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가을이 오면, 일본의 몽블랑

화과자가 되어라 3

by 박둥둥

가을 문턱에 들어서면, 일본의 제과점 진열대가 서서히 황금빛으로 물든다.

부드러운 생크림, 은근한 단맛의 졸인 밤,

그리고 털실처럼 가늘고 촘촘히 얽힌 밤 페이스트가 빚어낸 몽블랑.

유리 너머에서 가지런히 줄지어 선 그 케이크들을 보면, ‘아, 이제 정말 가을이구나’ 하는 실감이 마음 한켠을 스친다. 쓸쓸함이 살짝 내려앉는 계절, 사람들은 그 감정을 달콤함으로 덮어 두고 싶어 한다.

몽블랑은 원래 알프스의 최고봉 ‘몽블랑(Mont Blanc)’을 닮은 디저트다. 기원은 프랑스와 이탈리아, 두 갈래로 전해진다. 프랑스식 몽블랑은 둥글게 빚은 밤 크림 위에 실 같은 밤 페이스트를 덮고, 마지막에 설탕 가루를 살짝 뿌려 눈 덮인 봉우리를 표현한다. 이탈리아식은 단단한 파이 베이스 위에 밤 페이스트를 뾰족하게 쌓고, 머랭을 입혀 하얀 설산을 완성한다. 어느 쪽이든 본래는 소박한 가정식 전통과자였다.

이 디저트가 화려한 무대 위로 올라선 건 파리 제과점에서 상품화되면서였다. 그 무렵 유럽 여행을 하던 한 일본인, 사고타는 파리에서 처음 몽블랑을 맛본다. 그리고 한입 만에 사로잡힌 그는 결심한다.

“돌아가면, 일본에서 나만의 몽블랑을 만들겠다.”

1933년, 그는 도쿄 지유가오카에 <MONT-BLANC>이라는 가게를 연다. 하지만 시작은 순탄하지 않았다. 가게 이름부터 ‘몽블랑’이 아니면 안 된다고 고집한 사고타는, 프랑스 대사관과 비슷한 상호를 쓰는 가게들에 일일이 연락해 허락을 받아냈다. 결국 이름뿐 아니라 케이크 자체에 대한 특허까지 손에 넣었으니, 집념이란 단어가 부족할 지경이었다.

다음 과제는 일본인의 입맛에 맞추는 일이었다. 사고타는 베이스를 부드러운 일본식 카스텔라로 바꾸고, 속에는 졸인 밤을 통째로 넣어 한입에 전해지는 만족감을 높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밤 페이스트는 일본식 ‘쿠리킨톤(栗金飩)’ 방식—삶은 밤을 으깨 설탕과 함께 졸여내는 전통 레시피—으로 만들어 은은한 황금빛을 띠게 했다.

그렇게 탄생한 일본식 몽블랑은 유럽의 설산 대신, 가을 햇살 속 잘 익은 밤을 닮은 모습이 되었다. 오늘날 일본에서 ‘몽블랑’이라 하면, 흰 설탕가루보다 황금빛 밤 페이스트가 먼저 떠오른다. 그리고 이 계절이 오면, 사람들은 어김없이 그 케이크를 찾는다.

몽블랑은 그렇게, 일본의 가을을 부드럽게 감싸는 작은 봉우리가 된 것이다.


ChatGPT_Image_2025%EB%85%84_8%EC%9B%94_14%EC%9D%BC_%EC%98%A4%ED%9B%84_09_11_01.png?type=w773


keyword
월요일 연재
이전 02화스트로베리 쇼트 케이크의 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