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핑검사관, 파리를 달리다]
우리나라에서 최고의 선수들만 모여있는 충청북도 진천 국가대표선수촌은 수시로 도핑검사가 이루어지는 곳이다. 아침 5시부터 밤 11시까지 그야말로 시도 때도 없이 촘촘하게 검사가 진행된다. 이런 꼼꼼한 시스템이 한국 스포츠의 투명성을 담보해 주는 하나의 지표가 되기도 한다.
새롭게 국가대표가 된 선수들에게는 불시에 찾아오는 도핑검사관이 다소 불편할 수 있겠지만 대표 생활을 오래 한 선수들은 오히려 우리를 반갑게 맞아 주기도 한다.
파리올림픽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요즈음의 선수촌은 의외로 한산하다. 훈련장, 웨이트 트레이닝장도 그렇고, 식당이나 숙소도 빈자리가 제법 많이 눈에 띈다. 일부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현재는 올림픽에 참가하는 선수만 제외하고는 모두 퇴촌했다고 한다. 그 말을 들으니 왠지 마음 한 구석이 아려온다. 살아남은 자와 떠난 자의 온도차가 느껴져서일까?
올림픽이라는 무대는 오직 신이 허락한 선수에게만 그 입장을 허락하는 모양이다.
특히 이번 올림픽에는 여자 핸드볼을 제외하고 축구를 비롯해 구기종목이 대거 탈락했기 때문에 그 빈자리가 더 확연하게 드러나는 것 같다. 이미 여러 기사에서 수차례 보도된 것처럼 이번 올림픽에 출전하는 우리나라 대표 선수들은 200명 미만으로 1976년 몬트리올 대회 이후 가장 적은 규모라고 알려졌고 메달 전망도 크게 밝지 않은 편이라고 한다. 여기에 경기불황 등의 요인으로 올림픽을 취재하는 중계진의 숫자도 대폭 줄었다.
선수로서 올림픽에 참가하는 것은 일생일대의 기회이자 큰 영광일 것이다. 그런 큰 무대에서 선수들의 꿈과 노력이 결코 헛되지 않았다는 것을 입증하고 지지해 주는 사람이 바로 도핑검사관이다. 나의 이런 생각은 그동안 몇 차례 올림픽을 치르면서 더 확고해졌다.
언젠가 올림픽을 마치고 한국으로 귀국하는 비행기 안에서 내가 검사했던 선수의 도핑검사 스캔들 기사를 접했을 때 나는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그래서 일을 할 때에는 무조건 특정 선수의 입장만 공감해 줄 것이 아니라 대회에 참가한 모든 선수의 보편적인 가치를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하고, 업무 또한 국제적인 기준에 따라 엄격하게 처리할 수 있는 프로의식과 책임감이 반드시 수반되어야 한다.
매번 그랬던 것처럼 이번 올림픽을 준비하면서 영문으로 된 도핑검사관 매뉴얼을 꼼꼼히 읽고 있다. 필요한 곳에는 밑줄도 긋고 사용하기 용이한 문구나 단어는 암기도 하고 있다. 매뉴얼을 제본해서 검사현장에도 가지고 갈 계획이다. 적어도 이 정도의 준비는 되어야 현장에서 발생하는 돌발상황에 대처하기가 수월하고, 선수나 관계자 심지어는 다른 나라의 도핑검사관과 의견 차이가 있을 때에도 즉시 기준을 제시해 오해를 바로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하는 일이 바로 Team Korea를 대표하는 일이다.
물론 상황에 따라서는 현장 동료들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도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검사현장에서는 나 자신이 ‘걸어 다니는 매뉴얼’이 되어야 한다. 올림픽마다 세부 지침이 다르기 때문에 평상시 하던 방식으로 진행하다 보면 자칫 실수로 이어질 수 있고 불필요한 보고서를 써야 할 수도 있다. 누군가에게 누를 끼치지 않고 깨끗하고 공정한 스포츠 정신을 구현하기 위해서 매뉴얼 학습은 가장 기본이다.
#Paris2024 #국제도핑검사관 #PlayTru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