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올림픽으로 가는 항공권”

[도핑검사관, 파리를 달리다]

‘유럽의 중국’이라는 그리 달갑지 않은 별명을 가진 나라가 있다. 바로 프랑스. 프랑스 사람들이 기본적으로 강한 에고(Ego)를 가진 것에 비해 공중의식은 낮으며, 지나칠 정도로 자부심이 충만해 자칫 다른 나라 사람들을 무시한다는 인상을 준다고 해서 붙여진 별명이라고 한다. 물론 쉽게 단정 짓기는 어렵다. 하지만 주위에서 프랑스 사람들과 일을 했던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면 여러 가지 면에서 '다름'을 느꼈다는 말을 듣기도 하는데 혹시 업무 처리가 많이 느린 것도 그 다름 중 하나에 속하는 것은 아닌지 그래서 그 별명이 더 굳어진 것은 아닌지 궁금해졌다.  

파리올림픽 파견이 결정되고 얼마 되지 않아 파리 조직위와 계약을 체결했다는 한 프랑스 회사로부터 메일을 받았다. 첫 메일은 인사가 담긴 다분히 의례적인 이메일이다. 그리고는 한동안 조용하더니 어느 날 갑자기 비자를 받아오란다. 대한민국과 프랑스는 비자면제협정에 의해 90일까지는 비자가 필요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질의를 해 보았지만 프랑스에서 일을 하려면 ‘단기체류비자(Short Stay Visa)’가 필요하다는 답변만 되풀이되었다. 같은 메일을 받은 유럽의 도핑검사관들 역시 분노했다.

우리도 같은 유럽연합(EU)인데 무슨 비자를 받아오라는 거야?

이 일로 인해 한동안 도핑검사관 단톡방이 무척이나 시끄러웠다. 도대체 조직위가 어떻게 일을 하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불만을 늘어놓았다. 특히 자신의 나라에 프랑스 대사관이 없는 검사관들의 경우에는 비자를 신청하기 위해서 이웃 나라로 이동을 해야 하니 비자를 받아오라는 말을 결코 가볍게 받아들일 수만은 없었을 것이다.  

파리로 출국을 준비해야 하는 우리나라 도핑검사관들 사이에서도 비자를 받는 게 맞는 건지 우왕좌왕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일행 중 가장 나이가 많은 내가 나서기로 했다. 조직위에 수 차례 이메일을 보내서 우리의 상황을 설명해 보았지만 대체로 무응답이거나 답변을 준다는 것이 고작 이전에 보내준 내용을 복사해서 붙이는 수준의 메일만이 반복되었다.

결국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찾는다고 어쩔 수 없이 비자를 받기로 했다. 대사관 홈페이지에 들어가 약 한 시간가량 관련 정보를 입력하고 나니 몇 가지 증빙서류를 반드시 지참해서 방문하라는 안내문구가 나온다. 은행잔고증명서는 물론이고, 3만 유로 이상을 보장받을 수 있는 여행자 보험과 왕복항공권, 초청장, 숙소 정보 등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는 수 없이 다시 조직위에 이메일을 보냈다.

당신들이 (그렇게) 요청하는 비자를 받으려고 하니 조속히 왕복항공권과 숙소정보를 보내달라고 적었다. 며칠 후 도착한 이메일에는 조만간 항공권을 보낼 테니 기다려 달라는 내용이 돌아왔다. 언젠가 7월과 8월은 프랑스 유학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많아 대사관이 가장 복잡한 기간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래서 조만간 성수기가 시작되니 가급적이면 항공권만이라도 신속하게 보내줬으면 좋겠다고 하자, 이번 주 중에 도착할 거라는 답변을 보내온 이후로 2주가 훌쩍 지나가 버렸다. 이젠 다른 나라 도핑검사관들도 나름 상황을 파악했는지, 아니면 모두 포기했는지 단톡방에 글 하나 올라오지 않는다.

다행히 얼마 전 주한 프랑스 대사관으로부터 대한민국 국민의 경우 여행은 물론이고 일을 할 때에도 90일 미만이면 비자를 받을 필요가 없다는 회신을 받고는 한숨 놓을 수 있었다. 유럽의 한 도핑검사관 말로는 에어프랑스가 이번 올림픽 후원사라서 그쪽으로 예약을 진행하고 있는 것 같은데 올림픽을 보거나 참가하기 위해 전 세계에서 파리로 향하는 사람들이 많다 보니 예약조차도 쉽지 않을 거란다.

이제 출국까지 D-28일. 사람이 적응의 동물이라더니 지금은 “언젠가는 오겠지”하면서 여유로운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다. 만약 이 시점에 (예술의 나라답게 파격적으로) 파리행 페리호 승선권을 보내 준다면, 프랑스 난 널 완전 리스펙트할 거야!    

역시 신은 올림픽이란 무대를 쉽게 허락하지는 않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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