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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로베리 쇼트 케이크의 역사

화과자가 되어라 1

by 박둥둥

일본에 처음 왔을 때, 카스텔라가 ‘양과자’가 아니라 ‘화과자’ 취급을 받는다는 사실에 적잖이 놀랐다. 서양 빵이라고만 생각했던 카스텔라가 전통과자 분류 안에 들어가 있다는 건 나에겐 작은 문화 충격이었다.

그 이유는 역사에 있다. 카스텔라는 16세기 중엽, 나가사키를 통해 일본에 전해졌다. 포르투갈 상인이 가져온 ‘파ォ 드 로(Pão de Ló)’라는 스펀지케이크가 그 원형이다. 당시 일본에는 버터나 우유를 쓰는 제과 문화가 없었고, 카스텔라는 밀가루, 설탕, 달걀만으로 만들어졌다. 이 재료 구성은 일본의 화과자와 크게 다르지 않았고, 장인들의 손에서 기술과 취향에 맞게 변형되면서 ‘남만가시(南蛮菓子)’라는 이름을 거쳐 결국 화과자의 한 갈래로 자리 잡았다. 서양에서 왔지만 일본 안에서 길게 뿌리내린 과자가 된 것이다.

비슷한 문화적 변용의 사례가 바로 흰 생크림 위에 빨간 딸기를 올린 ‘스트로베리 쇼트케이크’다. 원형은 서양에도 있었지만, 모습은 사뭇 달랐다. 케이크 부분은 부드러운 스펀지 시트가 아니라 스콘에 가까웠고, 겉면 전체를 생크림으로 덮는 경우도 드물었다. 토핑도 생딸기 대신 딸기잼이 많았고, 계절에 따라 다른 과일이 올라가기도 했다.

이 서양 디저트를 지금 우리가 아는 형태로 만든 사람은 ‘페코짱’으로 유명한 후지야의 창업자, 후지이였다. 1922년, 그는 미국에서 맛본 쇼트케이크를 일본인의 입맛에 맞게 개량했다. 빵은 한층 부드럽게, 생크림은 필수 요소로 바꾸었다. 여기에 일본적인 색감을 입히기 위해 흰 생크림 위에 빨간 딸기를 올렸다. 흰색과 빨간색의 대비는 전통적인 일본의 길상색이었고, ‘양과자’이면서도 ‘일본의 케이크’라는 정체성을 부여했다.

예상은 적중했다. 후지야의 쇼트케이크는 처음엔 귀한 고급 과자였지만, 전후 생크림 보급과 경제 성장, 그리고 가정용 냉장고의 확산이 맞물리며 대중화되었다. 이제 일본에서 ‘케이크’를 떠올리면, 흰 생크림과 빨간 딸기가 가장 먼저 그려진다.

카스텔라와 쇼트케이크는 모두 서양에서 온 디저트지만, 일본 안에서 각기 다른 방식으로 상징성을 얻었다. 카스텔라는 ‘남만가시’로 들어와 전통과자 체계 속에 흡수되며 ‘오래된 외래’의 얼굴이 되었다. 반면 쇼트케이크는 전후 고도성장기와 함께 퍼져나가 ‘현대 일본인의 행복한 순간’을 대표하는 이미지로 자리 잡았다. 하나는 과거의 일본을, 다른 하나는 현대의 일본을 상징하는 달콤한 증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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