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nning(Learning) Moment 007
주말마다 타이트한 스케줄로 꽉꽉 채워
나의 휴일을 알차게 보내야 직성이 풀리는 나는
오늘도 아침부터 러닝과 모교방문 그리고 스터디와 야구까지
스케줄 4개를 소화해야 하는 보람찬 하루를 기대했다.
하지만 비예보로 의지가 꺾여 오전 일정 두 개를 패스하게 되면서
잠깐만 더 자려고 했던 게 몇 년 만에 늦잠으로 이어져
오전 11시에 부랴부랴 일어나 점심을 차린다.
아르헨티나 새우 올리브 갈릭 오일 파스타를 차려 먹은 뒤
시간을 확인하니 이미 스터디 도착 시간이 빠듯하다.
10분 만에 나갈 준비를 마치고 스터디 채비에 야구 채비에
무거운 가방 2개를 짊어진 채 타야 했던 좌석버스를
눈앞에서 놓치게 되었을 때부터 싸하더니
카톡을 확인하니 야구 경기는 우천취소가 되어있었다.
심지어 집에 나오기 전에 이미 취소 연락이 와 있었지만
그것도 모르고 무거운 가방을 짊어진 걸 뒤늦게 후회해 봤자 누굴 탓하겠는가
버스 배차간격이 하염없이 길어 결국 지하철을 타게 되었고
토요일 점심시간 지하철 환승역은 혼돈 그 자체
따뜻한 봄을 맞이하러 그렇게들 외출을 많이 하셨을까
그런데 또 비가 와서 다들 짜증이 한가득
환승 계단에서는 청년과 아저씨가 반말로 고성을 지르며 싸우고 있고
피곤한 기운을 피해 환승을 하러 가니 눈앞에서 지하철을 또 놓치게 되었다.
그래도 운이 좋아 몇 정거장 지나지 않아 앉을 수 있게 되었고
만원 지하철에서 자리에 앉아 나만의 안락한 상영관을 구축하고
유튜브와 넷플릭스를 오가며 영상을 보다 보니
내려야 하는 역을 지나쳐 버렸다.
부랴부랴 내려서 반대편 승강장으로 넘어와서 깨닫는다.
두고 내린 튼튼하고 좋은 우산.
그리고 이미 한참 늦어버린 스터디 시간
다시 목적지로 향해서 새 우산을 사고
스터디에 가서 몇 시간 동안 에너지를 쏟고
다시 주말 저녁 지옥철을 뚫고 집에 돌아오기가 엄두가 나지 않는다.
그냥 다시 집으로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그 길로 집에 그냥 와버렸다.
4시간 동안 무거운 두 가방을 메고 지옥철 여행을 한 뒤
좋은 우산 하나를 잃어버리고
답답한 가슴에 탄산 1캔을 원샷한 나의 부질없는 주말 나들이는
마지막 집에 돌아오는 길에 수국 한 다발을 꽃집에서 사들고
집에 있는 가족들에게 예상보다 일찍 돌아가는
새로운 기쁨으로 마무리가 되었다.
되는 일이 하나 없어도
살면 살아지는 게 인생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