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핑검사관, 파리를 달리다]
‘유럽의 중국’이라는 달갑지 않은 별명을 가진 나라가 있다. 바로 프랑스. 프랑스 사람들이 기본적으로 강한 에고(Ego)를 가진 것에 비해 공중의식이 낮으며 지나칠 정도로 자부심이 충만해 자칫 다른 나라 사람들을 무시한다는 인상을 준다고 해서 붙여진 별명이라고 한다.
물론 어느 한 부분만을 보고 쉽게 단정 짓기는 어렵겠지만 주위에서 프랑스 사람들과 일을 해봤던 분들의 말을 종합해 보면 여러 가지 면에서 우리와 '다름'을 느꼈다는 말을 하곤 하는데 이번 올림픽을 준비하면서 그 말의 의미를 조금씩 깨달아 가고 있다.
얼마 전 파리 조직위원회에서 도핑관리 인력 업무를 위임받았다고 하는 한 프랑스 회사로부터 메일을 받았다. 첫 번째 메일은 인사가 담긴 다분히 의례적인 이메일이었다. 그리고는 한동안 조용하더니 두 번째 메일을 보내왔다.
회사는 이미 정리된 줄 알았던 비자 문제를 반복해서 거론해 왔다. 프랑스에서 일을 하려면 반드시 ‘단기체류비자(Short Stay Visa)’가 필요하다며 혼란을 가중시켰고 메일을 받은 사람들 중에서도 특히 유럽의 도핑검사관들은 분노 게이지가 폭발하고 말았다.
우리도 같은 유럽연합(EU)인데 무슨 비자를 받아오라는 거야?
이 일로 인해 한동안 단톡방이 무척이나 시끄러웠다. 계속되는 질문에 회사는 마치 복사해서 붙인 것처럼 짧은 답변만을 무성의하게 반복해서 보내거나 아예 답변조차 해 주지 않았다. 그러자 도핑검사관들은 조직위원회에 직접 불만을 전달하기 시작했다.
도대체 조직위가 중간에서 어떻게 일을 하고 있냐며 연락해 보지만 그 마저도 신통한 답변은 오지 않는다. 상황이 이렇게 전개가 되다 보니 자기 나라에 프랑스 대사관이 없는 사람들의 경우에는 다가오는 출국일 이전에 비자를 받기 위해 이웃 나라로 이동을 해야 했다. 사실 보통 일이 아니다.
이런 상황은 우리나라 도핑검사관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찾는다고 어쩔 수 없이 비자를 받아보기로 했다. 대사관 홈페이지에 들어가 약 한 시간가량 관련 정보를 입력하고 나니 몇 가지 증빙서류를 반드시 지참해서 방문하라는 안내문구가 나온다. 은행잔고증명서는 물론이고, 3만 유로 이상을 보장받을 수 있는 여행자 보험과 왕복항공권, 초청장, 숙소 정보 등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는 수 없이 다시 조직위에 이메일을 보냈다.
당신들이 그렇게 요청하는 비자를 받으려고 하니 조속히 왕복항공권과 숙소정보를 보내달라고 적었다. 며칠 후 도착한 이메일에는 조만간 항공권을 보낼 테니 기다려 달라는 답변뿐이었다. 언젠가 7월과 8월은 프랑스 유학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많아 대사관이 가장 복잡한 기간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래서 조만간 성수기가 시작되니 가급적이면 항공권만이라도 신속하게 보내줬으면 좋겠다고 하자, 이번 주 중에 도착할 거라는 답변을 보내온 이후로 2주가 훌쩍 지나가 버렸다.
이젠 다른 나라 도핑검사관들도 나름 상황을 파악했는지, 아니면 모두 포기했는지 단톡방에 글 하나 올라오지 않는다. 유럽의 한 도핑검사관 말로는 에어프랑스가 이번 올림픽 후원사라서 그쪽으로 예약을 진행하고 있는 것 같은데 올림픽을 보거나 참가하기 위해 전 세계에서 파리로 향하는 사람들이 많다 보니 예약조차도 쉽지 않을 거란다.
일방적이거나 아니면 적절한 답변이 없거나 하는 상황을 반복해서 경험하다 보니 이런 점이 바로 우리나라와 '다름'인 것인지 궁금해졌다. 베이징 올림픽에 참가할 때 내가 느꼈던 중국도 이 정도는 아니었었다. 만약 이 시점에 (예술의 나라답게 파격적으로) 파리행 페리호 승선권을 보내 준다면... 프랑스 난 널 완전 리스펙트할 거야!
역시 신은 올림픽이란 무대를 누구에게나 쉽게 허락해 주지는 않을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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