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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움쿠헨의 짧고 긴 일본 이야기

화과자가 되거라 2

by 박둥둥

전에 쓴 스트로베리 쇼트케익의 여정에서, 카스텔라도 딸기 쇼트케익도 의외로 ‘화과자’에 속한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이번 주인공은 그 경계선 위에 서 있는 과자, 바움쿠헨이다.


오늘날 일본에서 바움쿠헨의 인기는 실로 대단하다. 전국의 백화점, 제과점, 편의점 어디서나 바움쿠헨을 팔고 있으며, 선물용으로도 자주 선택된다. 그러나 흥미롭게도, 고향인 독일에서는 이렇게 ‘전국적인 과자’ 대접을 받지 않는다. 그렇다면 어떻게 일본은 바움쿠헨의 제2의 고향이 되었을까.


첫 만남은 1919년, 히로시마 물산관(현재의 원폭 돔)에서 열린 박람회였다. 당시 1차 세계대전 포로로 일본에 억류되어 있던 독일인 제과사 칼 요하임이, 고향의 케이크 바움쿠헨을 구워 팔았던 것이다. 반응은 좋았다. 포로 생활이 끝난 뒤, 그는 아내까지 불러 일본 정착을 결심하고 요코하마에 가게를 열었다. 하지만 곧 관동대지진이 닥쳐 가게가 무너졌고, 요하임은 포기 대신 새로운 선택을 한다. 이국 문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도시 고베로 옮겨 다시 가게를 연 것이다. 그곳이 지금도 남아 있는 바움쿠헨 전문점 ‘요하임’의 본점이다.


바움쿠헨이 전국으로 퍼질 수 있었던 이유는, 요하임과 제자들이 일본인의 입맛에 맞게 개량했기 때문이다. 원래 바움쿠헨은 오븐 없이 장작불에 나무 봉을 돌려가며 반죽을 부어 만든 농민들의 케이크였다. 두께가 들쭉날쭉하고, 버터가 적어 식감이 단단했다. 요하임은 일본 카스텔라를 참고해 질 좋은 버터를 더해 부드러우면서도 밀도 있는 식감을 완성했고, 기계화를 통해 일정한 속도로 반죽을 부어 매끈한 원형 패턴을 만들어냈다.


이 ‘동심원’ 무늬가 일본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끝없이 이어지는 원은 장수와 행운의 상징이 되었고, 바움쿠헨은 결혼식 답례품이나 축하 자리의 단골 선물로 자리 잡았다. 달지 않고 부드럽지만 무게감 있는 맛은 호불호 없이 누구에게나 환영받았다.


그로부터 100년. 이제 바움쿠헨은 녹차맛, 호지차맛, 지역 특산 재료를 넣은 버전까지 헤아릴 수 없이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한다. 원조 요하임의 가게를 비롯해 수많은 ‘마이스터’들이 각자의 시그니처를 내놓으며, 일본인들의 바움쿠헨 사랑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그리고 지금, 바움쿠헨은 여전히 문지방 위에 서 있다. 양과자로 태어났지만, 그 꾸준한 변주와 일본식 재해석 덕에 화과자의 세계로 한 발 한 발 다가가는 중이다. 아마도 머지않아, 일본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지 모른다.
“이제 건너오세요, 바움쿠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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