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1년만 더 고민해 보자

1년 내내 고민했던 시골에서 굶어 죽지 않을 방법

by 정민

두 번째로 나에게 허락한 1년의 갭이어는, 첫 번째 1년과는 분명히 다른 결의 시간이었다.

첫 번째 갭이어가 이것저것 경험을 마구 채워 넣던 시간이었다면, 두 번째 1년은 조금 더 차분했다. 대신 목적은 더 분명했다.

감정의 온도도 많이 달라져 있었다.

첫 해가 “신나! 재밌어! 역시 난 노는 게 체질인 듯!”에 가까웠다면, 그다음 해는 고민이 훨씬 많았다.

어디로 귀촌할지, 귀촌을 한다면 나는 무엇을 하며 먹고살아야 할지.

그 질문이 1년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기에, 한동안 꽤 우울했던 시기도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없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또 1년이 흘러가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끊임없이 찾아왔다.

첫 해에는 뭐라도 해보고 있다는 감각이 나를 떠받쳐줬다면, 두 번째 해에는 질문만 쌓여가고 있다는 느낌이 더 컸다.


그럼에도 이 시간을 그냥 흘려보내지 않으려 가능한 한 많은 탐색의 자리에 나를 데려갔다.

박람회부터 당일 교육, 길게는 2주 귀농귀촌학교 프로그램까지,

귀농·귀촌이라는 말이 붙은 것들은 웬만하면 참여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깨닫게 된 것 중 하나는 나는 아무래도 귀‘농’은 못하겠다는 사실이었다.

대부분의 귀농귀촌교육은 귀'촌'보다는 귀'농'에 대한 내용을 주로 다뤘는데, 알면 알수록 농부가 된 내 모습은 잘 그려지지 않았다.

결국 농업으로 돈을 벌기 위해서는 규모를 키워 대농이 되어야 하는구나 싶었는데 그러기엔 내 통장 잔고가 너무 하찮았다. 대출을 받는대도 원금은커녕 이자도 못 갚아 허우적거릴 내가 보였다.


그 시기엔 책도 많이 읽었다. 특히 처음 1년의 갭이어를 회고하며, 문경에서 진행했던 책모임이 내게 인상 깊은 경험 중 하나라는 걸 다시 알게 됐다. 그리고 이런 깨달음은 자연스럽게 ‘이게 비즈니스 모델이 될 수 있을까?’라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그래서 궁금하면 직접 해보자는 마음으로 20만원, 30만원 돈을 내고 참여하는 책모임에 몇 개월씩 참여했다.

기대보다 훨씬 재밌었고, 시골에서도 이런 형태의 비즈니스를 구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실제로 플랫폼 내 파트너로 선정되어 ‘서울 밖에서 살아남기’라는 주제로 책모임을 열어보려고 시도하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강남 한복판에서 썩 매력적인 주제는 아니었던 것 같고, 그래서 결국 사람을 모으지 못해 운영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다만 이런 형태의 서비스가 시골에서 수요가 있을지,

거점이 될 공간은 어떻게 마련해야 할지를 생각하다 보면 다시 주저하게 됐다. 역시나 내 통장 잔고는 하찮았으니까.


어떤 형태로든 회사가 아닌 내 일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마음이 계속 따라다녔기에,

브랜딩 관련 책을 읽고, 컨퍼런스를 찾아다니고, 혼자서 이런저런 구상을 해보기도 했다만-.

뭘 하고 싶은지도 확실하지 않으면서 브랜딩이라니.

‘내 브랜드’라는 말을 붙잡을수록 오히려 더 혼란스러워졌다.


귀촌을 하겠다는 선택을 지탱할 만큼 단단한 무언가가 내게 있는 걸까?

귀촌은 하고 싶은데 농사는 아닌 것 같고,

공간을 운영하고 싶지만 모아둔 돈으로는 불가능해 보이고.
그렇다면 나는 도대체 무엇을 가지고 시골로 내려갈 수 있을까.
내가 가진 게 뭘까, 내가 할 수 있는 게 뭘까. 생각은 계속 같은 자리에서 맴돌았다.


그렇게 두 번째로 나에게 준 1년의 끝이 다가올 무렵,

지금 돌아보면 자기 합리화였던 것도 같고, 충분히 놀고먹으며 기억이 미화됐던 것도 같다만,
결국 내가 지긋지긋하다고 느꼈고 그렇게 벗어나고 싶어 했던 첫 직업이 다시 떠올랐다.

어떤 지자체든 정책사업은 하고 있다.

그리고 그 안에서는 내가 해왔던 경험이 적어도 완전히 쓸모없지는 않을 것 같았다.


첫 회사를 그만둘 때만 해도 다시는 이런 일 안 할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2년의 갭이어를 지나며 생각이 조금은 현실적으로 바뀌었다.

돌이켜보면, 갭이어동안 다양한 정책사업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이런 프로그램은 이런 목적으로 이렇게 운영해야 하는 게 아닐까?하는 생각을 계속 했다.

더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벗어나고 싶어했던 첫 직장생활 속에서도 내가 좋아했던 순간들이 있었다.
현장에 있을 때, 사람들과 조금 더 가까이에서 움직일 때.

그때만큼은 그래도 재미와 보람을 느꼈던 기억이 분명히 남아 있었다. 그럼 중간지원조직에서 정책사업 현장을 지원하는 일을 해보는 어떨까.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그래도 내가 당장 밥벌이를 할 수 있는 경험은 이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결론 내렸다. 어디든 우선은 직장을 먼저 구해보자.

그 다음은 그 다음에 생각하자.


그렇게 나는,

진-짜로 시골로 내려갈 준비를 시작했다.

keyword
토,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