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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지호 Jul 24. 2023

서신 19. 저 대신 담배를 피워 주세요

가장 아름답게 담배를 피우는 19에게

19에게.

 

담배를 피우고 싶습니다. 19처럼 아주 멋들어지게 담배 연기를 내뱉고 싶습니다. 19는 내가 본 사람 중 가장 담배를 아름답게 피우는 사람입니다. 나는 가끔 19의 담배 연기에는 니코틴이나 타르 대신 후회와 미련 같은 것이 대신 들어 있나 싶습니다.

 

과거의 흔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에 관해서라면 나도 순위권 밖에서 내려올 생각이 없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나는 비흡연자인지라 한숨을 눈에 보이게 할 수가 없어요. 기껏해야 술이나 마실 뿐입니다. 얼굴이 붉어지는 것보다는 담배 연기가 멋있지요.

 

그래서 19에게 담배를 몇 번 달라고 떼쓴 적이 있습니다. 공사장과 상갓집과 편의점 앞에서였지요. 몇 모금 들이킨 나는 여지없이 구토를 했습니다. 나도 19처럼 모든 것을 포기한 눈으로 밤하늘에 한숨을 피워내고 싶은데 말이에요. 멋이라는 것은 내 일생에 허락되지 않은 미지의 영역인가 봅니다.



 

하지만 이제는 담배를 좀 줄이세요. 시기와 질투가 아닙니다. 나는 요즘 영양제를 사 먹어요. 놀랍지 않습니까? 먹는다고 건강해지는 기분은 아닙니다만 그것에라도 돈을 써야만 할 것 같은 기분이에요. 나이 듦은 그런 사소한 것에서 느껴집니다.

 

제 잔소리를 들을 19가 아니라는 것은 압니다. 나는 폭염 경보가 떨어진 날에 굳이 좁고 답답한 흡연장에서 불을 피우는 이유를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그럴 때면 중독이라는 것이 위험하긴 한가 봅니다. 나는 요즘 인간에 중독되어 있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먄 의미 없는 관계에 중독되어 있습니다.

 

피곤한 날들의 연속입니다. 힘든 일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약속을 잡고 사람을 만나고 있습니다. 나는 이번 주를 지옥주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일주일 내내 약속이 있단 말입니다. 내 지난 인생에 비추어 보면 가장 피곤한 일주일 중 하나가 아닐까 싶습니다.



 

19도 아시다시피 저는 사람을 만나는 것에 굉장한 공을 들입니다. 절대 두 약속을 하루에 잡지 않지요. 서른몇 개가 되는 달력 네모 칸 하나에는 사람 한 명만이 들어갈 수 있습니다. 내 책상 위 달력을 보고 난 19의 질문에 '내 하루에 두 명이 들어갈 수는 없으니까'라는 농담으로 마무리 지은 적이 있지요.

 

그렇지 않다면 나는 손쉽게 졸도하고 말아 버릴 것이니까요. 사람을 만나기 그 사람에 대해 기억하는 시간을 충분히 들입니다. 사소한 모든 것까지 추억해야 합니다. 그래서 사람을 만나고 나면 집에 와서 죽은 듯이 잠을 잡니다. 내게 불면증은 있을 수 없습니다.

 

19를 만나고 가지 못한다는 게 아쉽습니다. 어딜 가냐고 물어봐주실래요? 저는 미국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언젠가 돌아올 텐데 궁상이라고 하신다면 사실 돌아올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답을 드리겠습니다.



 

그래서 요즘 인간에 중독되어 있단 말입니다. 다시 보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약속을 만들고 있습니다. 아주 조금은, 잘 살았다는 생각을 하기도 해요. 아주 조금은, 의미 없는 관계가 많았다는 한숨을 쉽니다. 하기사 인연이라는 것이 무슨 큰 의미가 있겠습니까. 나약한 인간만이 그런 것에 연연합니다. 나는 누군가를 위해 다가가기는 커녕 홀로 머저리처럼 우연을 기다리기만 하는 인간이니 더욱 그렇습니다.

 

나는 담배를 피우지 못하니 19가 대신 담배를 피우고 멋진 한숨을 쉬어 주세요. 식도부터 폐까지 공간을 하나 남기지 말고 후회를 꽉 채운 다음에 그 후회를 내뱉어 주세요. 나는 19의 담배 피우는 모습에서 저 깊은 바다의 고래를 봅니다. 고래, 고래, 고래. 고래 사냥이라는 노래를 아시나요? 술마시고 노래하고 춤을 추어도 보이는건 모두다 돌아 앉았습니다. 19는 돌아앉더라도 알아 볼 수 있을 것 같아 다행입니다. 가끔 멋진 담배 연기가 보일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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