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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쁜남자 Sep 10. 2023

답례품 수건이 뭐 어때서

목불을 태운 승려 이야기

자취를 시작하면서 평소 쓰지 않던 곳에 돈을 쓰게 된다. 부모님과 함께 살 때는 쓰레기봉투라든가 생수라든가 샴푸, 바디워시와 같은 생필품을 살 필요가 없었다. 이미 집에 충분히 있었고, 굳이 구매하더라도 그 돈은 엄마 돈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독립 후 혼자 살게 되면서 사소한 것 하나하나까지 내 돈으로 직접 구매할 일이 많아졌다.



그런데도 자취방에는 내돈내산이 아닌 물건이 있다. 내 돈 주고 산 적이 없는데, 심지어 배당금처럼 때가 되면 조금씩 조금씩 늘어난다. 그건 바로 수건이다.



이 나이 먹고 아직 결혼하지 못해 회사직원 결혼식이나 남의 집 아이 돌잔치에나 참석하는 처지다. 그러면 며칠 뒤에 직원이 답례품을 가져온다. 열에 아홉은 어김없이 수건이다. 수건에는 “우리결혼했어요 원빈♥나영”, “태어나줘서 고마워 수지 첫돌” 같은 문구가 자수로 새겨져있다.



그날도 어김없이 회사직원이 결혼식 답례품으로 수건을 전달해주었다.



“선배님, 이거 쓰실래요?”



같은 답례품을 받은 내 옆자리 회사 후배가 나에게 수건을 건넨다.



“왜요? 수건 안 필요해요?”


“이상하게 남의 집 부인이나 남의 아기 이름이 새겨진 수건은 쓰기가 좀 그렇더라고요.”


“그래요? 뭐 그냥 수건인데. 네, 그럼 주세요.”



수건을 건네는 후배를 보며, 엉뚱하게도 불타는 목불을 보고 놀란 주지승 이야기가 떠올랐다. 






어느 추운 겨울날, 단하천연(丹霞天然) 승려가 추위를 피하기 위해 혜림사(慧林寺)라는 사찰에 방문했다. 객승이 탐탁지 않았던 혜림사 주지승은 그에게 공양도 주지 않고, 방바닥이 차가운 대웅전에서 하루를 묵도록 안내했다.



잠시 뒤, 대웅전에서 불빛이 새어나오기 시작했다. 이상한 낌새를 느낀 주지승은 대웅전으로 향했다. 대웅전 문을 열고 안을 살핀 주지승은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단하천연 승려가 대웅전 안에 있는 목불(木佛)에 불을 지피고 몸을 녹이고 있던 게 아닌가.



“어찌하여 부처를 태우십니까!”



주지승이 소리치자, 단하천연 승려는 태연한 표정을 지으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목불에 사리가 있는지 없는지 확인해보려고 태워봤다!”



고승이 열반(涅槃)하여 화장을 하고 나면, 불에 탄 고승의 몸에서 구슬 모양의 유골이 나오는데, 그것을 바로 사리(舍利)라고 말한다. 당연히 나무를 태운다고 인간 몸에서 나오는 사리가 나올 리 없다. 



“나무에 무슨 사리가 있습니까!”



주지승은 순간 ‘아차!’ 싶었다. 과연 그동안 주지승은 부처를 모신 것인가 나무를 모신 것인가. 



어쩌면 목불을 진정한 부처로 대한 사람은 목불을 태워 사리가 나오는지 안 나오는지를 확인하려했던 단하천연 승려인 셈이다. 물론 그저 대웅전이 추워 목불을 태운 것이겠지만. 






누군가의 남편, 누군가의 부모는 수건에 진심어린 마음을 다해 문구를 새겼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그들 사정이다. 내 손에 수건이 쥐어진 이상, 손과 몸을 닦아야 진정한 수건이 된다. 심지어 방바닥을 닦아도 괜찮다. 어차피 수건이나 걸레나 한끝 차이다. 



굳이 답례품 수건에 새겨진 문구를 신경 쓴다면, 불타는 목불을 보며 어찌할 바를 몰랐던 주지승이 아닐까. 그 어떤 문구도 개의치 않고 수건은 수건답게 잘 사용하면 그만이다. 그 덕분에 그동안 내 돈으로 수건 한 장 사지 않고, 여태껏 잘 살고 있다. 예쁘게 답례품 수건을 만들고 선물해준 모든 가정에 평화와 행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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