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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바니아 티라나 (5)

떠나가는 이유

by 석지호

정식 출간 예정입니다 !

https://tumblbug.com/balkantravel


벌써 며칠째 메뉴가 단 하나도 다르지 않은 조식을 먹고 있었다. 티라나를 떠나야 할 때가 왔다는 뜻이다. 여태의 행선지는 정해져 있지 않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그리스로 가야만 했다. 여행을 하는 데 있어서 목적지가 정해져 있다는 것은 역설적인 자유로움을 품고 온다. 오늘 점심은 뭘 먹고 내일은 어디에 가야 하는지를 고민하다가 오늘 점심을 뭘 먹을지만 고민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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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로 가는 이유는 간단했다. 친구가 오기로 했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방학식을 마치고 바로 그리스행 비행기에 오를 예정이다. 초등학교에 다닐 때 선생님들은 방학 때 뭘 하는지 늘 궁금했었다. 아무도 없는 학교 교실에 나와서 혼자 있으려면 재미가 꽤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다. 혼자 있으면 괜히 떠나보낸 아이들 생각도 나고 슬플 것만 같았다. 슬픔은커녕 기대로 가득 차있는 초등학교 선생님을 보고 있으니 마음이 뒤숭숭해졌다. 산타 할아버지는 사실 없다는 사실 말고도 초등학생이 몰라야 하는 사실들은 많다.


현석과 나는 오랜 친구였다. 또래보다 유달리 통통하던 몸집이 걱정돼서였는지 혹시라도 물에 빠질 것을 염려해서였는지 엄마는 나를 수영학원에 보냈다. 유치원을 같이 다녔던 친구와 함께 다닐 계획이라는 것만 알고 설레하고 있었는데 수영학원 버스에는 한 명이 더 탔었다. 그 아이의 이름은 현석이었고 내가 아는 것이라곤 내 친구의 앞 집에 산다는 것뿐이었다. 명확하게 기억나지 않는 일련의 일들로 인해 결국 수영학원을 계속 다니게 된 것은 우리 둘 뿐이었다. 스물 중반 이후로 나는 다시 살이 올랐고 수영은 기억도 나지 않는 것을 보면 수영학원의 교육은 실패했다. 다만 친구 한 명을 얻게 된 계기로는 충분했다.


초등학교를 같이 다니고 우리는 죽 만나지 않았다. 어린아이에게 다른 학교를 다닌다는 것은 거의 국적이 달라지는 것과 비슷한 것이었다. 대학 입시가 끝나고 결과를 기다리면서 할 일이 없던 나는 드디어 2G에서 4G로 바뀐 핸드폰을 들고 페이스북만 하루 종일 했었다. 그렇게 모으고 모은 초등학교 동창회에서 우리는 다시 만났고 어째 저째 아직까지 가끔 보고 있다. 동창회를 위한 단체 카카오톡 방은 지금 네 명만이 남았다. 대화가 올라오는 일은 거의 없지만 생각이 날 때쯤 만나고 있다. 정확히 말하면 내가 만나자고 치근덕대는 것이고 나머지 셋은 온통 귀찮은 티를 내며 다음 날쯤 답장을 하는 것에 불과하다.


어쨌든 멀리서 동행이 온다고 하니 혼자만의 여유를 조금이라도 더 느껴두어야 했다. 그리스에 가기 전에 알바니아를 조금 더 즐기고 싶었다. 알바니아에서 주로 했던 일들을 생각했다. 산책을 하고 조식을 먹었다. 구멍가게에서 전혀 맛을 상상할 수 없는 음료수와 과자를 하나 사서 강가로 갔다. 누워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잠을 잤다. 배가 고프면 밥을 먹고 돌아와 유튜브나 넷플릭스를 봤다. 보던 영상이 지겨워질 쯤엔 소리를 켜놓고 잠에 들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한국에서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생활을 굳이 알바니아까지 와서 하고 있었다. 분명히 여행 작가들이 하던 여행은 현지의 문화를 향유하고 생면부지의 사람들과 친구가 되어가는 그런 청춘 드라마였다. 비교를 하니 부끄러웠다. 부끄러워서 그냥 다시 잠이나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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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비비고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불가리아가 그라피티로 기억되고 마케도니아가 동상으로 기억된다면 알바니아는 벙커로 그려졌다. 거리를 지나다니다 보면 가끔 총격을 피하기 위한 작은 벙커들이 있었다. 보통은 안에 들어가 볼 수 있게 되어 있었는데 안에는 ‘누구누구 왔다감’으로 보이는 말들이 여러 각국의 말들로 적혀있었다. 그래도 한두 명 정도 들어갈 수 있는 공간 속에 웅크린 채로 밖을 보고 있으면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누군가가 살고자 들어온 공간이자 또 다른 누군가가 죽어간 공간에 장난치듯 구경하며 앉아있었다. 좁은 공간에 죽치고 앉아서 전쟁을 상상했다. 다리가 아프고 배가 고팠다. 시대 속에 사라진 누군가도 비슷할 것 같았다. 알바니아 귀신이 붙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쯤엔 빠져나와 다른 벙커를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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벙커를 혼자 구경하고 있을 때 ‘차이나! 차이나!’ 하는 앳된 소리가 들렸다. 초등학교 저학년 정도 되어 보이는 아이들이 스쿨버스 창밖으로 소리치고 있었다. 옆에 몇 명은 ‘코로나!’라는 고함을 치고 있었고 한 두 명은 눈을 찢어 작게 만들며 웃었다. 이럴 때면 조금은 난감해진다. 무리 지어 있는 어린아이들의 차별과 조롱은 파괴적이다. 부끄러움을 모르기에 더욱 그렇다. 딱히 할 말도 없고 할 수 있는 행동도 없어서 아이들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길을 걷고 있던 아저씨가 꼬마들을 향해 나 대신 화를 냈다. 아저씨는 내게 위로를 건넸다. 나는 아저씨에게 고맙다고 말하며 내가 중국인도 아니고 코로나에 걸린 것도 아니고 심지어 눈은 꽤 큰 편이라고 해명해야 할지 고민했다.


씁쓸한 기분으로 숙소에 돌아왔다. 멍하니 있다가 공항으로 가는 버스와 그리스로 가는 항공편을 예약했다. 미리 그리스에 가 있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값싼 항공기 티켓은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었다. 침대에 누워 아까 일을 생각하니 괜히 분노가 치밀었다. 말이라도 통한다면 제대로 화라도 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나는 알바니아어를 몰랐고 아이들은 한국어를 알 수 없었다. 괜히 화가 나서 노트북을 열어 ‘문명 5’ 게임을 틀었다. 내 캐릭터로 세종대왕을 고르고 한껏 정복전쟁을 벌였다. 아시아를 점령하고 동유럽으로 넘어갈 때쯤이 되니 새벽이 되었다. 대체 무슨 멍청한 짓인가 싶어 노트북을 덮고 잠을 잤다. 이동하려면 새벽에 일어나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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