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오늘 하루는 공칠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물을 한 모금 넘기고 창문을 열었다. 예상은 여실히 현실로 다가왔다. 창가에 당신이 묻었다. 당신이 영 적당하지 못한 바람을 타고 와 나의 작은방 창가를 밤새 두드린 듯싶었다. 나는 삽시간에 그리워졌다. 인간은 자신이 더는 할 수 없는 행위를 그립다고 표현한다. 벌써 몇 년이 지났건만 가끔은 너로 외로워진다. 외로움은 괴로움과 궤를 달리하지 않는다. 조금은 차분하게 괴로워졌다.
나는 나의 감정선을 게워놓고 다시 되새김질했다. 몇 번의 서러움, 몇 번의 후회, 몇 번의 분노, 몇 번의 아릿함. 이성이 몇 번 눈을 뜨려 노력하지만 되려 무거운 감성에 짓눌렸다. 타인의 마음을 바꾸지 못하는 것이야 어쩔 수 없는 것이라 고개를 끄덕였지만. 자신의 마음을 바꾸지 못하는 것은 다소 억울했다.
끊어낼 수 없는 실타래를 창가에 다시 걸어 두었다. 풀 수 없는 것을 구태여 풀려 노력할 필요는 없다. 어느 정도의 구토감과 욕지기를 참으며 하늘을 바라본다. 시간이 살갑지 않게 불어온다. 시간이 모든 걸 해결해 준다고 하지만. 시간은 결코 아무것도 해결해 주지 않는다. 다만 낡게 만든다. 나는 나의 나날들이 죽은 노인의 옷 냄새처럼 퀘퀘해지기를 바랐다. 기껍지 않은 기도는 구름에 막혀 하늘에 닿지 못했고 비가 되어 내리기 시작했다. 비가 온다. 나리는 물줄기를 멍하니 지켜보다가 창문을 닫았다. 빗줄기가 창가를 닦아내었으면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