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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리 Nov 06. 2019

월급 주는 사람들

내 업무의 범위는 어디까지인가






작년 가을이었다. 뉴스에서는 집값을 잡겠다는 정부의 대책이 매일 속보로 등장했고, 포털 사이트는 '신도시', '다주택자' 등의 검색어가 도배를 하던.


하필 그때 나는 C 세무서의 재산세과에 있었다. 강북권의 구도심에 있는 C 세무서는 개인납세과도 기피부서였지만 신규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건 양도세, 증여세, 상속세를 담당하는 재산세과였다. 업무 자체도 어려운 데다 세액도 크고, 무엇보다도 대민 업무가 진땀 흐를 만큼 어려웠다.


"이놈의 나라가 뭐 해준 게 있다고 세금을 그렇게 떼간댜!"

"그러게나 말이에요. 꼴랑 집 몇 채 있다고 이렇게 못 살게 구는 게 어딨어요."

"애기 엄마는 집이 몇 채요? 나는 째깐한 거 대여섯 개 있는데, 이번에 아주 난리 났어."

"부동산 너무 어렵죠. 요즘 유튜브 보면서 공부까지 한다니까요."


출근을 하면 민원인들이 한 줄로 서있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들, 그리고 우리 엄마 또래의 민원인들이 한 줄로 죽 늘어서서는 자기들끼리 이야기꽃을 피워내는 통에 정작 우리 앞에 앉은 민원인의 말은잘 들리지도 않던 가을이었다. 한 층 위 개인납세과에서는 장려금이 안 나왔다며 실랑이를 벌이고 재산세과에서는 집이 너무 많아 실랑이가 나던 그런 가을.


우리 앞에 앉은 민원인들의 다양한 질문이 쏟아졌다.


"이번에 여기 근처 아파트를 팔려고 하는데 세금이 얼마나 나올까요?"


이런 질문은 차라리 나았다. 지금 가진 '주택'이 몇 채인지, 한 채라면 얼마나 보유했는지, 거기서 얼마나 거주했는지, 얼마에 샀는지, 얼마에 팔았는지를 물어보고 세율표에서 세율을 찾아 이야기해주면 되는 일이니까. 물론 이런 대답조차 민원인에게 해주면 안 되는 일이라 꼭 '저희가 말씀드리는 건 정확하지 않으니까 세무사에게 상담을 받아보셔야 해요'라고 덧붙였다.


우리를 힘들게 하는 질문은 이런 것들이었다.


"내가 집이 한 다섯 있는데 뭘 먼저 팔아야 될까?"


우리는 세수확보가 목적인 기관인데 이런 걸 어떻게 말해준단 말인가. 이 집들이 아파트 한 라인으로 죽 이어져있는 것도 아니고, 조정지역 비조정지역 가리지 않고 뿔뿔이 흩어져있는 데다가 평수도 다 다르고 취득 일자도 다 제각각인데 우리가 계산기를 두드려가며 A동에 있는 아파트를 먼저 파시고요, F동에 있는 빌라를 2년 뒤에 파시면 4천만 원 정도 세금을 덜 내시겠네요ㅡ라고 답해주기를 바라고 왔다면 그건 정말 너무한 거 아닌가요.


"지금 팔면 세금이 너무 많이 나와서 그러는데 한 2년 뒤에 팔면 얼마쯤 나올까요?"


우리는 점쟁이가 아니다. 일주일에도 몇 번씩 정부 정책이 발표되는데 내년, 내후년 세율이나 정책을 우리가 어떻게 알겠나. 그걸 알았으면 내가 여기 안 앉아 있겠지.


"오늘 뉴스에 이게 나왔는데, 이게 무슨 말이에요?"


민원인이 내민 스마트폰 화면에 뜬 자칭 부동산 전문가라는 기자가 쓴 기사에는 죄다 '~할 것으로 보인다', '~로 예상된다'라는 말 뿐이었다. 정부에서 공식적으로 지침이 내려온 것도 아닌데 정부 기관인 우리가 무슨 할 말이 있을까.



이걸 우리가 어떻게 알아요?




이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우리는 공무원이니까 꾹꾹 눌러 담고 말한다. 공손하고, 친절하게, 웃으면서.


"선생님, 죄송한데 이런 것들은 저희가 말씀 못 드려요. 근처에 세무사 사무실 많으니까 가서 상담 한 번 받아보세요."

"아니, 내가 돈이 어딨다고 가서 상담을 받아. 공무원이 이런 것도 몰라? 전문가니까 거기 앉아있는 거잖아!"


돈이 없으셔서 집이 다섯 채나 있으신가요ㅡ라는 말이 입 밖으로 나오려는 찰나 다시 마음을 다잡는다. 그래, 그렇게 아꼈으니 몇 억짜리 집이 다섯 채나 있는 거지. 심호흡 한 번에 뒤에 줄을 선 민원인들과 눈이 마주친다. 짜증 섞인 표정. 이쯤되면 어쩔 수 없다.


"선생님, 그럼 저희가 대충 알려드릴게요. 지금 뒤에 서 계신 분들도 많아서 자세히는 못 알려드려요."


결국 계산기를 두드려 가며 대강 말해주지만, 이런 대답이 민원인들의 기대를 채울 리가 없다. 민원인들이 고맙다고 돌아가면 다행이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불만이 터진다.


"아니, 그렇게 말해주면 어떡해? 공무원이 이런 거 알려주라고 있는 거잖아! 우리가 세금을 얼마나 내는지 알아?"


어떤 날엔 그러다가 민원인들끼리 싸움이 나기도 했다.


"저기요, 아저씨! 저희 엄청 오래 기다렸거든요?"

"아니, 아직 내 차례 안 끝났는데 왜 난리여?"

"다들 시끄럽네 진짜! 나가서 싸워요!"

"아가씨, 이거 먼저 봐주면 안 되나? 잠깐이면 되는데..."


집이 너무 많아 문제인 사람들 가운데서 방 하나 없는 내가 있었다. 그들이 내는 세금으로 먹고사는 나는 열심히 웃었고, 열심히 책을 뒤졌고, 열심히 말을 했다. 내 월급의 무게였다.


민원인들은 그걸로도 부족해서 꿈에까지 찾아와 물어댔고, 꿈에서조차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요!ㅡ하고 외치지 못한 나는 난처한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내가 아파트가 몇 개 있는데, 뭘 먼저 팔아야 세금을 덜 내겠나?"

"선생님, 죄송한데 저희가 그런 것까지는 말씀 못 드려요. 저기 근처에 세무사 사무실이 있으니 가셔서 상담 한 번 받아보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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