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을 올랐다
정식 출간 예정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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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을 올랐다. 땀을 뻘뻘 흘리며 두 발로 오른 것은 아니다. 케이블카를 타고 가만히 있다 보니 정상에 도착했다. 이럴 때면 산을 올랐다고 표현해야 할지 아니면 무엇이라고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어쨌든 결과적으로는 산에 올랐다. 산의 이름은 ‘다즈티’였고 케이블카의 이름은 ‘다즈티 익스프레스’였다. 케이블카를 타고 꽤 긴 시간 이동하는 동안 티라나 시내를 내려다볼 수 있었다. 높은 곳에서 도시를 내려다보는 기분은 그리 좋지만은 않다. 인간이라는 것이 얼마나 작은지 체험하는 것은 유쾌하지 않다.
전에 연말 기념이라는 수작으로 당신과 함께 롯데타워 전망대를 간 적이 있다. 풍경보다는 대화가 인상적인 날이었다. 나는 그 높은 곳에서 도시를 내려다보며 저 밑에서 한 고민거리가 이리도 작아 보인다며 허탈하게 말했다. 당신은 이렇게 높은 곳에 오르려면 얼마나 힘들게 일해야 할지 괴로워했다. 가치관이 다른 사람을 곁에 둔다는 것은 삶을 살아가는데 필수적인 것이지만 그만큼 어려운 일이기도 했다.
산에 오르면 하루하루를 채우던 큰 고민들이 의미가 없어지는 기분이다. 그것까지는 좋다. 다만 산을 내려오면서 그 고민들에 다시 의미를 채워가는 기분은 영 텁텁하다. 그래서 산을 오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산이 좋은지 바다가 좋은지 하는 논쟁에서 난 늘 후자를 택하는 편이었다. 바다뿐만 아니나 호수나 강도 그랬다. 아니 수족관이나 집 욕조만 봐도 그랬다. 나는 모여져 있는 물만 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가끔은 멍하니 욕조에 물을 담그고 있다가도 밤바다를 보러 고속도로를 달리기도 했다. 밤바다를 바라보고 있으면 멍청해질 정도로 아무 생각이 없어진다. 가끔 저 멀리 보이는 등대 쪽으로 잠수하고 싶은 생각이 든다. 그럴 때면 인어나 세이렌의 전설이 왜 생겼는지도 이해가 간다. 보통 그런 미친 몽상은 발 하나를 바다에 담그는 순간에 현실로 돌아온다. 난 평생 수족냉증을 달고 살았다.
도착한 산 옷자락에는 리조트가 있었다. 잘 꾸며진 정원과 전망대가 있었지만 겨울이라 그런지 꽃도 사람도 없었다. 심지어 양봉장에도 벌이 없었다. 알바니아 벌들은 뭐가 다르게 생겼나 궁금해서 양봉장 사이사이를 걸었지만 벌들이 다 겨울잠을 자고 있는지 기척이 없었다. 인간도 겨울잠이나 자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떤 급박한 프로젝트가 있어도 무조건 해야 할 일이 있어도 어쩔 수 없이 긴 기간 잠을 자러 가야 한다면 인생을 그렇게 빡빡하게 살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싶었다. 전쟁도 없어질 것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실컷 전쟁을 하고 있다가 3개월 정도 자고 일어나면 다들 머릿속에 굳이 전쟁을 해야 하냐는 생각만 남지 않을까. 3개월 정도면 죽고 못 살던 인연이 서로의 추억을 정리하기에도 충분한 시간이다. 3개월 후에도 다시 감정을 불태워 전쟁을 개시한다거나 다시 사랑할 수 있다면 그거야말로 대단한 인간들일 것이다.
알바니아 평소 기온을 생각하면서 후드 하나만 걸치고 올라온 것을 후회했다. 산 위는 기온도 낮고 바람도 세게 불었다. 배는 고프지 않았지만 추위를 피하려 식당에 들어섰다. 마침 닭 수프가 있어서 치즈를 덮은 고기 요리와 함께 주문했다. 맛은 그저 그랬지만 추워서인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릇을 싹 비웠다. 손님이 없어서 하릴없이 시간을 보내고 있는 종업원들과 가끔 눈이 마주쳤다. 눈을 마주칠 때마다 아무 말 없었는데도 물을 더 따라 주거나 음식 맛은 괜찮은지 물으러 왔다. 제육볶음 하나 내어 주면 밥을 먹는지 마는지 아무런 관심도 없던 기사식당 아주머니가 먼 타지에서 그리워질 줄은 몰랐다. 나는 풍경을 구경하는 척 시선을 창가에 고정했다.
문득 한국말을 꽤 오랜 시간 동안 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불가리아에서 세 명의 한국인을 연달아 만나고 도망친 이후로는 한국말을 하지 않았다. ‘안녕하세요’를 한 번 허공에 말해 보고 아직 발음은 괜찮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읽고 말하고 듣는 것이 싫어서 도망쳤음에도 시간만 나면 한국말로 글을 쓴다는 것이 참 모순적인 일이었다.
초등학교 때 국어 수업에는 ‘말하기 듣기 쓰기’와 ‘읽기’ 두 가지 책이 있었다. 학년이 하나 올라가면 새 책을 받아 노끈으로 묶어서 집에 가져가야 했다. 초등학생이 들기엔 너무 무거워서 손이 빨개지고 아팠지만 ‘읽기’ 책에는 재밌는 이야기들이 많아서 설렌 마음으로 집에 가고는 했다. 나는 심지어 엄마가 사준 ‘기탄 국어’ 학습지에 실린 글들마저 하루 종일 읽는 것을 좋아했다. ‘말하기 듣기 쓰기’는 재밌는 얘기가 없었다. 심지어 ‘쓰기’는 최악의 파트였다. 세상에 똑똑한 사람들이 써 둔 재밌는 이야기들이 얼마나 많은데 뭘 자꾸 내 느낌을 지어내서 쓰라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지금 와서는 말하고 듣는 것은 싫고 읽기는 귀찮고 쓰는 것만 반복하는 어른이 되어버렸다.
화장실이 어딘지 찾아보려다가 종업원과 다시 눈이 마주쳐버렸다. 화장실 가겠다는 말을 못 하고 카드를 꺼내 계산하고 싶다는 말을 했다. 종업원은 계산대는 저쪽에 있다는 말을 했다. 계산대가 따로 있는 식당은 또 처음이었다. 다행히 계산대 옆에는 화장실이 있었고 계산 후에 자연스럽게 화장실을 다녀올 수 있었다. 케이블카를 타고 산을 내려왔다. 온갖 걱정이 다시 차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