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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유진 Aug 01. 2019

전화 통화

안녕 가을.

 


전 세계 모두 한 번 이상은 기다려보지 않았을까

이미 남이 되어버린, 혹은 되어가고 있는 누군가의 전화 한 통. 메신저 한 통.

식어가는 것은. 시들어가는 것은 아쉽다.

몇 년 전 내 생일, 그에게 받았던 꽃이 10월이 되자 차차 시들어갔다. 어떻게 그렇게 당신처럼 시들어가는지.

우리를 향한 당신의 온도도 딱 그만큼. 그런 속도로 함께 시들어갔다.

가을에 만나 내 가을이 돼버린 사람이, 바람의 온도가 차가워지기 시작하면서 계절과 함께 떠날 채비를 시작했다.

나는 아직 가을인데. 우리가 만들어 두었던 계절 안에 아직 그대로 서있는데.

점차 줄어드는 연락. 그의 연락을 애타게 기다렸지만, 동시에 무척이나 피하고 싶었다. 긴 적막의 끝이 무엇일지 알기에.

그렇게 며칠. 길게 울리는 전화에 심장이 철렁했다. 너무나 기다렸던 전화임에도 받고 싶지가 않았다.

오늘이 끝이겠구나. 울리는 전화를 물기 젖은 마음으로 바라보았다. 며칠만 더. 이미 끝이라지만, 아직 우리로 남고 싶었다.


"음, 그래요. 잘 지내요"

사이사이. 어색한 적막과 낮은 한숨이 가득했던 전화가 끝이 나고선 참았던 눈물을 그저 엉엉 흘려내는 것 밖에는 할 수 없었다.

특별한 줄 알았던 우리는 그렇기에 평범했다.

내 이별도 모든 이들처럼 적당히 비참하고 적당히 찌질하게. 그렇게 평범하게 흘러 지나갈 뿐이었다.

어떤 때는 헤어진 지 2년이나 지난 것 같았고, 또 어느 날은 헤어진 지 2시간 밖에 지나지 않은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다.

그런 날은 핸드폰을 충전기에 꽂아두고 누군가에게 올 연락을 자꾸만 기다리고 확인하다, 결국 핸드폰을 손에 쥐고 잠이 들었다.

시간이 약이라는 말은 참 아프다.

몇 달이 지나자 나는 그를 기다리지 않았지만, 가을이 되면 바람을 타고 돌아오는 기억에 눈물짓게 되었으니.

시간이 약이라는 말이 맞는지 모르겠다. 나는 그저 지나간 시간을 자꾸만 다시 꺼내어 보듬는 그런 사람이니까.


일 년이란 시간이 흘러갔다.

당시 그토록 기다리던 연락은 시간이 지나 몇 번을 주고받았고, 얼마 전 그를 다시 마주했다.

꽤나 긴 시간이 흘렀건만 혹여나 내가 다시 지난 가을에 미련을 갖게 될까 걱정하며 자리에 나갔다.

시간이란 건 참 무섭다. 알아차릴새도 없이 지나간다고 생각하지만 그 사이에 참 많은 것을 만들고 사라지게 하니.

맞은편에 앉아있는 그는 더 이상 가을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 앞의 나도 더 이상은 가을이 아니었다.

그렇게 잘 들어가라는 인사와 작은 미소를 마지막으로 뒤돌아가는 길.

홀가분한 마음으로 지난가을도, 그 이후 내 새로운 가을이 되었던 사람에게도 정말 안녕.이라는 마지막 인사를 남길 수 있게 되었다.

내게 더 이상 새로운 가을은 오지 않을 것 같다는, 일 년 전의 내가 들었으면 충격적이었을 생각을 했다.

가을마다 잠기고 묶여있는. 그저 가을만이 전부였던 내게 가을이 저물었다.

끝이 난 게 아니라, 그저 계절이 변하고 있는 거다. 그리고 난 드디어 새로운 계절을 맞이할 수 있게 된 거지.

가을마다 잠기고 묶여있는 게 아닌, 내게는 이제, 봄도. 여름도. 가을도. 겨울도. 전부 함께 존재할 것이다.





끝이 난 게 아니라, 그저 계절이 변하고 있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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