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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호할무니 Jul 15. 2019

런던 탕수육은 너와 나, 유미회관

탕상수첩, 열두 번째 기록

해외여행의 즐거움은 공항에 첫발을 내딛는 순간부터 시작되더라. 그리고 그 즐거움을 여행 막바지까지 끌고 갈 수 있는지가 여행 전반의 질을 좌우하더라. 그렇더라. 내가 탕수육을 좋아한다는 건 이미 잘 알고 있었지만 하다하다 런던까지 가서 첫끼로 탕수육을 먹게 될지는 몰랐다더라. 그래도 기분 좋은 첫 끼로 이번 여행이 모두 즐거웠다더라. 그렇다더라.


런던 뉴몰든에 있는, 너와 나, 유미회관을 다녀왔다더라.





언어가 주는 민족적 동질감은 당연하게도 그 언어의 생활권에서가 아닌 타지에서 더 강하게 나타난다. 그렇기에 새로운 장소에서 익숙한 언어를 만나는 일은 놀라움과 동시에 편안함을 가져다준다. 그래서일까. 한글, 한국어, 쌀밥, 탕수육 모두 런던 안에서 무엇보다 새롭고, 또 친숙하게 다가왔다. 그런데 불현듯 이런 생각이 든다. "다른 나라 그리고 다른 민족, 다른 국가, 하나의 생물, 생명체" 우영이 말한 '하나의 생물, 생명체'가 바로 탕수육이 아니었을까. 이제야 우영의 말을 이해하게 되었다. 우엉.





대체로 시큼한 맛이 주를 이뤘던 유미 탕수육은 장시간 비행으로 녹초가 된 내 육체를 빠짐없이 두들겨 주었다. 누가 그랬던가. 식초를 먹으면 몸이 연체동물처럼 유연해진다고. 유미 사장님은 분명 식초 선생의 말을 귀담아들었음이 분명하다. 여행객을 위한 사장님의 작은 배려가 돋보이는 부분이다. 땡큐.





김치가 빨간 이유는 고춧가루 때문이라고 생각했었다. 이 김치를 보고 그런 내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알게 됐다. 김치가 빨간 이유는 배추가 빨갛기 때문이다. 빨간 배추에 고춧가루 몇 점 올리면, 그게 바로 김치가 된다. 이 김치에서는 빨간 배추와 적정량의 젓갈, 그리고 고춧가루 몇 점 분의 맛만 난다. 하여 정통 김치맨을 자부하는 나는 이 음식을 김치로 부르는 것을 반대한다. 위대한 골리 반대사르. 삼겹사르 먹을 땐 스위치 온 부르스타. 그렇지만 영국에서 고추 구경하기 힘들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니 이해하기로 한다.





이것은 콩이다. 콩일 것이다. 사실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알콜성 치매가 불러온 후유증인가 보다. 색깔을 보아하니 간장에 졸인듯한 모양새인데, 섣부른 판단은 금물이다. 판단을 보류하고 맛을 기억해내지 않기로 한다. 미안하다. 콩.





짜장면의 좋은 점은 면의 시작부터 끝까지 짜장의 맛을 계속해서 느낄 수 있다는 것인데, 나는 이 기분을 극대화하려고 짜장면을 한 줄씩 먹는 걸 즐긴다. 사실 뻥이다.


특징이 분명한 맛은 아니지만, 달콤 새콤한 간짜장은 어디서 먹어도 언제나 맛있지 않겠는가. 사실 짜장 하면 유니짜장, 간짜장 하면 유미짜장이다.




한 가지, 배려심 깊은 우리 유미 사장님께서 여행충을 매우 배려하신 나머지 미처 다 먹지 못한 간짜장 위에 일반짜장을 얹어 주시는 배려를 범해 주셨다. 간짜장과 일반짜장의 신묘한 조화가 나를 먹지 않아도 배부른 상태로 만들어 주었다. 신묘하다 신묘해.




You Me Restaurant

96 Burlington Rd, New Malden KT3 4NT 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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