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쑥 찾아와 날 흔드는 14에게
14에게.
부탁드리겠습니다. 부디 불쑥 제 마음에 찾아오지 마십시오. 오랜만에 아주 좋은 기분으로 책상에 앉아 있었습니다. 논문이 잘 읽히고 있었어요. 갑자기 14가 한없이 무례하게 떠오르기 전까지는 말입니다. 굉장할 정도로 괴로워졌습니다. 괴로움은 외로움과 궤를 달리하지 않습니다. 밭주인이 객사한 후로 아무도 찾지 않는 허수아비보다 외로워졌습니다.
14가 찾아오는 곳이 뇌인지 심장인지 모르겠습니다. 대체 마음이라는 곳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요? 위치만 정확히 알 수 있다면 커다란 망치와 날카로운 못으로 통행금지라는 팻말을 붙이고만 싶습니다. 아니면 때로는 마음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정해진 것만 하고 살다가 스러지면 더할 나위 없겠습니다. 나는 로봇을 만드는 것에는 아무런 흥미가 없습니다만 로봇이 되는 것에는 커다란 관심이 있습니다.
14는 바람입니다. 바람으로 불었습니다. 나는 파도가 일고야 말아버린 내 마음속에 고깃배를 띄웠습니다. 고깃배의 이름은 상념이라 붙였습니다. 상념이라는 단어는 '생각 상'자에 '생각 념'자를 씁니다. 얼마나 끔찍하고 독단적인 단어입니까? 단어 뜻 그대로 14를 생각하고 생각합니다. 기억의 바다에 낚싯대를 드리웠습니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온갖 기억들이 밀려옵니다. 좋은 것도 있고 나쁜 것도 있습니다만 그야말로 물밀듯이 밀려와 다소 숨을 쉬기가 어렵습니다. 낚싯대는 던져 버리고 큰 그물을 내었습니다. 저 어디 짙음에서 온갖 감정이 무리 지어 올라옵니다. 마주하고 싶지 않지만 마주해야만 하는 것들입니다.
사소한 장난부터 울음 섞인 독백까지 그 모든 것들이 머릿속을 헤집어 놓습니다. 사실 예전에는 몇 번 이러한 기억에 익사할 뻔한 적이 있습니다. 14가 불쑥 찾아오고 나서 며칠 밤을 기억 속에 괴로워해야만 했습니다. 그럴 때면 잠을 자고 싶어 술을 마셔야 했는데요. 깨고 난 새벽이면 감정이 밀린 숙제처럼 다시 해일로 몰려와 며칠을 내팽개쳐져 있었습니다.
그 곱씹음의 시간이 찰나가 될 때쯤 아마 잊었다고 할 것입니다. 아쉽게도 나는 인간을 쉽게 잊지 못합니다. 다행인 것은 바다를 마주하는 시간이 조금은 짧아졌다는 것입니다. 온갖 감정을 마주하는 것은 내게 너무나도 피곤한 일입니다. 굉장히 노곤하고 고단합니다.
마지막에 그물에 남는 감정은 후회입니다. 때로는 그리움이라거나 아니면 따뜻함일 때도 있는데요. 보통은 후회만 남습니다. 지나간 시간에 대해 후회하는 것은 아주 멍청한 생각이지만 끊을 수 없는 마약 같기도 합니다. 상상력에 불을 지르기에 아주 좋습니다. 나는 그때로 돌아간다면 14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무엇인지는 알려주지 않겠습니다.
14는 늘 빛이 났습니다. 아무도 인지하지 못하는 그 빛을 홀로 보는 것이 꽤 재밌었습니다. 빛은 강력합니다. 플랑크 상수와 빛의 속도를 곱해 파장으로 나누겠습니다. 사실 의미 없는 일이에요. 14의 빛은 무한대로 발산합니다.
일직선으로 가로질러 빛에 닿은 나는 화려한 스파크와 함께 추락해버렸습니다. 날파리를 생각합니다. 아주 충분한 지성을 가진 날파리는, 불빛에 닿으려 할까요 아니면 불빛을 피해 버릴까요? 나는 답을 알고 있습니다.
내 바다에서 잡힌 생선들에게 이름을 붙입니다. 행복, 희망, 웃음 같은 활어들도 있고 우울함, 슬픔, 열등감 같은 이미 폐사한 척 하는 것들도 있습니다. 가장 큰 대어인 후회부터 하여 14에게 바치기 위해 포를 떠 바닷바람에 말리겠습니다. 낚아낸 그 모든 감정들을 해체하며 14를 생각합니다.
시간이 지나면 생선이 마를 것입니다. 아직 짠 바람이 계속 불고 있습니다. 나는 덜 마른 어포를 입에 쑤셔 넣었습니다. 지금 먹은 어포의 이름은 그리움입니다. 몇 시간 정도는 14를 굉장히 그리워할 것 같습니다. 전할 수 없는 편지는 무용한 것입니다. 나는 이 편지를 보낼 곳이 없습니다. 나를 불쌍히 여기시거든 부디 살려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