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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건 Jun 22. 2024

2024 파리올림픽에 갑니다.   

[도핑검사관, 파리를 달리다]

KADA 담당자: 검사관님, 이번에 파리올림픽 파견자로 선정되셨습니다. 
나: (쿨한 척) 아, 감사합니다. (속마음) 지금 두 손으로 전화받고 있습니다. 

올 7월에 개최되는 파리올림픽은 프랑스가 1924년 올림픽을 치른 이후 무려 100년 만에 다시 치르게 되는 올림픽이다. 프랑스 정부는 이번 올림픽을 통해 가장 예술적이면서도 멋진 파리의 모습을 보여 주겠다며 잔뜩 벼르고 있다. 


수질 우려가 높은 센 강에서 경기를 하겠다며 이미 천문학적인 액수의 예산을 투입했고, 테러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심지어 야외 개막식을 강행하겠다고도 한다. 한편 친환경을 고려해 도쿄올림픽에서 사용했던 것과 같은 골판지 침대를 배치할 예정이며 40도를 넘나드는 파리의 여름에 에어컨이 없는 선수촌을 만든다며 위험한 도박을 하고 있다. 이번 대회가 그들이 계획한 대로 최고의 올림픽으로 기록될지, 아니면 허울 좋은 신기루에 그칠지 이미 운명의 주사위는 던져졌다.   


이번 올림픽의 모토는 “Games wide open. - 모두에게 (활짝) 열린 경기.”로 정해졌다. 하지만 언론에서는 턱없이 비싼 입장료 때문에 불평이 많다는 이야기가 종종 등장한다. 



"아니, 도대체 입장권 가격이 얼마길래?" 

조직위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검색해 보니 양궁 개인전 입장권 가격은 435유로에서부터 VIP 입장권은 자그마치 5,000유로나 된다. 인기가 많은 축구의 경우는 172유로부터 6,750유로까지 가격이 매겨졌다. 결코 싼 가격은 아니다. (2024. 06. 22일 기준 1유로의 환율은 우리 돈으로 1,487원이다.)      

  

나는 이번 올림픽에서 3주 동안 도핑검사관으로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29년 동안 해 오고 있는 소방관으로서의 업무를 잠시 내려놓고 N잡러로서의 또 다른 외도를 준비하고 있다. 


이번 기회를 위해 그동안 차곡차곡 쌓아 두었던 연차를 사용해야 할 시간이다. 사실 올림픽과 같은 지구촌 메가 스포츠 이벤트에 참가해 올림픽 패밀리가 된다는 것은 누구나 쉽게 얻을 수 있는 기회는 아니다.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을 시작으로 도쿄, 베이징을 거쳐 이번이 5번째 올림픽 참가다. 희망사항이 있다면 이번 올림픽을 잘 마치고 2026년 이탈리아 밀라노 동계올림픽과 2028년 미국 LA 하계올림픽까지 계속해서 참가하고 싶다.    


올림픽 기간 동안 내가 해야 할 업무는 <도핑검사관>이라는 역할이다. 2016년 도핑검사관이 된 이후 한국도핑방지위원회에서 쌓은 경험과 지식을 통해 공정하고 투명한 스포츠 환경을 조성하는 일은 매우 뜻깊고 보람된 일 중 하나다. 도핑검사관 업무의 장점이라면 소위 레전드라고 불리는 선수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또 도핑검사를 통해 스포츠에 선한 방향으로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달 파리 조직위에서 보내온 계약서에 정식으로 서명을 해서 보냈다. 조직위는 대회 준비로 무척이나 바쁜 모양이다. 그래서인지 일부 보내온 메일이나 정보에서 종종 오류들이 발견된다. 이런 정도는 애교로 보아 넘길 수 있지만 비자를 받아오라는 요구는 선뜻 이해하기 어려웠다.


프랑스와 우리나라는 비자 면제협정이 체결되어 있어 90일까지는 비자가 필요하지 않지만 무조건 비자를 받아오라는 조직위의 요구는 다소 황당한 것이었다. 혹시 몰라 주한 프랑스 대사관에 문의를 했더니 대한민국 국민은 여행은 물론이고 직업적으로 하는 활동(Professional Activity)도 90일까지는 비자가 필요하지 않다고 한다. 


덕분에 대사관에 오고 가는 수고와 시간을 절약할 수 있었지만 비자 발급을 위해 받아 놓은 재직증명서, 잔고증명서를 볼 때마다 약간 심란한 감정이 생긴다. 이런 일들이 현지에서는 없어야 할 텐데 하는 바람이다. 그래도 주위에서는 파리에 가는 것만 해도 어디냐며 너무 스트레스를 받지 말라고 핀잔을 준다.


이번 올림픽에는 약 만여 명의 선수들이 참가한다고 알려져 있다. 특히 이번 올림픽에서는 브레이크 댄스(브레이킹)가 채택되어 첫 선을 보일 예정이며, 모두 32개 분야 총 329개의 세부종목에서 명승부가 펼쳐질 전망이다.


요즘 잠자리에 들 때마다 “나는 과연 어느 경기장으로 배정을 받게 될까?” 하는 생각을 하며 꿈속으로 빠져든다. 일 중독인 나에게 업무량은 결코 중요치 않지만 육상이나 수영과 같이 메달수가 많은 종목에 배정이 된다면 쉴 새 없이 몰려드는 선수들을 케어하기 위해 서두를 수밖에 없다. 그런 이유로 도핑검사관들조차 육상이나 수영 종목에 배정을 받으면 상당 부분 부담을 느끼기도 한다.


어느 종목에 배정되느냐가 파리에서 내 삶의 질을 결정할 것이다. 개인적으로 쫓기듯 일을 해야 하는 상황을 별로 좋아하지는 않지만 소중한 기회에 참가하는 만큼 어떤 업무라도 피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 지난주까지 보내준다던 항공권이 아직도 도착하지 않았다. 이것이 바로 예비 파리지앵을 길들이기 위한 파리의 밀땅인가? 결코 쉽게 허락하지는 않겠다는...  


#한국도핑방지위원회 #도핑검사관 #PlayTrue #2024파리올림픽 #이건선임소방검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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