셨다) 큰할머니는 전 베테랑이셨다. 동그랑땡이 골고루 읽도록 적절한 시점에 이러저리 자리를 바꾸고 동그랑땡이 타지 않도록 기름을 중간 중간 추가하셨다. 기름이 지글거리며 동그랑땡 사이에 기름방울이 툭툭 터지면서 동그랑땡이 익어갔다. 돼지고기가 익어가면서 단백질 수축현상 때문인지 반죽 때보다 동그랑땡은 도톰하게 부풀어 올랐다. 동그랑땡은 너무 타면 안 된다. 다음날 아침 제사상에 올리기 전 다시 한 번 따뜻하게 구워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속까지 다 익혀야 한다. 느긋하게 찬찬히 익혀내야 한다. 양도 많았고 시간도 오래 걸렸다. 전 중에서는 가장 많은 양념이 들어가기 때문에 부치고 난 뒤의 후라이팬도 지저분해져서 여러 번 갈무리를 해야했다. 그래서 동그랑땡은 가장 마지막에 만들어지는 전이었다. 큰할머니는 두부전, 삼색전, 동태전, 육전, 꼬치전, 동그랑땡 순으로 전을 부치셨다. 그래서 동그랑땡은 저녁 어스름 녁에야 맛볼 수 있었다.     


표면에 입혀진 계란 때문에 동그랑땡은 겉면이 쫀득하다. 탱글한 표면을 깨뜨리면 두부의 단백함과 돼지고기의 쫄깃함이 함께 씹힌다. 동그랑땡 하나가 입안에 가득하면 당근이 사각거리고 익힌 파향도 살짝 스친다. 바로 익힌 동그랑땡은 따뜻하고 감칠맛 도는 고소함이 가득했다. 전 중에 식어도 맛있는 녀석은 동그랑땡 뿐이었다. 심지어 얼려 두었다가 전 찌게에 넣으면 더 맛났었다.      


2024년 추석이 내일이다. 아직도 여름같이 덥다. 그래도 추석이다. 기억에 한번쯤 잇었던 것 같다. 날이 더워 전날 만들어 두었던 차례상 음식이 쉬었던 적이 있었다. 그 때도 이렇게는 덥지 않았었다. 추석이 가까워지면 예외없이 저녁이 되면 찬바람이 느껴졌었는데 올해는 그렇지 않다. 앞으로 올 추석도 이렇게 덥게 지낼 날이 더 많아질 것이다.      


동그랑땡은 이미 머릿속으로는 열 번도 더 만들었었다. 올해는 한번 만들어보려고 말이다. 나를 망설이게 만든 것는 계란물이었다. 계란물을 입혀 기름에 지지면 온 집안에 명절냄새가 날 것이다. 그 기름냄새를 피우고 싶자 않았다. 할까 말까 할까 말까. 그러다 비건 동그랑땡을 찾아봤다. 훌라! 계란물을 입히지 않고 만들 수 있는 방법이 있었다!     


나의 비건 동그랑땡은 이렇게 만들었다.      

① 물을 쪽 뺀 후 으깬 두부는 면포에 두부를 싸아 요즘 유행하는 요거드 짤수기에 넣어 아침나절 동안 물을 뺐다. 두부가 3분의 2정도로 줄어 들었다. 

② 당근, 부추, 고추, 얼린 세송이버섯 약간을 쫑쫑 다졌다. 당근은 수동다지기를 사용했다. 

③ '연두'를 약간 넣었다. 감칠맛을 낸다고 했다. 소금도 약간 추가했다.

④ 1차로 반죽을 치대고 난 뒤 전분가루를 1스푼정도 넣도 다시 치댔다. 전분가루가 탱글한 식감을 낸다고 했다. 정말 그렇다!     


두부 한모를 사용했는데 큰 후라이팬에 한판 나왔다. 부치면서 바로 먹어봤다. 맛있다. 기대 이상이다. 새송이 버섯을 조금 더 넣으면 씹히는 맛이 더 좋겠다 싶다. 고추를 넣은 것도 좋았다. 느끼함을 잡아준다. 당근과 부추는 그냥 색을 맞추는 용도 같다. 반죽을 만들 때는 다시 만들겠나 싶었는데, 만들어 먹어보니 다시 만들어 먹을 수 있겠다 싶다. 다행이다. 창문을 활짝 열어 환기를 시커고 있다. 그래도 기름 냄새가 난다. 초를 켜야겠

다. 


#비전동그랑땡#동그랑땡#할머니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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