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석지호 Jul 21. 2023

서신 18. 이름을 잃지 말아 주세요

늘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18에게

18에게.

 

초콜릿 알러지가 있습니다. 막 심한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눈이 가려워지고 피부에 붉은 반점이 올라와요. 어렸을 때는 그렇지 않았는데 나이가 들고나니 어느덧 그렇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18이 주신 초콜릿 케이크에 적지 않게 당황했습니다. 알러지가 있다고 손사래 치기에도 여간 민망한 것이 아니니 그대로 집으로 가져와야만 했어요. 혼자 살고 있었기에 마땅히 줄 사람이 없었습니다. 예전에도 몇 번 이런 일이 있었는데요. 그때도 혼자 살고 있었지만 어째 케이크를 건넬 사람이 몇 명은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중에 한 명을 최근에 만날 일이 있었어요. 알러지 때문에 카페모카는 안 시키겠다고 하니까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내가 초콜릿 알러지가 있는지 묻더라고요. 내가 건넨 케이크가 몇 개인데 아주 괘씸했습니다.

 

여튼 18의 정성을 앞에 두고 고민하다가 케이크 한 스푼을 떴습니다. 결국 먹지는 못했어요. 처리를 고민하다가 냉동고 한 구석에 넣어 두었고 그 집을 나설 때가 되어서야 결국 버리고 말았습니다. 최선을 다해보려고 했는데 그러지 못해 미안합니다. 변명을 하자면 어쩔 수 없었는걸요.



 

18과의 마지막 대화는 재밌었습니다. 나는 둘이 만나야 하는 약속이 있을 때면 어떤 대화를 해야 할지 대략적인 계획을 세워 두고 집을 나섭니다. 아주 피곤한 성격이에요. 그도 그럴 것이 여러 사람이 모이는 곳에서는 조용히 듣고만 있으면 되는데 둘이서는 그럴 수 없지 않으니까요. 노력하는 것이 헛되지는 않았는지 몇몇은 나를 재밌다고 하거나 말을 잘한다고 평하곤 했어요.

 

그럴 때면 타자기 하나 있는 좁은 방에 혼자 들어가 그 칭찬들을 기록해두고만 싶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대화가 어려워 미리 준비해야만 하는 부족한 사람이니까요. 18과와의 대화 준비는 어렵지 않았습니다. 회사에서 만난 사람과 하게 되는 이야기는 보통 예전 회사 이야기니까요.

 

18이 위로해 주었듯 일하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특히 마지막 연도는 더욱 그랬어요. 나는 나의 가치관을 전부 꺼내놓고 검토해야만 했습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도덕적인 것을 꽤나 중요시하는 사람인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18과의 기억은 재밌었습니다. 배운 것도 하나 있어요. 배운 것이 있다는 것은 꽤 중요한 말입니다. 나는 일반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무언가를 배우지 않습니다. 스스로가 대단해서가 아니에요. 나는 무언가 바뀌는 것을 정말 싫어하고 그중에서도 자신이 바뀌는 것을 제일 싫어합니다. 그래도 18이 가진 하나의 버릇을 보고 많이 배웠습니다.

 

혹시 모든 일에 사람 걱정부터 하는 버릇이 있으시다는 것을 아시나요? 내가 보기에는 그랬습니다. 예를 들어 드릴게요. 다 낡아버린 차가 시동이 걸리지 않는다는 소식에 운전자는 괜찮은지 물어보는 것입니다. 아니면 기록적인 폭염이라는 뉴스에 밖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불편함은 없는지 전화하는 것입니다. 장비를 잃어버려 사고가 났다는 말에 분실한 사람은 많이 놀라지 않았냐고 걱정하는 것입니다.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일지 모르겠습니다만 사람은 보통 그렇지 않습니다. 차가 또 고장 났다고 짜증을 내거나 빨리 시원한 사무실로 들어가야겠다고 생각하거나 사고를 어떻게 무마해야 할지 고민합니다. 그러고 나서도 마음에 여력이 남으면 겨우 사람을 생각해요. 아시겠지만 내 관찰력은 어느 정도 비상한 편이니 18은 마음 편히 수긍하셔도 좋겠습니다.

 

18의 버릇을 따라 하려고 했는데 사실은 쉽지 않았어요. 모든 것에서 사람을 먼저 떠올리는 것은 어떤 재능이 없고서야 가볍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그래도 차근차근 연습하고 있습니다. 후에 만날 일이 있다면 멋지게 보여드리겠습니다.



 

나는 그때까지 18이 이름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18은 18의 이름으로 불린 지 꽤 오래되지 않았나요? 사실 모두가 자신의 이름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주변을 자세히 보시면 쉽게 고개를 끄덕일 수 있을 것입니다. 

대표님이니 사장님으로 불리는 것도 처음에야 뿌듯하지 나중에는 외로워지고 말 것입니다.

 

누구 엄마나 누구 아빠로 불리는 것은 더 슬프지 않나요? 나는 나의 이름이 다른 이름으로 지워진다는 것을 견뎌내기 힘들어할 것 같습니다. 그것이 나의 아이라도 말이에요. 아이를 낳아보지 않은 사람의 치기 어린 생각일까요?

 

아줌마나 아저씨, 할머니나 할아버지 같은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릴 적 가지고 있었던 본인만의 순수성은 사회생활을 하기 시작하면서부터 다 지워져버리고 맙니다.



 

사실 나부터도 다른 사람의 이름을 굳이 알려고 하지 않는걸요. 요즘 헬스장을 다닙니다. 대체 무거운 것을 왜 올리고 내리는지 아직 이해하지 못하겠어요. 물리 수업 때 배우던 대로라면 일이 0인 상황 아닌가요. 많은 사람들이 땀을 흘리며 헬스장에서 시간을 보냅니다만 결국 그들이 한 일은 0이에요.

 

어쨌든 저도 조금 건강해보고자 PT를 신청해서 배우고 있어요. 두 달이 넘은 것 같은데 나는 아직도 트레이너 선생님의 이름을 모릅니다. 관장님이나 선생님이라고 불러요. 그는 적어도 내 앞에서는 이름을 잃어버렸습니다.



 

나는 내 이름을 지키기 위한 쿠데타를 진두지휘하겠습니다. 18도 아시다시피 나는 반기를 드는 일에 아주 능하니까요. 직함이 아닌 내 이름을 불러달라고 떼를 쓰고, 누구 아빠가 아니라 내 이름이 있다고 선언해버리고 말겠습니다.

 

잠깐 생각해 봤는데 어지간히 미친 사람 취급받을 것 같네요. 사람들이 가끔, 아니 종종 내가 이상하다고 하는 이유를 조금은 알 것만 같습니다. 18은 쿠데타를 해서는 안 되는 직업이니 아주 조용한 반항을 해주세요. 18의 이름을 기억하고 불러주는 사람을 늘 곁에 두십시오. 그것만으로도 이름을 잃지 않는 데에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바깥에서는 어쩔 수 없이 외로운 3인칭으로 불리더라도, 집에서는 더럽혀진 귀를 씻고 따뜻한 1인칭이 되세요. 1인칭이 되는 것을 삶에 빼앗기지 마십시오. 나는 내 이름을 불러줄 사람이 없을 때부터 스스로 죽었다고 생각하고 살아갈 것이라 마음먹고 있습니다. 그전까지는, 결코 반란입니다. 



이전 17화 서신 17. 어린아이처럼 내게 억지를 부려 주세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