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바쁜남자 Aug 18. 2023

그리운 집밥이 없다는 거

좋아하는 걸 말하지 못한다면

“현상아, 오늘 저녁 뭐 해줄까? 불고기해줄까?”


“네. 좋아요.”


“고등어도 있는데. 아니면 고등어구이해줄까?”


“네. 그것도 괜찮아요.”


“무국도 해줄 수 있어. 어떤 거 먹고 싶어?”


“다 괜찮아요. 아무거나 해주세요.”


“먹고 싶은 거 있으면 이야기해. 오랜만에 집에 왔잖아.”


“다 괜찮은데. 간단하게 해줄 수 있는 요리로 해주세요.”


“다 간단해. 금방 할 수 있어.”


“뭐 그럼 불고기해주세요.”     



오랜만에 집에 온 아들을 위해 어머니는 저녁을 준비하신다. 그런데 매번 이런 대화가 오고간다. 이런 대화는 내가 독립하기 전에도 그랬다. 어머니께서는 아들에게 해주고픈 요리를 말씀하신다. 그럼 난 열이면 열, 백이면 백, 다 좋다고 그런다. 실제로 좋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어서 또 다른 메뉴를 제시하신다. 그러면 그 메뉴도 좋으니, 난 당연히 좋다고 말한다. 점점 그날 저녁 후보군이 늘어나면서 나는 졸지에 메뉴를 선택해야 하는 처지가 된다. 



이상하다. 난 분명히 맨 처음에 불고기 먹고 싶다고 이야기했는데, 갑자기 불고기와 고등어구이와 무국 중에서 선택해야 한다. 그럼 웬만하면 어머니께서 첫 번째에 제시한 메뉴를 선택한다. 선택이라 할 것도 없다. 1번이 고정값이기 때문이다.



남들은 집밥하면 하나둘씩 떠오르는 메뉴가 있을 것이다. 집에서 멀리 떨어져 지낼 때, 먹고 싶은 어머니의 집밥 말이다.



그런데 난 특별하게 그리운 집밥이 없다. 아무래도 그런 내 모습이 이상하다고 느꼈다. 왜 그럴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내 나름의 분석 결과가 나왔다. 그건 바로 어머니께 먹고 싶은 메뉴를 먼저 말해본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그저 어머니께서 제시한 메뉴에서 골랐을 뿐, 내가 먼저 “엄마, 오늘 저녁은 잡채해주세요.”라는 말을 해본 적이 없었다.



자식에게 맛있는 요리를 해주고 싶었던 어머니의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니다. 이것도 해주고 싶고, 저것도 해주고 싶은 마음이었으리라 이해한다. 하지만 어머니는 내게 내가 진짜 좋아하고, 진짜 원하는 게 무엇인지를 말해볼 수 있는 기회를 주지 않았다. 분명 악감정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의도한 것도 아니다. 어머니는 나를 생각해서 알아서 챙겨주셨다. 어디까지나 자식을 위한 마음이었지만, 때로는 그런 마음이 부작용을 일으킬 때가 있다. 



우리에게는 연습이 필요하다. 스스로 결정해보는 연습 혹은 단호하게 거절하는 연습. 어쩌면 이 연습은 어렸을 때부터 내가 먹고 싶은 메뉴를 말해보는 연습으로부터 시작되는 건지도 모르겠다. 난 뒤늦게 그 연습을 하고 있다. 먹고 싶은 음식이 있으면 당당하게 말하기. 



주도적인 삶이란 이처럼 단순한 결정으로부터 시작된다.

이전 01화 불편한 독립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