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도박둥둥의 월급루팡 도서리뷰
이번에 한국 갔다 오면서 책을 많이 들고 왔는데 전자책이 나오지 않은 책들을 주로 들고 왔었다. 그중 미국의 수백 명의 노동자를 인터뷰한 기록집인 스터즈 터클의 <일>이라는 책이었는데 관련된 책을 찾다가 한승태의 노동에세이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한승태는 양돈장, 콜센터, 택배기사 등 우리 사회의 가장 험한 직업들을 직접 체험하며 글을 남기는 작가다. 그의 책을 읽으면서 좋았던 부분은 적당히 진지하고 알맞게 차지다는 것이었다.
직업체험 콘텐츠는 이미 유튜브에서 흔히 유통되는 소재이지만, 그 콘텐츠에 비친 직업들은 매우 가볍고 오락적이며 비현실적이었다. 역할놀이하는 기분으로 유명인이 직업을 체험하면서 현실에서는 있을 수 없는 해프닝을 (호텔 스위트룸 고객에게 왜 이런 비싼 방에 묵으세요?돈이 많으신가봐요?? 하고 묻는다든지) 억지로 삽입하는 게 불편했기 때문이다. 결국 이런 직업체험 컨텐츠들은 그 직업에 대해 진정 드러낸 것은 없고 오히려 말해야 할 무언가는 묻히는 느낌이라 개인적으론 좋아하지 않았다.
한승태의 에세이는 그런 면에서 알맞았다. 딱 하루 체험하고 그만두는 게 아니라 무명의 노동자로서 다른 동료들과 다를 바 없이 그 직업을 체험하며 좋은 점과 어두운 점, 그리고 다가오는 AI시대에 이마저도 곧 사라질 수 있다는 쓸쓸함을 가감 없이 독자에게 전달한다.
그러면서도 너무 진지한 보고서처럼 시종일관 딱딱한 문체로만 이루어진 것도 아니다. 오히려 인터넷에서 필력 좋다고 할만한 유머와 풍자를 곁들여가며 마치 구비문학처럼 그의 노동에세이는 굽이굽이 펼쳐져간다.
2024년이 딱 2주 남짓 남은 이 시점에 이 책은 올해 최고의 책으로 남을 가능성이 매우 짙은 책이었다. 주변 사람들에게 내 돈 주고 사서 보여주고 싶은 책, 나는 도저히 독서와 안 맞는다고 자조하는 이에게 건네고 싶은 책이었다. 100점 만점에 천 점이라도 드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