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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ter Cha Jul 31. 2023

공부해서 남 주자!

고 김영길 총장님을 기억하며


Why not Change the world?


라는 슬로건으로, NASA의 연구원이었던 한 박사는 1995년 어느 날 포항 북구의 황량한 황무지에 한동대학교라는 대학교를 세웠다. 사람들이 ‘공부 좀 해라. 공부해서 남 주냐?’라고 말할 때, ‘공부해서 남 주자!’라고 외치던 분, 김영길 한동대학교 초대총장님이다.


 2019년 소천하시기까지, 김영길 총장님은 참 많이 우셨던 것 같다. 미안해서, 고마워서, 기뻐서, 슬퍼서. 이 네 단어로 밖에 표현할 수 없는 것은 이 학교를 통해 함께 울고 웃었던 수많은 동료 교수님, 학생들과의 이야기를 하자면 적어도 태백산맥이나 토지 정도의 대하소설 급 분량이 나오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2016년 학교를 졸업하고 2023년인 지금, 직장생활이 어느덧 8년 차인 사회인이 되었다. 모교인 한동대학교에서 영남권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해커톤(1~3일 정도의 짧은 기간 동안 밤낮으로 서비스 하나를 팀단위로 개발하고 경쟁하는 대회)을 개최했고, 감사하게도 해커톤 자문 역할로 초대를 받아 오랜만에 모교에 가게 되었다.


 졸업한 뒤에도 학교를 종종 왔었음에도, 학교 캠퍼스 가장 깊숙한 해커톤 장소인 '김영길 그레이스 스쿨'은 처음 방문했다. 학창 시절, ’저기 안은 어떻게 생겼을까‘ 궁금했던 게스트 하우스에서 1박을 하기도 했다. 21년에 이미 지어졌었다는데, 매번 시간에 쫓겨 재학생 시절 추억에 잠길 수 있는 곳들 위주로만 보느라, 이번에 처음 그 존재를 알게 된 것 같다.

  

김영길 그레이스 스쿨


 사진으로 표현되진 않았지만 복층 구조의 높고 멋진 실내와 아름다운 얕은 호수가 어우러져 있는 감탄이 나오는 건축물이었다.

 이름부터 이 땅을 떠나신 총장님을 기념하는 곳이리라 생각은 했지만, 건물 근처를 둘러보다 아주 갑작스럽게 김영길 총장님의 수목장 묘지를 만나게 됐다. 뜻하지 않게 그렇게 총장님의 산소를 보게 되었을 때는 당황스러우면서도, 복잡 미묘한 감정이 들었던 것 같다.  


고 김영길 초대 총장님 산소

 

'I love you, God loves you!', '배워서 남 주자!' 등, 항상 살아생전 외치시던 말씀들과 '이리 와봐요, 안아줄게요'하시며 학생들을 안아주고 격려해 주시던 모습. 시험기간에는 도서관에 몰래 나타나셔서는 안마를 해주시기도 하고 응원해 주셨던 모습 등. 확실히 내가 평생에 걸쳐 봐 왔던 그 어떤 어른들과도 달랐던. 삶으로 사랑이 뭔지 알려주셨던 분. 학창 시절 살아계셨을 때, 교수님들을 대상으로 교내 인기투표를 했다면 단연 1등이셨을 것이다.


 총장님의 퇴임식도 수많은 학생들의 눈물과 축복으로 진행됐었다. 지금도 그 감동적인 영상이 검색하면 바로 나온다. 그런 총장님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을 때는 전국은 물론 전 세계에서 Why not change the world를 실천하고 있는 수많은 한동인들이 함께 울었다.


 결코 가식과 눈속임으로는 전할 수도 없는 진실과 사랑이 학생들의 그 존경을 만들었다고 감히 확신해 본다. 그 누구보다 바보 같은 선택을 하고, 세상의 부와 명예를 내려놓고 불모지인 이곳에서 ‘하나님의 방법으로, 하나님의 인재를 키우는, 하나님의 대학’을 세우겠다는 목표 아래 이곳에서 온갖 수모를 겪으셨던 세월들이. 그 증인들이 지금도 전국, 전 세계 각처에 있다.


물론 한동대학교 출신이라고 다들 나와 같이는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도, 누군가는 이런 나와 같은 동문들을 ‘어리석은 녀석들’이라고 생각한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김영길 총장님처럼 삶과 행동으로 총장님과 같은 깊이의 울림을 주는 어른을 만난다는 게, 정말 보고 배우고 싶은 어른 같은 어른을 만난다는 게 정말 정말 힘들다는 것이다. 전공 분야에서의 실력으로도, 인성으로도 영성으로도. 나에게 롤모델이라는 단어에 가장 적합한 분이라는 것도.

(김영길 총장님은 1994년 미국 저명과학자 인명사전인 ‘미국의 과학자’들에 한국인 최초로 수록된 인물이었다. 1997년에는 영국 케임브리지 국제전기발행센터의 ‘20세기의 뛰어난 사람 2000’에 선정되기도 했다.)




산소를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으니. 요즘의 나는 얼마나 배워서 남주고 있는지, 세상을 바꿀만한 실력과 지혜가 있는지. 반성이 많이 됐다. 나는 과연 이 세상을 떠날 때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줬었더랬다고 기록될 수 있을까. 김영길 총장님의 반의 반이라도 이룰 수 있을까.


참 오늘따라 총장님이 많이 보고 싶다.

2015년 어느 날 총장님과 함께

















Reference.

1. [아주 특별한 인터뷰] 끝나지 않은 ‘교육실험’ 김영길 한동대 총장 - 2008.04.01 주간경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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