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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호할무니 Jul 04. 2019

애증의 동맹, 한미반점

탕상수첩, 네 번째 기록

한미 간 동맹에 관한 여러 이야기가 나오는 요즘, 그 관계가 우리가 아닌 제삼자에 의해 좌우되는 모습을 보면 굳이 ‘간’, 즉 ‘사이’라는 표현이 필요할까라는 생각이 든다. 이야기는 공개되는 즉시 내 것이 아니게 되는데, 이야기를 소유하는 것과 그 이야기가 내가 아닌 다른 곳에서 소비되는 것은 다르기 때문이다. 입을 떠난 이야기는 더 이상 내가 손을 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사이’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그것이 어디에도 드러나서는 안 되고, 결국 오직 일대일, 아니면 개별적으로 조응하는 관계에서만 형성될 수 있다. 그럼 우리는 왜 굳이 ‘사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가. 역설적이게도, '드러내지 않음'을 드러내야 하기 때문에, 또는 그러고 싶기 때문이다.

     

행복했던 순간을 되짚을 수 있다면 그  추억은 더듬을 가치가 있겠지만, 대부분의 사람에겐 불행의 양이 행복보다는 더 많은 것처럼 보인다. 가치 있는 추억이라는 건 참 슬프지. 내 기억인데도 내게 선택받지 못한 기억이 있다는 말이니까. 불행한 기억은 가치가 없는 기억일까. 사회가 내 머리에 담은, 문화가 내 사고에 작용한, 불행을 불행으로 기억하게 하고, 행복을 행복으로 기억하게 만드는, 부지불식간의 메커니즘이 있었을까.

     

전주를 향하는 기차 안에서, 불현듯 기차와 누군가의 소음을 분간하기 어려워지는 시점이 오면 칙칙폭폭거리는 자연스러운 소리마저 나를 불쾌하게 만드는 지경이 된다. 물론 기차의 소음은 인과응보, 내 선택의 결과이며 응당 내가 견뎌야 할 짐이기 때문에 공격하고 싶은 마음은 소음의 또 다른 주체에게 향한다. 하지만 그마저도 기차를 매개로 한 추억 보정의 힘으로 곧 상쇄되고 만다. 추억은, 또는 행복했다는 기억은 그렇게나 강력하다.     

                    




전주에 대한 내 추억은 이렇다. 대구의 한 훈련소에 보병으로 지원한 내가 결과적으로 운전병으로 보직이 전환되어 전주에서 군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는 것, 그리하여 최종적으로 OO연대가 위치한 정읍에서의 복무를 발령받아 약 2년의 세월을 보냈다는 것, 운전병이었기에 상급 부대인 전주로 빈번하게 운행을 다녔다는 것. 대체로 정해진 코스만을 운행할 뿐이었지만 선탑자의 의향에 따라 가끔은 전주의 다양한 볼거리, 먹을거리를 즐길 수 있었다는 것. 그중에서도 먹을거리는 정말 맛이 재밌었다는 것.     


'전라도 음식은 맛있다'라는 막연한 생각을 가지고 있어서였는지는 몰라도, 아니면 군인이라 그냥 배가 고팠을지도, 어디에서 무엇을 어떻게 왜 먹어도 참 뭐 하나 빠짐없이 맛있었던 기억이 있다. 그 기억은 '군인'이라는 태생적 불행함을 이겨내고 이내 행복함으로 자리매김했을 것이고, 드물게 소환되는 기억임에도 지금까지 내게서 사라지지 않고 꾸준히 생명을 유지하고 있다. 그렇게 기억은, 전주에 대한 모든 것을 '맛있음'으로 치환할 수 있게 만들었다. 이것은 '전주'와 '나' 사이의 지극히 개인적인, 나만의 행복한 기억이다. 그렇기에 한미반점에서 탕수육을 먹고 행복함을 느꼈다면, 10여 년 전, 그리고 지금도 살아있는 그 기억이 크게 일조했으리라.





물론 한미반점만의 오랜 세월이 바탕이 되었음은 말할 필요도 없겠다. 부먹과 찍먹을 고민할 새도 없이 그냥 소스를 따로 제공하는 주방장의 강단에는 '주방에서 끼얹어 주나, 알아서 끼얹어 먹으나 어떻게 먹어도 똑같지'라는 생각이 들어있는 것 같다. 볶아서 줄 게 아니라면 사실이 그렇기도 하고, 한일관계만큼이나 경색된 부찍관계를 단박에 허물 수 있는, 오랜 전쟁에 마침표를 찍는 묘안이 아닌가 싶다.      



          


이 간장은 꽤나 요긴하다. 이미 소스를 따로 제공함으로써 탕수육계 오랜 논란인 부찍사태를 해결했음에도, 소스용 간장 제조 시 생기는 불협화음, 즉 '간장+식초+고춧가루'의 배합을 결정해야 하는 중요한 문제를 이 간장으로 명쾌하게 해결한다. 고민할 필요가 없다. 간장 소스 더 잘 만들 자신 있으면 괜찮지만, 그럴 자신이 없다면 주방장이 주는 대로 먹는 게 정신 건강에 이롭다. 물론 소스 만들기에만 30년 이상 몰두한, 하선정 선생님급이라면 인정하기로 하자.     

          




기가 막힌다는 표현으로도 부족하다. 왜 우리는 간짜장을 볶지 아니하였는가. 왜 우리는 간짜장을 끼얹어 먹을 생각만 했는가. 왜 우리는 볶은 짜장을 볶은 짜장이라 부르지 못했는가. 왜 그랬는가. 우리는. 난 누군가. 또 여긴 어딘가. 저 멀리서 누가 날 부르고 있어.     


워낙에 짜장 소스의 맛이 진하기 때문에, 면만 입안에 따로 넣는 것이 아니라면 기존 방식으로도 그 맛을 즐기기엔 충분하다. 다만 한미반점은, 그것이 간짜장의 모습과는 조금 다를지라도, 짜장도 때론 새로울 수 있다는 미·시각적 패러다임을 제공한다. 그리고 그 방식은 꽤나 성공적이다. 물론 나에게는 말이다. 약간의 청양고추와 부추가 들어간 것도 색달랐는데, 호불호가 있다면 이 지점일 수는 있겠으나 이마저도 새로운 시도라는 점에서 관대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부분이다. 내가 이렇게나 관대한 사람이었던가. 한미반점을 통해 나의 새로운 면을 알게 되었다. 역시 전주.     

          




누가 봐도 짬뽕의 모양새인데, 한술 떠보면 또 탕수육 소스 같은 질감인 것이, 맛은 또 칼칼한 울면 느낌인 것을 보면, 이것은 물짜장인 게 틀림없다. 정말, 부득이, 배는 고픈데 문 연 식당은 없고, 중국집에 들어와 보니 먹을 거라고는 물짜장밖에 없을 때, 그럴 때가 아니라면 굳이 이 맛을 테스트해보지 말자. 궁금해하지도 말고, 떠올리지도 말자. 정히 궁금하다면 조용히 그 궁금함을 내려놓자. 맛이 없더라. 물론, 그 옆에 한미반점을 대표하는 간짜장과 탕수육이 있었기에 더 그랬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맛이 없더라. 내가 절대미각을 가진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맛은 없더라. 하지만 전주에 있는 중국집이라면 응당 물짜장이 있어야 한다는 그 강박을 모르는 게 아니기에, 물론 나조차도 그런 강박에 물짜장을 주문했지만, 그래서 애증이지만, 그래도 정말 맛은 없더라. 어쩔 수 없었다는 스스로를 위하는 말은 결국 하나도 위로가 되지 않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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