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맛을 무엇이라 표현해야 할지 망설여진다

by 석지호

아메리카노를 한 잔 주문했다. 1800원이라는 점원의 목소리에 카드를 내밀고 멍하니 기다렸다. 주변을 돌아보니 다들 콩 태운 물 한 잔 씩을 들고 있었다. 왠지 모르게 썩 마음에 들지는 않는 풍경이라 느꼈다. 커피를 받고는 한 모금 홀짝이며 덧없는 생각을 했다.


항상 커피를 먹을 적에는 커피 맛을 무엇이라 표현해야 할지 망설여진다. 어렸을 적엔 단순하게 쓰고, 시고, 떫다 정도로 표현했는데. 이젠 쓰지도 않고, 시지도 않고, 떫지도 않다. 시간의 반복이 혀를 무디게 만들었나 하며 쓰게 웃었다. 잠 깨려 커피를 마신다는 변명도 이젠 철이 지났다. 커피를 마셔도 졸려운 것은 매한가지다. 커피를 손에 들고 꾸벅이며 조는 사람들을 보며 동질감을 느낀다. 사실 이제는 커피를 마시는 이유조차 표현하기 어렵다.

처음 커피를 마셨던 때는 언제였을까. 기억을 헤집어봐도 실마리조차 보이지 않는다. 그때는 설레었을까. 아니면 두려웠을까. 그때 내가 먹었던 커피는 내 눈꺼풀을 어루만져 잠을 깨게 했을까. 가슴을 두드려 새벽녘에도 나를 깨워뒀을까. 먹던 커피를 내려두고 눈을 감았다. 별 일이 없으니 별 다른 생각이 들지 않았다. 눈을 뜨고 바쁘게 지나치는 사람들을 쳐다보았다. 문득 나는 꽤나 권태로운 세상에 살고 있지는 않은가 생각했다. 항상 만나는 사람들을 떠올려본다. 익숙하다. 커피나 사람이나 매한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당신들과 어떻게 만났을까. 그때는 설레었을까. 지금처럼 익숙해질 줄 알았을까.

설레는 것을 사랑한다. 하지만 익숙해지는 것 또한 사랑한다. 감정을 정량화하는 것은 어리숙한 일이지만, 내겐 늘 익숙함이 설렘보다 무겁게 느껴졌다. 커피를 주문하는 사람을 쳐다보며 생각했다. 저 사람의 감정은 어디를 향해 있을까. 상상하는 것은 흥미롭지만 또 괴로운 일이다. 마침 빨대가 커피 대신 빈 공기를 빨아올리기 시작했다. 바람 소리와 함께 짧은 망상은 끝났고 나는 또다시 삶에 익숙해져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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