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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바니아 티라나 (3)

양 대가리 구이

by 석지호

정식 출간 예정입니다 !

https://tumblbug.com/balkantravel


티라나는 스칸데르베그 광장을 중심으로 볼 것이 많았다. 티라나 성이나 피라미드나 마더 테레사를 위한 대성당 같은 것들에 도처에 즐비해 있었다. 그래 봐야 그런 유명한 것들을 지나치고 내가 가는 곳은 라나라는 이름의 강이었다. 사실 강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미안할 정도로 짧은 곳이지만 라나 실개천이라고 하면 실례일 것 같았다. 어쨌든 지도에도 강이라고 쓰여 있기는 했다.


느지막하게 일어나 강 근처에 가서 다시 누웠다. 강가에는 누워서 햇살 쬐기 좋은 곳이 많았다. 가끔 엄마는 메시지로 오늘은 뭘 하고 다니는지 뭘 보고 다니는지 물었다. 대답할 것이 없었다. 보통은 누워서 지나다니는 사람이나 구경하고 근처에 있는 과일가게에서 오렌지 몇 개나 사서 먹었다. 문득 이렇게 다닐 거면 한국에 있는 게 낫지 않냐는 생각을 하긴 했다. 하지만 확실히 다른 것은 한국말이 들리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귀에 거슬리는 말들이 들리지 않으니 마음이 차분해졌다.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저 동양인 백수는 무엇일지 궁금해하거나 혹시라도 인종 차별적인 발언을 했을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해하지 못하는 대화들이라 신경 쓸 수가 없었다.



누워서 빈둥대다가 심심해지면 강가를 걸었다. 중고책을 깔아 두고 파는 사람들이 많았다. 골동품을 파는 것도 아니고 먹을 것을 파는 것도 아니었다. 사장은 다 해진 책들을 여기저기 쌓아두고 주변 사람들과 얘기하거나 낮잠을 자고 있었다. 두어 시간 멀리서 바라봤는데도 책은 한 권도 팔리지 않았다. 사장은 아무런 생각이 없는 듯이 강물을 바라보며 앉아 있었다. 저런 삶이 어떤 인생의 완성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행위 예술을 관람했다는 기분으로 책을 한 권 샀다. ‘크리스털 블루’라는 이름의 책이었는데 이름만 영어고 안에는 도저히 읽을 수 없는 언어가 페이지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읽지 못하는 책을 바라보고 있으니 어지러웠다. 다시 강가에 내려가 책을 베개 삼아 잠을 잤다. 베개로 쓰기에는 다소 얇았지만 그래도 나쁘지 않았다.


보통 나머지 시간은 시장에서 보냈다. 살고자 하는 사람들의 생동감이 좋다. 굳이 먹을 것을 사러 갈 필요가 없더라도 다른 나라에 방문하면 전통 시장을 방문하고는 한다. 보통은 관광객이 없는 곳을 가기 위해 구글 맵을 열심히 검색하는 편이지만 알바니아에서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어딜 가나 한국 사람은 없었다. 내가 가장 자주 가는 곳은 ‘올드 바자르’였다. 바자르는 시장을 뜻하는 페르시아어라고 어디선가 들었는데 터키나 인도 쪽 말고도 여러 군데서 찾을 수 있었다. 보통 ‘마켓’이라고 하는 시장하고 뭐가 다른지는 잘 모르겠다.



고기를 파는 곳이나 생선을 파는 곳도 재미있지만 채소 파는 곳이 가장 재미있다. 가끔 맛을 전혀 상상할 수 없게 생긴 채소나 과일들을 마주하면 한 두 개씩 사본다. 요리가 가능한 숙소에 있다면 처음 보는 채소들을 왕창 사서 고기랑 볶아 먹는 재미가 있었다. 예측하지 못하는 결과는 아름답다. 나는 늘 사는 것이 예측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쓸데없이 많은 계획과 예상을 한다. ‘그랜드 바자르’에서는 보통 과일을 사 먹었다. 한 개는 팔기 곤란하다는 사람도 많았지만 하도 상점이 많아서 괜찮았다. 확실한 것은 알바니아 시장에는 세상에서 제일 맛없는 사과를 판다는 것이다. 사과 말고는 재밌게 먹을 수 있을 정도의 수준이었다.


양 대가리 구이를 먹게 된 것은 우연이었다. 숙소 근처에 알바니아 전통 식당이 하나 있다고 해서 찾아갔다. 알바니아 사람들이 늘 입에 달고 다니는 샐러드 아니면 고기 구이겠거니 생각하면서 메뉴를 넘기는데 맨 아래쪽에 심상치 않은 문구가 써져 있었다. 양 대가리 구이. 양도 좋아하고 구이도 좋아했지만 대가리는 정말 심상치 않았다. 도전자의 심정으로 직원에게 양 대가리와 채소 구이를 달라고 했다. 주문을 재차 확인한 것을 보면 아마도 내 눈동자는 떨리고 있었던 것 같았다.



끔찍하게 생겼을 거라는 생각을 했는데 그 정도는 아니었다. 징그럽다기보다는 이게 대체 무슨 부위인지 알 수 없는 요리였다. 천천히 뜯어보면 알 수 있었다. 눈이며 이빨이며 뇌가 그대로 구워져 있었다. ‘다즈쿠아’라는 이 음식점은 주방이 오픈되어 있어서 셰프가 땀을 뻘뻘 흘리며 무언가를 굽고 있는 것을 그대로 볼 수 있다. 내가 셰프를 볼 수 있다는 것은 셰프도 나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백발의 할아버지 셰프는 내가 양 대가리를 이리저리 해체하고 먹을지 말지 고민하는 모습을 보고 있었다.


뺨에 해당하는 부위를 먹고 나서 셰프와 눈이 마주쳤다. 이건 맥주를 시키지 않을 수 없는 요리였다. 혼자 다니면서 밖에서는 절대 술을 먹지 않는 원칙을 가지고 있었지만 완벽한 맥주 안주 앞에서 원칙 따위는 부서졌다. 양이 머리가 좋지는 않았는지 뇌 부분은 영 맛이 없었다. 다른 부분은 어째 술술 넘어갔다. 문명인의 자존심은 맛 앞에서 무너졌다. 나는 저 멀리 보이는 셰프에게 따봉을 날려주고 양 대가리 하나와 맥주 두 병을 더 주문할 수밖에 없었다. 배가 꽉 찬 느낌이 들었지만 저 멀리서 나를 흐뭇하게 지켜보고 있는 노인의 바람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다 먹고 나서 그릇을 보니 어디 도살장에서 금방 나온 것 같은 광경이었다. 배가 부르고 적당히 술에 취했다. 강도당하기 딱 좋은 모양새였지만 알바니아 사람들은 내게 별 관심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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