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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포 Apr 19. 2023

지금은 나물시즌

나물 먹고 물마시라던 할머니 

나물의 계절이다. 봄나물은 냉이와 달래, 민들레, 쑥, 미나리가 대표한다. 머위와 씀바귀, 취나물, 봄동도 있다. 나물마다 먹는 방식이 다르지만 대체로 무쳐 먹거나 국으로 끓여 먹거나 생으로 장에 찍어 먹는다. 가급적 수확 직후 빨리 먹을수록 맛이 좋다. 오래 두고 먹으려면 절임으로 변신시켜야 한다. 


농수축산물을 가장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시기는 언제일까. 

가끔 고개를 갸웃하게 만드는 일이 있는데 쇠고기가 대표적이다. ‘산지 직송’, ‘오늘 잡은 소’란 홍보문구를 사용하는 식당들이 있다. 싱싱한 느낌이 들어서일까, 제법 고객을 끄는 식당을 솔찮이 봤다. 


잠시 생각해 보자. 산지에서 직접 소를 잡아 식당에 직송하는 일은 없다. 허가받은 도축장 외에서 소를 잡는 행위는 불법이기 때문이다. 축산물 유통을 위해서는 위생안전 검사도 필해야 한다. 산지직송에서 말하는 산지는 생산농가가 아니라 도축장을 말하는 것으로 이해하면 넘어갈 일이긴 하다. 


그런 가정에서 오늘 잡은 소를 오늘 먹는다 치자. 그 고기는 질기고 맛도 없다. 고기는 일정 기간 숙성을 거쳐야 부드러워지고 쫄깃한 맛을 선호한다 해도 고소하고 감칠 맛이 나려면 숙성이 필수다.      


과일은 어떤가. 농장에서 바로 따먹는 과일이 싱싱하고 과즙도 많은 게 사실이다. 하지만 과일도 과일 나름이다. 과일도 숙성을 거쳐야 더 맛있는 종류가 제법 많다. 사과, 복숭아, 토마토, 멜론, 살구, 바나나, 망고, 키위, 무화과 등의 호흡기 과일들이 그렇다. 이 과일들을 농장에서 바로 따먹을 때 맛있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그것은 그날의 기분과 분위기, 맛있다는 마음의 영향이 크다. 


딸기와 포도, 감귤류와 체리 같은 비호흡기 과일은 다소 다르다. 이들은 충분히 숙성되지 않으면 따먹지 않는다. 그러니 수확 전 익은 것을 확인하고 먹을 때 얼마나 맛있겠는가. 

수확 직후 먹는 것보다 더 안 좋은 것은 과일이 냉장고로 들어가는 것이다. 과일의 맛과 냉장 보관은 반비례한다.   


수산물은 어떨까. 잡은 즉시 먹을 때 더 맛있다고 느낀다. 싱싱하니까. 특히 수산물은 현장의 분위기 영향을 많이 받는다. 어종에 따라 다르지만 질긴 것은 감수해야 한다. 수산물도 적정 기간 숙성이 필요한데 부드러운 맛을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더 그렇다.

 

조림이나 탕류 요리도 비슷하다. 한번에 끓여(혹은 조려) 먹는 것보다 한 타임 쉬고 난 뒤 다시 끓이면 깊은 맛이 난다. 숙성과는 다르지만 한 차례 뜸을 들인다는 차원에서는 비슷하다.

      

모든 것이 바로바로 얻어지고 이루어지는 시대, 빠른 게 효율인 시대이지만 맛은 다르다. 한 템포 죽이고 넘어갈 때 맛도 깊어진다. 사람도 그렇다. 너무 빨리 좋아하고 사랑하다 보면 이별도 빨리 온다. 좋아하고 사랑하는 일도 한 템포 쉬어 숙성을 거치면 깊어질 수 있다. 


지금은 나물시즌이다. 나물은 딴 즉시, 신선할 때 먹는 게 가장 맛있다. 봄나물을 바로 먹을 수 있는 까닭은 겨울이라는 숙성기 덕이라고 우리 할머니가 가르쳐주었다. 그분은 혹한의 겨울은 이겨냈지만 봄꽃 향기는 이기지 못하고 이 좋은 세상과 이별했다. 향기로운 봄에는 함정이 있으니 문득 쉬어갈 일이라는 유언을 남긴 것 같았다. 이후 나는 ‘나물 먹고 물마시라’는 말을 새롭게 해석하고 곱씹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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