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통역생활

[B급 통역의 자원봉사 도전기] 국제기능올림픽

by 이건

대회를 3일 앞두고 개최된 첫 번째 회의. 이번에 내가 맡은 직종은 미장 종목으로 실내 인테리어라고 이해하면 편하다.


한. 중. 일을 비롯해 프랑스, 오스트리아, 스위스, 독일, 영국, 헝가리,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자메이카, 인도 등 모두 14개국에서 온 국제지도위원들이 서로 인사를 건네며 선의의 경쟁을 다짐한다.


이때부터 통역의 임무가 시작된다. 가벼운 인사말은 물론이고 때로는 위원 간의 친밀도에 따라 상당히 짓궂은 농담까지 통역해야 할 때도 있다.


그래도 이런 부분의 통역은 심사와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는 내용이라서 부담이 덜하지만, 본격적인 회의가 시작되면 경기 일정, 재료 목록, 최근에 바뀐 경기규칙, 채점 관련 사항 등 중요한 내용들이 쏟아져 나오는데 이때가 제일 중요하다.


정확한 정보를 파악해서 국제지도위원에게 전달해야 위원이 경기 전략을 세우고 따로 메모해서 선수에게도 알려줄 수 있기 때문이다.


회의 시간 내내 가급적 동시통역을 하려고 노력하지만 내용이 방대하거나 또는 확실하게 알아듣지 못한 것은 재차 확인해야 한다. 누군가에게는 땀의 결과인 소중한 메달이 걸려 있기 때문에 대충 전달해서는 안된다.


2017년도부터 국제기능올림픽 대회를 세 번 경험하면서 통역으로서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몇 가지 사항을 적어보려고 한다.


첫 번째로는 자국의 국제지도위원과의 소통이 제일 중요하다. 설령 직종 최고 책임자인 심사장(Chief Expert)이 말하는 내용을 잘 알아듣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임의로 질문을 해서는 안된다. 자칫하면 문제가 생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비록 국제지도위원들의 영어가 대단히 훌륭하다고 말할 수는 없으나 적어도 전문가로서 자신의 분야에서 사용하는 용어 정도는 이미 파악하고 있기 때문에 회의의 흐름을 통역이 일부러 끊을 필요는 없다.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면 잘 적어서 위원에게 물어보고 위원의 허락이 있다면 그때 질문을 해도 좋다.


참고로 심사장이 유럽 사람인 경우 악센트가 다소 거칠거나 표현이 매끄럽지 못해 이해하기 어려운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서면으로 전달하는 것들도 문법적 오류나 오탈자가 많아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도 꽤 많이 있다.


두 번째로는 다른 나라의 질문에 임의로 대답을 하지 않는 것이다. 여러 나라가 모여있는 혼잡한 상황에서 옆의 나라의 통역이나 지도위원이 무슨 내용인지를 물어올 수도 있는데 이때도 통역은 자국의 위원에게 먼저 보고하고 지시를 따라야 한다. 통역은 기능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는 자국의 선수에게 파이팅을 불어넣겠다는 생각에 선수를 지나치게 칭찬한다면 자칫 선수가 자만에 빠져 경기를 망칠 수도 있다. 만 22세의 어린 선수들이기 때문에 감정조절이 서투르다는 점도 잘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결국 국제기능올림픽 대회에서 통역요원의 역할은 지도위원의 지휘 아래 대단히 전략적일 필요가 있다.


때로는 잘 이해되지 않아도 인내해야 하고, 또 아는 내용이라고 해서 다른 나라 사람들이나 선수에게 전달하는, 소위 오지랖이 넓은 행위는 통역으로서 자신의 업무 범위를 넘어서는 것이라는 것을 유념해야 한다.


지나친 감정을 배제하고 언어적 기능인으로서의 역할에 충실한다면 좋은 결과를 기대해 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