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도 박둥둥의 월급루팡 도서리뷰
가지이 모토지로의 <레몬>은 집중해서 읽으면 딱 30분 정도 걸리는 단편이다.
이 작품은 오랫동안 일본의 교과서에 실렸기에 일본에서는 국민 대부분이 사랑하는 작품이 되었지만, 가지이 모토지로라는 작가가 이거 하나만 쫌 유명한 원 히트 원더 같은 느낌이 있기에 한국에서는 아는 사람만 아는 작품이 된 것 같다. 그러나 <레몬> 한 작품만이라 해도 이 작가에 30분을 투자할 가치는 충분하다.
주인공은 다이쇼 시대 교토에 사는 세상의 온갖 것에 지치고 물린 가난한 청년이다. 새로운 지식도, 새로운 사람도, 그에겐 더 이상 신선하지가 않고, 그나마 교토의 유명 서점인 마루젠에 가끔 들러 서양에서 온 값비싼 문구들이나 화장품, 화집 등을 보다가 겨우 고급 연필 한 자루를 사서 돌아가는 것이 그의 유일한 낙이었으나 그마저도 곧 식상하고 무의미해진다.
삶 자체가 무료하여 방전된 듯 허덕이며 살던 그는 어느 날 과일 가게에서 드물게 레몬을 파는 걸 보고 충동적으로 구매한 뒤 하루 종일 그 레몬을 주머니에 넣고 교토 시내를 터덜터덜 걸어 다닌다.
그는 주머니 속의 레몬을 만지며 레몬이 가진 향기, 색, 아름다운 둥근 외형, 상상할 수 있는 그 시고 자극적인 맛을 떠올린다. 마치 그게 깊은 바닷속에서 유일하게 산소를 얻을 수 있는 공기통인 것처럼, 넓은 사막에서 유일하게 얻을 수 있는 찬 물이 든 수통인 것처럼.
그러다 그는 마루젠으로 향하고 마루젠에서 가장 아름다운 화집들(이미 모두 식상해진 것이지만)을 마치 돌탑 쌓듯이 모아 그 맨 꼭대기에 자신의 레몬을 올려두고 도망치는 서점을 나온다. 누군가 그것을 발견했을 때 그 엉뚱함에 얼마나 놀랄 것인가! 그는 상상하며 기쁨을 느끼고 그 순간 그의 마음속에서 레몬은 마치 시한폭탄인 것처럼 마루젠의 모든 색깔들과 함께 폭발해 버리는 것으로 작품은 끝난다.
이게 무슨 의미인지를 구구절절 설명할수록 더 구질구질해질 것 같다. 이 장면은 비트에서 정우성이 오토바이 타는 장면처럼 그냥 자유! 그리고 살아있음 그 자체가 폭발하는 응축된 순간이기에.
이 작품에 나온 마루젠은 실제 존재하는 서점이다. 일본에서 만년필이라는 필기구를 처음 들여와 이름을 붙인 곳이 바로 마루젠이었다는 것에서 보이듯 고급 문구점이자 서양의 책과 화구들이 가장 먼저 들어오는 곳으로 지식과 문화의 상징 같은 곳이었다.
그러나 시대적 변화로 인해 2005년 마루젠은 폐점을 맞이하게 된다. 영업 마지막 날, 서점 구석구석에는 이 역사적인 서점의 폐점을 아쉬워한 많은 사람들이 점원 몰래 두고 간 많은 레몬들이 있었다.
각자의 생에서 너무 강한 빛을 받아 색이 바래버린 듯한 날들에 예전에 읽었던 <레몬>을 한 번쯤 떠올려봤던 독자들이었을 것이다. 또 가지이 모토지로가 남긴 레몬이 아직도 동시다발적으로 또 위력적으로 폭발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다행히(?) 교토 마루젠은 2015년 부활하여 이. 일을 기념해 서점 내 카페에서 레몬케이크와 레몬 디저트를 판매 중이다. 메데타시 메데타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