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복을 입고 다닐 적 학기 초가 되면 자기소개를 위한 종이를 받은 기억이 난다. 이름이나 사는 동네를 슥 적어 나가다가 항상 펜이 갈 길을 잃었던 곳이 있다. 영 딱딱하게 쓰인 취미라는 두 글자 옆 빈칸을 채울 적이면 나는 언제나 적지 않게 방황했다. 장래희망이나 존경하는 사람 같은 것이야 둘러대며 적으면 되는데 취미는 그렇지 못했다.
적당히 좋아하는 것이야 있었지만 늘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미적지근한 것들이었고. 영화를 본다거나 책을 읽는다는 누구에게나 취미일법한 그런 것들을 적어 내기엔 무언가 부끄러웠다. 그렇게 남들이 무얼 적나 둘러보고 따라 하려다 스스로에게 거짓말을 하긴 싫어 빈칸으로 덩그러니 남겨두고는 했다.
그 빈칸의 공허함은 아직까지도 남아있다. 취미라는 단어를 몇 번 발음하다가 취미가 대체 무엇일까 싶어 사전을 찾았다. 취미라는 것은 좋아하는 일이며 늘 하는 일이며 즐거워하는 일. 사실 그러한 사전적 정의의 취미라면 남들에게 말하기 영 낯 뜨거운 것이 하나 있다. 아무래도 내 취미는 모든 것들에 슬퍼하는 일이다.
나는 참 많은 그리고 참 조그마한 것들에 슬퍼한다. 오늘 아침만 해도 계란 하나 삶아먹을 시간이 없는 하루의 시작을 슬퍼했고. 목적지로 걸어가는 사람들의 얼굴이 참 무덤덤함에 대해 슬퍼했다. 별 다를 것 없는 바쁜 하루 속 의미 없는 대화들에 다시 슬퍼했고. 그 와중에도 바삐 행복함을 자랑하는 사람들의 인스타그램을 보며 나도 무언가 올려야 하는 것은 아닌가 초조해하는 나 자신에 대해 슬퍼했다. 옆에서 일하는 당신의 얼굴에 떠오르는 초조함과 피곤함에 대해 미리 슬퍼했고. 그런 당신에게 값싼 위로마저 할 여력이 없는 나의 하루에 또 슬퍼했다.
집으로 향하는 길에 이런 슬픈 하루를 구겨 접어 입에 넣고 씹었다. 오래 씹은 슬픔은 꽤 단 맛이 난다. 그 묘한 단맛이 내가 슬픔을 좋아하는 일이며 늘 하는 일이며 즐거워하는 일이라 여기는 이유다. 그래서 앞으로의 취미는 모든 것에 슬퍼하는 일로 적기로 마음먹었다. 찬 물로 세수를 하며 오늘의 취미는 여기서 잠시 멈추어 두기로 했다. 내일 새벽 다시 더운물로 세수를 하며 내일의 취미를 이어나가기로 했다. 참 슬픈 날이었다. 아무래도 내일도 슬픈 날이리라 생각했다. 취미로는 덧없이 좋은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