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릇처럼 당신들을 외웠다

by 석지호

어색한 자리였다. 처음 만나는 눈길들이 한가득이었고 떨리는 자기소개를 해야 했다. 소개를 들으며 버릇처럼 당신들을 외웠다. 누가 무슨 말을 했고 어떤 행동을 했는지 암기하는 것은 내 오래된 습관이었다. 마음속 한 구석에 당신들의 이름표를 만들어 걸었다. 그 아래 몇 자 적고는 빈칸은 다음 만남을 위해 비워 두었다.

나는 자신을 과학자라고 소개했다. 말하면서도 스스로 당황스러웠지만 나는 그 단어가 나를 가장 잘 표현한다고 생각했다. 놀란 눈을 한 당신들은 다양한 일을 하고 있었다. 누군가는 타인을 닮는 일을 하고 누군가는 이진법으로 세상을 봤다. 그 옆 사람은 길을 찾으려 쉼표 위에 서 있었고 그 앞사람은 쉼표 끝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오랜만에 시간 가는 것이 흥미로웠다. 모인 목적은 글을 쓰는 것이었기에 입을 멈추고 손을 움직였다. 나는 꽤 긴 시간을 움직이지 못했다. 글 주제가 첫인상이었기 때문이었다. 어려운 주제였다. 나는 당신을 알 수 없다며 미안하다는 글을 내렸다.

오래전부터 사람은 빛과 같다는 생각을 했다. 같은 빛처럼 보이지만 프리즘으로 돌려 보면 수없이 많은 색이 보인다. 프리즘은 시간이었고 그 색감들은 감정이었다. 나는 충분한 시간을 들여 당신의 감정을 바라보지 않고서는 당신을 판단하고 싶지 않았다. 감정은 들이마시고 또 뱉어내는 것이라 옆에 있어도 숨소리처럼 잘 들리지 않곤 했다.

이 모임이 끝날 즈음엔 당신의 빛에 대해 몇 자 내릴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집에 돌아오며 다시 당신들을 떠올리며 하나하나 외웠다. 사람을 복습하는 것은 벅차지만 벅찬 일이었다. 처음의 벅참은 감당하기 어려움에서 왔고 나중의 벅참은 기쁨이 가득함에서 왔다. 첫인상이라는 주제를 지우고 오늘의 당신이라고 적었다. 다음 만날 날의 당신이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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